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연재 “종료”와 단팥빵 20개의 패턴
번역 때문에 의욕 만큼 글을 못 올리는 요즘, ‘이 글을 올려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선일보에서 연재 요청을 받았을때 샘플로 제안했던 것 중 하나. 채택되지 않았고, 이후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연재 자체를 “종료”하게 되었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는 행간)
그동안 관심 가져준 독자께 감사드린다.
지난 학기, 학교에서 강의라는 걸 하면서 학기 프로젝트로 특정 음식 관찰을 제안했다. 어떤 음식이라도 되풀이해서 먹으면 그 속에서 음식 문화의 패턴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건 이 단팥빵도 마찬가지다. 빙수가 유행이고, 팥이 유행이고, 결국 단팥빵까지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이걸 앉아서 한 스무 개 정도(사진은 열 두 개인데 그 다음 날 몇 개를 더 사다 먹었다)맛을 보면, 콘셉트부터 조리까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읽어보니 딱히 더 보탤 말은 없고, 글에 이어 개별 맛보기 메모를 붙인다.
단팥빵이 말해주는 한국 음식 문화의 현주소
요즘도 팥소를 직접 만드시나요? 35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한 빵집에서 계산하며 물어보았다. 못 만든 빵이 가득했다. 그냥 나가기 뭣해 몇 개 집어 들었다. 옛날에는 그랬죠. 가마솥 큰 거 걸어놓고. 주인 할머니의 대답이었다. 이제는 안 만든다는 이야기. 그럼 무엇이 단팥빵을 채우는가. 가게를 나서며 생각했다. 아울러 전통의 의미 또한 궁금했다. 세월만 흘렀다면? 그럴 리가 없다. 새로운 기술을 반영해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전통이다. 영국의 철학자인 줄리안 바지니가 <식탁의 미덕(The Virtues of the Table)>에서 규정하는 음식과 전통의 관계다. 이제 가마솥과 장작불 없이도 팥은 더 쉽고 빠르게 직접 준비할 수 있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던가. 팥소만 제대로 만들어도 단팥빵의 전통은 명맥을 잇는다.
단팥빵에서 어디 전통에 대한 고민만 읽히겠는가. 찬찬히 뜯어보면 한국 음식 문화의 현주소가 보인다. 불어나는 존재 자체부터 그렇다. 한 번 유행을 타면 모두가 동참한다. 단팥빵처럼 비교적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음식도 피해가지 못한다. 전문 신규 업체도 생겼고 기존 업체도 빠짐없이 만든다. 강남에서 출발해 강북, 강서를 누볐더니 단 두 시간 만에 근 스무 개를 살 수 있었다. 타는 유행만큼 내실이 없는 것도 한결같다. 하나도 빠짐없이 팥소는 지나치게 달고, 둘러싼 반죽은 축축하고 끈적였으며 습관적으로 넣은 호두는 소의 수분을 흡수해 물컹거려 씹는 느낌이 나빴다. 겉의 후한 검은깨 인심도 빵 맛에는 큰 보탬이 되지 않았다.
맛이 엇비슷한 가운데 홍보하는 차별점도 설득력이 없다. 가장 흔한 부문이 건강과 효능이다. 자연발효종과 숙성을 많이 내세운다. 큰 의미가 없다. 자연발효종은 호밀이나 통밀 등, 곡물의 겨나 효소의 방해로 잘 안 부푸는 빵을 위한 수단이다. 부드러움을 위해 지방을 넣는 단팥빵의 반죽에는 필요 없다. 진짜로 자연발효종을 쓴다면 팥소의 단맛과 어울리지 않는, 오랜 발효에서 나오는 강한 신맛이 돌아야 한다. 물론 느낄 수 없었다. 설사 느낄 수 있더라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아무도 장담 못한다. 무엇보다 흰 밀가루와 팥, 혈당지수가 높은 빠른 탄수화물의 조합인 탓이다. 단팥빵이 건강에 나쁜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순전히 즐거움을 위한 음식이 존재하고, 또 그 역할이 중요하며 단팥빵도 거기에 속한다는 것뿐이다. 본성이 그러하니 먹으며 건강을 찾는다면 번지수가 틀렸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국산이라고 덮어놓고 좋다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농촌진흥청의 소식지 <인터러뱅>에 의하면 중심인 팥은 국산이 세 배 비싸며 공급도 원활치 않다. ‘쓰고 싶어도 없어 못쓴다’거나 ‘품질 차이가 없어 굳이 쓸 이유를 모르겠다’는 업체 이야기도 들었다. 소를 직접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을 매긴다면 고집할 이유가 없다. 밀가루는 어떤가. 국산 밀은 반죽이 발효로 부풀어 오르는데 버티는 힘인 단백질 글루텐(gluten)의 함유량이 대체로 적어 힘을 잘 못 받는다. 쌀이 빵에 어울리지 않는 재료인 이유와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빵이 푸석하다. 알곡을 수입해 국내에서 제분해 파는 밀가루는 안전한 재료고 빵을 만들기에도 좋아 외면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로 세를 불리는 단팥빵의 행보를 덮어놓고 반기기가 어렵다. 우리 음식 문화의 현주소를 한 치의 예외 없이 고스란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3, 5, 10년, 세월을 두고 변화를 볼 일이다. 이것은 반짝하고 지나갈 유행인가, 아니면 명맥을 이을 전통인가. 물론 예감은 썩 좋지 않다.
