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차

그리하여 당분간 서울을 떠나 있게 되었다.

1일차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다음 비행기까지 일곱 시간. 웬만하면 보안 검색이 귀찮아서라도 공항에 있는 걸 선호하는데 일곱 시간이라니 자신이 없어 짐을 다시 부치고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사실 일곱 시간도 어중간한 것이 오가고 보안 검색 또 받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딱히 뭘 하기도… 그래서 그냥 시내 한 가운데(유니언 스퀘어)에 내려 아무 생각 없이 걸어 여객선 터미널까지 갔다. 1층에는 카우걸 크리머리, 크리스 코센티노의 보칼로네, 애크미 베이커리 등 이름 날린다는 가게들이 있다. 2년 전처럼 들어오고 나갈때 이름에 맞게 인앤아웃 버거를 먹을 계획까지 다 세워 놓았으나 내리기 직전에 밥을 줘서 딱히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간소하게 양젖 요거트 한 통. 비행기 열 시간 타고 언제나 부담스러운 입국심사 거쳐 기차까지 타고 나와 먹기에는 좀 시다고 보지만… 아름다운 베이브릿지를 양념삼아 꾸역꾸역 삼켰다. 참으로 건강해지는 맛.

 

샌프란시스코 각지에 계시는 블루 보틀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다 필요 없고 바로 입에 넣을 수 있을만큼 온도가 맞는지, 표정을 찌뿌리지 않을 정도로 쓰고 신맛이 지나치지 않는지만 보면 된다. 바로 이틀 전에 폴 바셋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위에 겹치니 차이가…

 

역시 별 생각이 나지 않았으므로 39번 피어까지 쭉 걷기로 했다. 볕이 따가운데다 관광객도 주민도 많아 그리 유쾌한 발걸음은 아니었다. 시차 때문에 안 돌아가는 머리 탓. 중간에 <와이어드>지의 창업주가 몇 년 전 개시한 ‘빈 투 바’ ‘쵸(TCHO)’의 본부가 있어 들어가 시식을 해보았는데… 60%대의 다크 초콜릿으로 그냥저냥

. 뉴욕의 마스트 브라더스와 비교한다면 조금은 더 세련된 느낌.

터덜터덜 걸어서 39번 피어 도착. 혹시라도 샌프란시스코에 오실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이쪽에서 시간은 써도 돈은 쓰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전형적인 관광객 동네. 물론 유니온 스퀘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냥 한 번 찍고, 내킨다면 기라델리 매장에서 선데를 돈 버린다 셈치고 한 번 먹고 유니언 스퀘어까지 오는 전차를 타면 끝인데 그 전차마저도 일요일에는 한 시간 대기였다. 사실 샌프란시스코도 세 번째지만 버스는 잘 안 타는지라.. 지도를 뒤져 두 블럭 위에 30번인가 버스가 유니언 스퀘어를 간다 하여 탔다. 차이나 타운을 관통하는 노선이라 한 번 정도 탈만 하다. 중간에 시장이 있고 찐빵 등을 파는 가게가 있으니 탄수화물이 땡긴다면 내려 드시는 것도. 늘 말하는 거지만 딤섬은 뉴욕보다 못했떤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유니언 스퀘어. 시간이 그럭저럭 되었는데 배가 고파져 건너편 노드스트롬 지하 수퍼에서 스프링롤과 과일 등을 사서 다시 지하철을 탔다. 아무래도 관광객을 위한 동네인지라 딱히 먹을 게 없으니 차라리 이 수퍼마켓에서 과일이나 치즈 등등을 사서 먹는 편이 돈을 아끼기에 좋다. 간 김에 화장실도 쓰면 좋다. 이 근처도 화장실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데, 메이시스 같은 백화점 건물에 있고, 전차 종점 바로 옆의 큰 갭 매장에도 있다. 참고하시길.

 

다시 공항으로 지하철. 이 또한 처음 타본다. 시내까지 최선의 교통수단. 처음에는 차를 빌렸다가 공항에서 반납하고 밴을 탔었는데 지옥. 엄청나게 돌아가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두 번째에는 운전을 했는데 시내까지 약 20km로 멀지 않지만 샌프란시스코가 만이라 도로가 하나 밖에 없으니 꽤 막힌다. 이 날은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서 모두 풋볼 경기가 있었으니 아마 엄청났을듯. 공항에서 유니언 스퀘어까지 편도 $8.5? 기계에서 처음엔 $20, 이후에는 $10 단위로 충전이 가능하더라. 시내까지 30분 이상 걸렸던 것으로.

