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정식당- 항아리 디저트와 형상화, 음식의 핵심 가치

*NOTE: 어제 매체에 실린 평창 올림픽 VIP 만찬의 디저트에 관한 기사 (DMZ 철조망 녹이는 ‘평창 디저트’)를 보고 이 글에서 지적하는 문제를 너무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생각에 플립보드로 발행한다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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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예고했던 정식당의 항아리 디저트 이야기를 해보자. 한 2년쯤 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겨울이었는데, 우연히 트위터에서 러브하우스의 건축가 양진석과 건축 “전문” 기자 (또는”평론가”) 구본준의 트윗을 보았다. 바로 정식당의 이 항아리 모양 디저트였다. 페이스트리 셰프 고향 겨울 정경을 형상화했다나. 난 기가 막혀 ‘정식당은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리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레스토랑의 부주장이라는 이가 나를 비난했다. 나를 팔로우했던 모양인데, ‘음식에 대해서 평가하는 사람이 먹지도 않고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1. 영화에 예고편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2. 경부고속도로에서 올림픽대로로 막 접어들었을때 보이는, 잠원 한강공원 건물 지붕에 들어 앉은 커다란 누에 조각을 본 적 있는가. 있다면 그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는 두 가지 모두에 대답하지 못했다.

복잡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을 수 있지만, 거의 10년 전에 과 후배가 털어놓았던 실무의 어려움 이야기를 한 번 옮겨보자. 그는 ‘인삼공사나 인삼박물관 설계경기에 참가한다면, 어떻게든 인삼 형상을 직접적으로 많이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건물을 통유리로 둘러싸 인삼 패턴을 무수하게 집어 넣거나(그 집어넣은 패턴 전체가 멀리에서도 인삼 무늬를 그린다면 참으로 볼만할 것이다. 헤르초그 앤 드 모이론 정도면 할 수 있을 듯), 건물에 인삼 형상을 크게 앉히거나 아예 건물을 인삼 모양으로 만드는 해법이다. 이를테면 사물의 특성 등의 추상적 승화보다, 직접적인 재현(Direct Representation)이 일을 따오기에는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였다. ‘인삼 뿌리의 위계질서를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시도를 해봐야, 심사하시는 분들이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형상화의 문제는 건축에서 어쩌면 가장 큰 과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형상화의 산물인 형태가 결국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재현을 통해 인삼 모양의 건물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모양만 좇은 나머지 기능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든 용적률이니 건폐율이니 하는 법적 수치는 맞출 수 있겠지만, 일조나 형태 등 인간이 누려야할 편안함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릴 수 있다. 그래서 맥락과 건축가 개인의 건축 언어 등등이 어느 좌표에서 만나 나오는 건축의 형태는 반드시 지녀야 할 기능과 맞물려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다.

이 항아리 모양의 디저트를 나는 같은 시각으로 들여다 본다. 건축에서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면, 음식에서는 맛이 그만큼 중요하다. 즉 음식의 맥락에서 맛은 건축의 공간이나 다름 없으니, 요리사는 언제나 이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고해야 한다. 서양 요리의 플레이팅은 대개 그런 방향으로 발전한다. 일단 셰프가 원하는 맛, 손님에게 선사하고 싶은 맛을 최대한 잡은 뒤, 그걸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각적인 요소의 균형을 맞춘다. 노란색을 돋보이게 하겠다고 바닥에 까는 탄수화물인 폴렌타를 2인분 넣는다거나, 숲과 같은 초록색을 불어넣겠답시고 스테이크를 다 먹고도 남을 샐러드를 올리는 상황은 피해야한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재료 본래의 질감도 바꿀 수 있는 현대요리에서는 시각 또는 건축적인 요소가 더 두드러질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재료의 물성을 바꾸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맛의 균형을 깨뜨리는 정도까지 재료의 비율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요리사가 스스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맛이며, 그걸 다른 요소가 가리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시각, 건축, 조형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이 아마도 웨딩케이크와 같은 특별한 용도의 케이크일텐데, 이 또한 안에 들어가는 케이크와 크림의 맛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만약 그걸 무시한다면 애초에 케이크-즉 음식-을 만드는 의미나 이유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냥 조형물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편하지 않겠는가.