개별 맛보기
1. 서울연인 통단팥빵 82g 반죽 비중 빵에 비해 높은데 달다 껍질은 장식 호두는 수분을 흡수해 물컹거려 되려 먹는데 방해가 된다. 빵은 다소 말라 맛 없음 천연발효종 냄새 안 난다
2. 서울연인 단팥소보루빵 118 속에서 호박 냄새가?남은 겉껍질 식감 괜찮음. 되려 그냥 단팥빵보다 맛의 균형 맞음 소보루의 고소함 때문.
3. 햇살마루 쌀 앙금빵 130 너무 달다 적당히 살아있는 알갱이 입자 좋음 생밀가루 냄새 빵의 역할 살짝 푸석함 견과류 도움 안된다
4. 햇쌀마루 통팥 122 지나치게 입자 살아 있다. 앙금빵이 크리미한 가운데 악센트 있어 더 나음. 빵은 부드러운 편. 둘을 합치면 나을듯.
5. 르부아 압구정 갤러리아 145g 빵 찐득한 편 너무 달다 호두 들었음 껍질만 팥은 별로 농도 괜찮으나 알갱이 더 살아 있어야 한다 반죽 컨시스턴시 자체는 괜찮음.
6. 르 알라스카 85g 소가 너무 적다 게다가 다소 마름 단맛은 중간 정도 무난한 편 가장 못 만듬 빵은 이만하면 안 찐득거리고 오래 굽지도 않았음. 깨 너무 많다.
7. 베즐리 167g 팥소 껍질이 다소 불편하게 씹히지만 살짝 푸석한듯한 수분과 질감 좋음. 다만 빵이 거의 떡수준. 최대한 얇게 가기 위해 글루텐이라도 넣은 건가? 하여간 질감 전혀 유쾌하지 않다.
8. 종로명인 93g 역시 호두는 방해 속 좀 달지만 중간 정도 전부 중간 반죽 역시 다소 질척함
9. 베이커스필드 183g 팥소 다소 부슬부슬. 내 취향에는 맞지만 너무 부스러진다. 반죽은 괜찮은 편 팥의 풋내남. 호두는 방해요소. 단맛 적당함
10. 롯데호텔 통팥 176 g 잣 고운? 역시 잣의 식감은 방해된다. 개중 가장 균형이 잘 맞는다. 소와 반죽 비율 좋고 반죽 살짝 찐득하지만 균형은 잘 잡혔음 단맛 좋음
11. 델리카한스 잣 170g 잣은 덜 거슬리는 편 하지만 여전히 거슬린다 잣의 향이 뒤에서 나오는데 팥이 너무 달아 묻힌다. 좀 덜 달았으면 여운이 잘 어울렸을듯. 완전히 12. 거피한 팥. 차라리 팥이 없더라면 부드러워 좋았을듯.
13. 롯데 프랑가스트 128g 구조적 결함 내부 부풀어 오름 그것만 빼놓고 맛 좋음 호두가 없었더라면 단맛, 통팥 적당히 남아 있고 물기 적당한 소의 질감 훌륭함. 빵은 살짝 마른 느낌이지만 고소하고 찐득거리지 않아 좋다.
14. 동네 요이팡 137g 밤을 박아 눈속임 만든 소의 질감 인공적인 단맛
15. 뚜레주르 90g 중간은 가는 무미무취 끈적이지만 팥이 다소 살아 있음. 첨가물로 바인딩?
16. 파리바게트 싸구려 108g 팥맛이 좀 난다
17. 파리바게트 국산 통단팥 124g 무미 무감동-빵이 찐득
18. 동네 천 원 두 개 51g 팥 질감은 괜찮다 역시 너무 달고 빵도 괜찮음 결국 2,000원짜리에 비해 싼 게 아님.
남편이 단팥빵을 좋아해서 종종 여기저기서 셔틀하는데 말이죠. 황남빵을 가장 좋아해서 택배로도 사먹고요.
현백 지하의 가미야 같은 일본 단팥빵에 대한 평가도. 궁금해집니다.
저도 호두 같은 견과류가 빵에 박힌 건 정말 싫어요.
그건 안 먹어봤습니다. 저렇게 그냥 몰아서 한꺼번에 먹어요. 견과류를 팥소에 넣으면 수분을 머금어 물컹거립니다. 안 넣으니만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