다시 지긋지긋한 보안 검색을 거쳐 비행기를 타고 1시간 10분 걸려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 도착. 샌프란시스코에 비하면 한없이 한적하다. 나오니 이미 짐을 내려 가지런히 정리해놓았기에 벨트에 올릴 줄 알고 기다렸더니 ‘그냥 가져가라’고…

크렉스리스트와 에어비앤비를 뒤져 구한 숙소(이상하게도 아무도 문의 메일에 답을 하지 않더라. 유일하게 답한 한 군데의 조건이 잘 맞았음)가 있는 다운타운까지는 전철 ‘맥스(Max)’를 타고 간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도 가장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꼽히는데, 원인이라면 역시 미국치고는 잘 발달한 대중교통 때문. 버스와 전철, 전차의 연결이 비교적 잘 되어 있어 좀 기다리는 것 빼놓고는 차 없이도 그럭저럭 다닐 수 있다.

 

원래도 한적한데다 일요일 저녁이다보니 정말 별 게 없었다. 숙소를 구한 동네는 올때마다 머무른 모텔이 있는 곳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AAA 팀인 포틀랜드 비버스를 꾸리던 시절 그 홈구장 근처다. 일요일인데다가 늦어 걱정했으나 열쇠를 받으며 물어보니 바로 길 건너의 수퍼마켓이 11시까지 연다고(그때 시각 10시 10분). 바로 달려 눈에 들어오는 재료들만 잽싸게 주워 저녁을 차렸다. 저렴한 진판델-생각보다 두툼하지 않음-로 반주.

2일차

 

일어나자마자 커피마시고 본격적으로 장보러 외출. 가장 가까운 스텀프타운에 들렀다. 에어로프레스와 핸드밀을 사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실 계획이었으나 찾는 물건이 없는듯.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전날의 블루 보틀보다 조금 더 미끈한 인상. 2리터는 되어 보이는 “냉침” 커피를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잠시 후퇴. 병만 13달러에 판다고 하니 집에 들고 가 물병으로 써도?!

 

카페 길 건너 홀푸드에서 장을 봐 돌아오니 얼추 점심 시간이라 바로 상을 차렸다.

 

일단 마늘맛이 좀 많이 나는 살라미에 노르웨이에서 만든 염소젖 치즈와 살라미 판매대 바로 옆에서 찾은, 포트 와인에 절인 무화과를 얹었다. 멜론이나 파인애플, 천도 복숭아 등등을 생각했으나 더 좋은 짝이었다.

 

다음은 앞뒤로 지진 관자에 토마토와 래디시 샐러드. 둘 다 색깔이 예뻐 샀다. 토마토는 우리나라의 대추토마토와 비슷한데 신맛이 덜하고 단맛이 좀 더 두드러지며 과육도 조금 더 부드럽다.

 

메인은 대구살 구이. 파스닙을 볶다가 팬으로 옮겨 굽다가 대구살을 얹어 175도에서 15분 정도 굽는다. 흰살생선이라 밋밋하므로 레몬과 양파 등등을 버터에 볶아 만든 소스를 끼얹어 마무리. 간장 생각이 났다. 반주는 역시 저렴한 비뇨 베르데(포르투갈). 원래 더 저렴했는데 가격이 다소 오른듯.

 

디저트는 딸기와 사워크림. 멕시코 음식에 곁들여 먹는 사워크림은 좀 묽은 편이고, 그보다 가격이 높은 ‘크림 프레시’는 보다 더 물기가 적고 꾸덕꾸덕하며 더 부드러운데 어쩐 일인지 후자로 이름 붙은 제품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cultured’라 붙인 높은 가격대의 물건을 집으면 그게 결국 크림 프레시다. 나중에 다른 수퍼마켓에서 크림 프레시라 이름 붙은 것도 찾았다.

 

저녁은 동쪽으로 버스를 타고 좀 가서 포틀랜드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를 먹었다. 나폴리탄 계통은 아닌데, 높은 온도에서 잘 구웠고 맛도 좋았지만 크기를 키우면서 굽는 시간 등등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반죽 포함 전체적으로 물기가 적어 반죽이 금방 질겨졌다. 첫 쪽을 먹을때는 겉이 바삭해서 테두리까지 즐겁게 먹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급격히 질겨지더라. 양도 많지만 질겨서라도 두 쪽 정도 먹으면 막말로 GG친다.

 

피자만 먹기 뭐해 시킨 시저 샐러드는 선 굵은 스타일. 양상추의 아삭함이 차갑게 살아나는 정도.

3일차

 

시내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서쪽 동네에 숙소를 잡았는데, GQ 알란 리치맨의 기사 등 자료를 찾아보니 대부분의 행선지는 서쪽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버스로 도시를 누빈다. 그다지 자주 오지 않고 빠르게 달리지도 않으므로 어디를 가더라도 최소한 30분은 걸린다. 이날의 점심은 태국풍이라는 폭폭(Pok Pok). 하지만 정작 먹은 음식은 베트남에 가까운 듯. 거의 모든 손님들이 시키던 닭날개는 이곳의 인기 메뉴 가운데 하나인 것 같은데, 튀김의 상태만 놓고 본다면 여태껏 먹은 닭날개 가운데 최고라고 말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사진으로 짐작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크기 또한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튀겨 먹는 1kg 닭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데, 부분육으로만 파는 것들을 들여오는 듯. 젓갈류의 폭발적인 또는 찌르른 듯한 짠맛이 폭발 일보 직전까지 치고 올라오는 뒤로 단맛이 살짝 깔려있다. 그 옆은 메기 튀김과 땅콩, 박하의 샐러드. 바닥에 우리로 치면 중면쯤 되는 밀가루 국수가 깔려 있다. 틸라피아와 마찬가지로 크게 두드러지는 자신의 맛은 없는 메기 튀김 또한 닭날개 만큼이나 훌륭했다. 원래 짝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국수는 소스와 섞었을때 다소 축축해지는 조합.