이 항아리 디저트도 마찬가지다. 형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맛에 앞섰다. 그때 그 부주방장은 나에게 ‘이를 위해 틀도 주문제작하는 등 노력을 많이 쏟았는데, 이를 먹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이 평가하는 사람의 자세냐’고 나를 비난했다. 그래서 내가 꺼낸 것이 영화 예고편의 예다. 물론 손님을 끌기 위해 재미있는 부분만 최대한 추려 만드는 게 예고편이지만, 그걸 봤을때 보고 싶지 않은 영화라면 볼 필요가 없다. 시간과 돈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으니, 선택과 집중을 위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 디저트의 형상이 나에게는 예고편이었다. 맛보다 형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앞서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니 음식으로서 의미가 반감된다고 생각했다. 노력? 물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듯, 그게 정말 음식의 핵심 가치를 이루기 위함인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문제이기도 하다. 항아리든 독수리든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대신 조리가 100% 완벽하면 상관없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할 정도로 잘 만들고 맛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해 디저트로서도 아주 형편없었고, 앞에 나온 일반 음식(savory food)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틀에 넣어 모양을 잡기 편하기 위함이겠지만 무스는 끈적거렸으며, 그 안에 든 고추장 무스 또한 작은 스쿱 등으로 담아 무스가 굳기 전에 넣기 편하기 만들기 위함이었는지 딱딱하게 굳어 숟가락으로 펴면 켜나 덩이로 부스러졌다. 무스류는 질감이 생명인데 일단 무스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나빴으며, 맛도 없었다? 고추장? 주홍색이었지만 고추장 맛은 나지 않았다. 물론, 났더라면 더 나빴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 고추장이어야 하는가? 장독대라서? 사고의 뿌리로 되짚어 내려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마지막으로, 어떤 연유로 이 디저트가 아직도 메뉴에 자리잡고 있는지도 좀 알고 싶다. 트위터로 저 논쟁을 벌인 것이 정말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철에 맞춰 음식을 바꾸지 않는가? 아니면 돌고 돌아서 다시 이 디저트가 메뉴에 오른 건가? 또한 정식당 측에서는 이 디저트의 수준이 그 전에 나오는 요리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검토해본 적이 없을까? 인간의 노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데 왜 이런 쪽으로만 그걸 낭비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때 그 논쟁을 벌이면서, 내가 2년도 더 지나서 이에 대해 또 한 번의 대답을 보태게 될 줄은 정말 예상조차 못했다.

*사족 1: 그러니까 건축 “전문가”라는 사람이 이러한 디저트를 놓고 좋다고 하고 있는 거다.

*사족 2: 형태가 기능에 앞서는 간단한 예로 이런 건물이 있다. 바구니 제조업체라 본사 건물을 바구니 모양으로 설계했다. 그나마 사무실 건물이라 형태가 근 장애는 아닐텐데, 순수하게 장식인 손잡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by bluexmas | 2014/04/21 15:11 | Tast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at 2014/04/21 18: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4/04/28 15:58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미자씨 at 2014/04/22 09:01 

잼이 들어있었거나 위스키가 들어있었으면 귀여웠을 것같은데용
 Commented by bluexmas at 2014/04/28 15:58

고추장도 잘 넣았다면 맛있었을 가능성이 있었겠지요.
 Commented by Geormi at 2014/04/26 18:30 

영화 예고편만 보고 그 영화 감독에게 “영화로 장난치지 마라”고 말하는 영화평론가가 (설마, 만약) 있다면 평론가로서 함량미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술논문 레퍼리가 논문 초록만 읽고 “이 논문 허접함, 초록만 봐도 뻔함”이라고 평가하면 저널 에디터에게 욕먹어도 싸구요.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던지 상관없이 영화평론가, 학술논문 레퍼리 등 누군가의 작업을 평가하는 입장이라면 말은 신중해야 하는게 당연합니다.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예고만 보고 평가하는 평론가, 읽지 않은 논문에 대해 초록만 보고 평가하는 레퍼리는 누가 봐도 전문가로서 신뢰를 받을만한 행동은 아닌 것처럼, 먹어보지 않은 음식에 대해 독설을 날리는 음식평론가도 마찬가지가 아닐지요. 남들 트윗만 보고서 “음식으로 장난하지 마라”고 트윗한 것도 경솔하거니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태도야말로 평론가로서의 함량미달로 보입니다. 음식의 핵심 가치에 앞서 음식평론가의 핵심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심이 우선일듯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4/04/28 15:56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14/04/27 10: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4/04/28 15:56비공개 답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