맥카페 에스프레소-2,000원의 교훈
‘대량 생산 식품의 가치는 모사’라고 바로 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는데, 그게 커피 같은 음식에도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이미 동결건조 인스턴트 커피는 훌륭한 모사품인 동시에 에 독자적인 영역을 굳건히 구축하고 있다. 어쩌면 그걸 진짜 커피라 믿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두를 갈아서 추출하는 커피라면? 맥카페의 2,000원짜리 에스프레소를 먹어보면 가능할 것도 같다. 집 근처엔 두 군데의, 비교적 최근에 생긴 맥도날드가 있는데, 그 한 군데에는 맥 카페도 딸려 있다. 곱창을 먹으니 커피 생각이 간절했는데, 어차피 근처엔 정체 불명의 준 프랜차이즈 밖에 없어 시도해보았다.
물론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처음 마셔본 건 아니다. 주말이면 종종 맥모닝 세트를 먹고 영화를 보러 가는데, 음료는 언제나 커피다. 차가운 건 꽤 훌륭하고 뜨거운 건 종종 밋밋하지만 마실 수는 있다. 그리고 저 에스프레소는 그 둘 보다 훨씬 더 나았다. 양, 점도, 온도가 일단 신경 쓰는 여느 카페의 것만큼 정확했으며, 맛도 역하지 않았다. 싸구려 커피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역한 쓴맛-탄맛, 혹은 담뱃재맛-이 전혀 나지 않았으며, 단맛이 적당히 돌았다. 상큼하지 않고 신선한 느낌도 없지만 2,000원의 최선은 다하고도 남는 에스프레소였다.
생각이 난 김에 바로 가까이에 있는 스타벅스에도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셔보았다. 맥도날드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멀쩡하다면,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것도 멀쩡해야 하지 않겠나? 어느 정도 그러했다. 일단 온도는 맞았고, 맛도 못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맥도날드의 것처럼 상큼하거나 신선하지는 않은데 단맛이 적당히 도는 점은 비슷했지만, 끝에서 다소 역한 쓴맛이 남았다. 온도는 얼추 맞았지만 맥도날드처럼 정확한 수준은 아니었고, 밀도는 다소 떨어졌다. 무엇보다 가격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3,600원이었다(계절 메뉴로 바꿔서 그런지, 심지어 에스프레소가 메뉴에 올라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좋은 건 좋은 대로, 나쁜 건 나쁜대로 배울 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다만 취하는 게 각자의 몫일 것이다. 맥도날드의 2,000원짜리 에스프레소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소위 ‘스페셜티 커피’를 다룬다는 독립 로스터리/카페에서는 대개 좋은 콩과 기계의 확보를 미덕으로 내세운다. 맥도날드는 어떨까. 기계의 수준은 비슷할 것이고 콩의 수준은 많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대신 가격이 싸고, 그 가격과 재료 사이의 격차를 일관적인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정보로 채운다. 달리 말해, 싸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수준으로 떨어지지는 않도록 체계화된 요령으로 맛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리가 대량생산 프랜차이즈의 미덕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수준을 잘 유지하는 프랜차이즈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단 국내 프랜차이즈에는 큰 믿음이 없는데, 이는 아마도 R&D 자체가 그런 쪽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맛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프랜차이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쪽은 ‘인재’인 경우가 많다. 기계나 콩 등을 인간이 만드는 오차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설정하고 다듬어 놓아도 커피 온도가 맞지 않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뭐, 그럴만한 이유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한편 맥도날드만 따져 본다면, 나는 이 프랜차이즈가 공장 음식의 대표주자로서 지나치게 과소평가 및 공격을 받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론 매일 먹을 음식 아니고, 맛있지 않다. 하지만 다녀보면 여느 프랜차이즈보다 훨씬 쾌적하고 음식도 깨끗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주체가 가능한 요인들을 최대한 통제해서 내려보내고, 그 통제가 현장에서 크게 망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맥도날드에서도 그러한 이유로 늘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래서 이미지 쇄신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쟁반에 깔리는 종이의 ‘맥도날드 재료로 구절판을 만들었어요’라는 파워 블로거의 조리예 등을 내보낸다.
이런 글엔 언제나 노파심으로 한마디씩 덧붙여야 한다. 맥도날드의 에스프레소는 아주 맛있지 않다. 그러니 ‘우와 당장 가서 마셔야 겠다’라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최소한 먹을 수는 있는 걸 내놓고, 그 flavor profile도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다. 분명히 마지막 단계에서 틀어져 그 계산에 의한 맛도 안 날 가능성도 높기는 하지만, 소위 ‘커피 한다’는 사람들도 이런 종류의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맛보고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분명 뭔가 얻을 수 있다.
맥카페 저도 참 좋아해요! 마실 때마다 ‘가성비 최고’ 라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마십니다. 요즘 목좋은 자리 커피숍 커피는 뭔가 원두가 아닌 부동산을 갈아마시는 느낌-.-이에요.
참, 블마님 덕분에 루시 나이젤리의 ‘레시피'(맛있는인생)’잘 읽었습니다. 무조건 유기농 힙스터가 아니라 맥도날드 감자튀김도 잘먹는 재기발랄한 작가더군요^.*
앗 ‘recipe’가 아니라 ‘relish’였죠 참 ㅎㅎ
앗 네^^
애초에 식음료 프랜차이즈 장사는 부동산 장사라서, 맥도날드니까 일부러 이렇게 노력하는 건지도 모르죠.
허니버터칩 글로 처음 들어와본 블로그에서, 여러모로 깊게 공감되는 글들을 많이 찾을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계산을 통해서 질을 통제한다. 어떻게 보면 프랜차이즈 장사가 당연히 갖춰야 하는 본질적 미덕인데,
그걸 갖추고 있다는 게 교훈을 줄 정도로 매뉴얼의 정착이 되어있지 않은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죠.
평소에 자주 저렴하게 외식을 하면서 느끼고 있던 아쉬움이 이 글을 읽고 나서 한 문장으로 명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렴하다=맛없다’가 아닌데 국내 프랜차이즈는 거짓말 하는 법을 못 배웠습니다. 능력이 있어야 거짓말도 하죠.
그러나 현실은 통제, 재현, 계산 등의 의미와 이유는 싸그리 무시해 버리고, 덮어놓고 싫어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더군요..애초에 ‘사장’들이 커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이 크다 생각하는데, 그거 인정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네요 그러고 보니;;;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다가 독립한 사람들도 많을텐데 거기에서 뭘 배워서 나오는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