 

폭발적인 맛의 음식을 먹었으니 후식에 목마른 상황, 바로 옆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길래 들어가봤다. <솔트 앤 스트로>라는 이 가게는 (그 자체로 딱히 엄청나달 건 아니지만) 지역 또는 제철 재료(꿀, 올리브 기름 등)이나 다른 업종의 재료(스텀프타운의 커피 등)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주로 내놓는다. 대여섯가지 맛을 보았는데 부드러움에 비해 단맛의 여운이 굉장히 짧아 인상적이었다. 아몬드 브리틀과 제철 메뉴라는 무화과(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작고 단단하다. 껍질을 벗고 먹는 편이 낫다.) 얼린 요거트를 먹었는데 후자쪽이 더 좋았다.

 

이후 도시에 단 한 군데 있다는 아이맥스에서 <그래비티> 감상. 50인데 30대의 겉보기 등급을 지니신 산드라 불록 누님. 출연하신 영화를 본지가 약 20년인데 아직도 건재하시다는 걸 알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멍석으로 깔고 폐소공포증 등을 올려 긴장감을 조성한 뒤 배우들의 연기로 방점을 찍었다. 멍석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라도 아이맥스 관람 필수.

 

돌아오는 길에 스텀프타운에서 마키아토 한 잔. 핸드밀을 사려 했으나 없으시다고. 아마존으로 주문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홀푸드에 들러 장을 보았다. 뭘 시켜도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것에 비해서는 온도가 낮다고 느낄 듯.

 

전해질을 보충한 물은 과연 좋은가. 호기심에 마셔봤는데 뭐라 말하기 어렵다. 장복해야 하나.

 

그리하여 저녁. 간단하게 차렸다. 일단 전채는 훈제 연어에 크림프레시, 딜, 레몬즙과 제스트. 소요시간 5분.

 

그리고 그제 먹다 남은 스테이크. 브로콜리니와 브뤼셀 스프라우트를 삶았다가 볶아서 곁들였다.

4일차

 

숙소 바로 옆 건물에 스타벅스가 있고 그 길 건너에 작은 커피숍이 하나 또 있다. 스타벅스 바로 맞은 편이라, 궁금해서 가봤다.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아늑하더라. 이 동네의 <스털링 로스터리>의 커피를 쓴다는데 에스프레소를 시키니 글랜 케런, 즉 위스키 잔에 내온다. 향을 느끼라는 의도는 좋지만 그리 높지 않은 온도가 꽤 빨리 내려간다는 단점도 있다.

 

이후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점심은 족보도 명칭도 없는 무엇인가. 토마토와 두부 샐러드를 할 생각이었으나 두부는 너무 물렀고 토마토는 아무 생각없이 지졌으며 거기에 베이컨마저 구워 얹었다. 거의 괴식.

 

한편 저녁은 평범무난한 포크찹과 팬소스. 135도 오븐에서 천천히 구워 속부터 익힌 뒤 겉을 면당 2분씩 지져준다. 한편 케일은 베이컨 기름에 볶다가 물을 자작하게 붓고 끓여 곁들인다. 다소 미국 남부식.

이렇게 4일차까지 끝.

 by bluexmas | 2013/10/12 04:50 | Taste | 트랙백 | 덧글(14)

 Commented by 삼별초 at 2013/10/12 07:24 

알차게 드시고 계시군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10/15 17:35

아예 부엌 딸린 집을 빌려서 해먹고 있습니다. 사먹는 것도 좋지만 비용도 그렇고 재료를 다뤄봐야 배우는 게 있죠.

 Commented at 2013/10/1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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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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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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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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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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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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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3/10/12 11:09 

즐거운 휴가 되시길~

아무래도 커피용 스팀밀크는 70도를 넘어서면 맛이 변하고 비린 맛이 돈다하니까요. 미국은 그 점에 확실히 신경을 쓰는군요. 위스키잔에 내오는 에스프레소는 맛.온도유지가 되지않죠..데미타세잔 이 둥글고 두께가 두꺼워야 커피향을 오래 보존할 수 있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10/15 17:37

네. 아예 테이블보 깔고 넥타이 맨 웨이터가 위스키잔에 에스프레소 내오는 곳이 있다하여 가볼까 합니다.

 Commented at 2013/10/1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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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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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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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1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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