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정식당-4년만의 재방문, ‘롱런’을 위한 고민
자가 검색을 해보니 정말 꼭 4년만이더라. 그래서인지 모든 것에 시간의 흔적이 적절히 배어 있었다. 천장의 냉방기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고, 내가 앉은 의자는 (인조?) 가죽 껍데기가 많이 일어났으며, 홀 직원의 검정 단체복도 윤기가 돌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한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살아 남아 있다는 증거일테니까. 화수분을 끼고 레스토랑을 차려도 망할 건 망한다.
시간이 좀 흘렀으니 역시 간단히 정리해보자. 4년 전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때의 음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조리에 딱히 흠잡을 구석은 없다’고 썼는데 사진을 보니 그때에 비해서는 헛점이 더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고는 볼 수 없다. 중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콘셉트다. 그때 정식당의 음식은 셰프가 좋아하는 스페인 쪽 “분자요리” 음식의 차림새에서 재료만 치환한 것들이 대세를 이뤘다.있는 물감으로 외국의 화풍을 모방한달까. 따라서 일관성을 읽기가 어려웠으며, 이를 조리로 최대한 막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4년이 흘러 최근에 먹은 음식도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때에 비하면 코스 자체(66,000짜리 점심 셰프 코스)가 깔끔하게 정돈되었고, 쓸데없다 싶은 음식은 마지막의 바다가재 빼놓고는 없었다(재료의 사용도, 조리도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조리도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트리플 해장국’에 올라온 삼겹살의 바삭한 껍질은 여태껏 먹어본 삼겹살 가운데 가장 훌륭했다. 한편 두 번째로 나온 ‘수란+장조림 국물’의 조합은 개별적인 콘셉트는 좋았지만 계란의 온도가 다소 낮고 양이 좀 많았으며, 짠 간장과 김치까지 포함한 구성에 탄수화물이 빠져 마음껏 즐기기 어려웠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제는 빵에 된장 대신 청양고추를 넣는데, 나름 잘 구웠지만 ‘왜 굳이 청양고추를 넣었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앞에서 말한 장조림에 곁들여 먹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나온 굴 튀김의 옷에는 오징어 먹물을 썼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그림을 얻기 위한 게 아니라면 굳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음식에서 시각적인 면도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그쪽 끝에서 시작해 맛의 방향으로 가는 시도를 거듭하다 보면, 컨셉트나 논리가 부족할때는 언젠가 한계에 부딫힌다는 생각을 한다.
정식당의 음식을 한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석 달이 좀 안 된 것 같은데, 기억이 많이 희미해진 가운데 무 피클의 맛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여러 음식에서 되풀이해 등장했다. 치킨을 시키면 딸려오는 것과 비슷한, 새콤달콤한 맛의 피클이다. 이게 정식당의 정체성일까? 만일 그렇다면 이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여전히 너무 낮은 가격에 그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음식을 내니 그것만 놓고 본다면 훌륭한데 먹고 난 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결국 기억에 남는 게 그 무 피클의 맛이라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편 굉장히 난감하다.
정식당도 주방이 열려 있는지라,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내부가 보인다. 대체로 어린 연령대의 요리사들이 정말 열심히 음식 만드는 걸 볼 수 있다. 맨 처음에도 말했듯 적어도 4, 5년 이상 살아남았고 뉴욕의 매장은 미슐랭 별 두 개를 받았으며, 서울 매장도 ‘아시아 50대 레스토랑’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확실히 권위를 지녔고 그로 인해 어린 요리사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그걸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떨어지지 않는 완성도만으로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겠지만, 과연 셰프는 그러한 현실에 만족할 수 있을까? 예전에도 아주 나쁘지 않았고 지금은 그보다 더 나아졌지만, 이는 분명히 부분적인 개선이지 핵심의 재정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정식당이 더 ‘롱런’하기 위해서는 후자에 대해 더 고민해야 된다고 믿는다.
*디저트에는 얽힌 이야기가 많아서 따로 글을 올리겠다.
# by bluexmas | 2014/04/01 11:06 | Taste | 트랙백 | 핑백(1)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4/21 15:11
… 지난 번에 예고했던 정식당의 항아리 디저트 이야기를 해보자. 한 2년쯤 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겨울이었는데, 우연히 트위터에서 러브하우스의 건축가 양진석과 건축 “전 … more
2 Responses
[…] 지난 번에 예고했던 정식당의 항아리 디저트 이야기를 해보자. 한 2년쯤 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겨울이었는데, 우연히 트위터에서 러브하우스의 건축가 양진석과 건축 “전문” 기자 (또는”평론가”) 구본준의 트윗을 보았다. 바로 정식당의 이 항아리 모양 디저트였다. 페이스트리 셰프 고향 겨울 정경을 형상화했다나. 난 기가 막혀 ‘정식당은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리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레스토랑의 부주장이라는 이가 나를 비난했다. 나를 팔로우했던 모양인데, ‘음식에 대해서 평가하는 사람이 먹지도 않고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1. 영화에 예고편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2. 경부고속도로에서 올림픽대로로 막 접어들었을때 보이는, 잠원 한강공원 건물 지붕에 들어 앉은 커다란 누에 조각을 본 적 있는가. 있다면 그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는 두 가지 모두에 대답하지 못했다. […]
[…] 개념을 가장 가깝게 활용한 음식이 2~3년 전 정식당-이전 직전-의 ‘트리플 해장국’이었다. 국물은 국물 대로 내 바탕으로 삼고, 껍질을 바삭하게 지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