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뿔등심- ‘고기를 먹는다’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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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화구이의 효율: 양고기와 부속의 경우

올해 초, 드물게 어른에게 밥을 얻어 먹을 일이 생겼는데 장소가 투뿔등심 가로수길 점이었다. 현재의 고기집 현실에서 스테이크처럼 두께가 보장된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다는 설정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먹었는데 일단 내 돈 주고 먹는 게 아니니 넘어 갔고, 최근 그랑서울(광화문, 메뉴와 가격대 여기에서 확인. 고기 150g  3만원대) 점에서 한 번 더 먹었다.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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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집의 핵심은 결국 고기니까 가장 먼저 따져보자면, 부위(등심, 안심, 양념 깍두기 세 부위를 한 번씩 다 먹어보고 육회까지 먹었다)에 상관없이 입에 넣으면 왈칵 터져 나오는 수분(+기름기, 하지만 대부분 수분이라는 느낌. 염지라도 한 건가?)가 입안을 압도했다. 정확하게 ‘숙성했다’라기 보다 ‘숙성된 고기를 먹는 느낌이 들게 해주겠다’라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다. 모든 좋은 음식이 그렇듯 앞보다 뒤로 넘어갈 수록 좋은 맛의 여운이 커져야 되는데, 전형적인 한국식 맛의 짜임새 또는 설정이 그렇듯 앞에서 모든 것을 압도하고 금방 사그라든다. 우연보다는 전략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그 자체로 인정해줄 수는 있다. 부위별 맛이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꼽자면 깍두기-안심-등심-육회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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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전체적인 음식의 맛. 달다. 지나치게 달다. 양념 깍두기를 가장 맛있다고 말한 건 사실 달디 단 양념 때문이다. 기름+단맛을 그래도 나름 세련되게 잡아 놓았다. 게다가 고기는 물론, 양념으로도 충분해보이는데 습관적으로 노른자를 쓴 듯한 육회까지도 수분이 많아 질척하다. 곱창 뚝배기 맛이 궁금해 일부러 밥과 함께 시켜보았는데, 달지 않았더라면 ‘이런 맥락에서는 잘 만든 거다’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라 아쉬웠다. 롯데에서 할인하는 바르바레스코 한 병(13만원->4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 7만원 정도에 팔고, 그 정도가 적정 가격대라고 생각하는데?)을 사들고 갔는데 단맛이 너무 치고 올라오는 나머지 식사 끝에서는 마시기가 다소 버거울 지경이었다. 반찬은 최소화+’리필’해줘도 큰 무리 안 가는 버섯 같은 것으로 구성해 거품을 뺀다는 느낌이었고, 밥은 마르고 별 맛이 없었다. 우래옥도 그렇고,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고기집(애초에 고기집 자체가 우리나라 현실에선 고급 외식에 속하지 않던가?)에서 밥을 너무 허술하게 낸다는 생각이다. 상추 등 쌈채소도 체면치레 하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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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와인 포함한 접객. 기본적인 접객은 좋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았을때 적어도 전체를 관통하는 교육은 받았다는 느낌. 한편 ‘코키지’를 받지 않는다고도 했고, 마침 할인 때문에라도 한 병 사들고 가기는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메뉴를 보니 알아서 골라 놓은 듯한 리스트가 합당한 가격(레스토랑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5만원대?)에 준비되어 있었으니, 술이 이익을 낸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 정도는 쓸 수 있어야 지출의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스토랑에 제안도 하고 싶다.  기부 명목도 좋고, 아니면 외식 전문 프랜차이즈로서 팁 문화를 시험해본다는 명목도 좋으니 1인당 5,000원이라도 코키지를 받는 건 어떻겠느냐고. 손님에게도 예를 들어 ‘직원 복지에 쓴다’ 같은 명목이라면 최소 금액 정도는 기분 좋게 낼 수 있지 않을까. 잔이나 접객 등, 분명히 공이 들어가는 와인 코키지를 무료로 한다는 건 손님 끌기엔 분명 매력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레스토랑의 평판 등등에 좋은 역할을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한 먹는 사람도 공짜라고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을 한 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두당 최소 5만원에서 10만원 이상도 들 수 있는 외식 자리에서 5천원~만원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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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케이크, 아니 순수 우유 케이크에 대한 글에서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모사’라고 했다. 한식이라서 그런가, 부티크 블루밍(*, 다섯개 기준), 버처스 컷(***/** 1/2)에 비해 투뿔등심은 훨씬 낫고, 그건 달리 말해 ‘고기를 먹는다’를 먹을 수 있는 모사를 잘 해놓았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gentrified’된 고기집인 셈일텐데, 앞 글에서 밝힌 것처럼 조리의 원리를 따져볼때 한계가 있는 한국식 직화구이나, 조리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연기, 냄새, 소음 등으로 인한 전반적인 불쾌함) 등등을 감안한다면 어차피 맛이 월등히 좋아질 게 아니고 그런 기대도 할 이유가 없지만 차라리 깨끗하고 넓고 쾌적하게라도 만들어 놓았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할 수 있다. 비싼 돈 주고 먹으면서, 적어도 이 수준의 쾌적함이나 편안함은 기본으로 제공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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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바로 옆의 옥루몽 빙수가 썩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뜨거운 불 얼굴에 쪼여가며 고기 먹은 다음엔 디저트로 괜찮다. 다만 팥은 어울리지 않으니 두 가게가 “콜라보”라도 해서 메뉴를 하나 만드는 건 어떨까. 수정과/식혜/오미자 빙수 같은 걸 만들어서 고기 먹고 영수증 보여주면 10% 할인을 해준다거나.

1 Response

  1. 04/14/2017

    […] 향한 습관적인 선호도를 떨쳐낼 수 있다면 로스옥의 고기는 예전에 투뿔등심의 리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기를 먹는다’는 경험을 만족시켜 주기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