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균형-Stumptown Gesha Road Trip
딸려온 팜플렛의 이야기를 옮겨보자.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의 커피 로스터리 스텀프타운(stumptown)의 대표 듀앤 소렌센은 ‘문익점 코스프레’를 한다. 미국인이 꾸리는 파나마의 농장에서 게샤(Gesha, 발음이 비슷해서 ‘Geisha’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닌듯)의 종자를 받아 차에 싣고는 중앙 아메리카를 거슬러 올라와 온두라스와 과테말라의 농장에 전달한 것. 사연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린 남매까지 차에 싣고는 국경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어 종자를 전달한지 7년, 그 세 농장의 원두를 수확한 것이 바로 <Gesha Road Trip>이다.
날아든 메일을 보고 많이 망설였다. 세 봉지 합쳐 510g에 $145. 종종 구매대행으로 이런저런 곳에서 원두를 사다 먹는데 비용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문제다. 아무리 빨라도 1주일, 최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저쪽에서 말하는 대로 잡아 2주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절반을 깎아먹고 오는 셈. 늘 먹는 가격대라면 상관없지만(점차 디테일이 가시지만 한 달까지는 그럭저럭 마실 수 있다. 물론 잘 볶았다는 전제 아래), 이게 대체 몇 배 비싼 건가. 계산도 잘 안 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직접 배송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그렇다기에 전화를 걸어 결제하고 DHL을 통해 5일만에 받았다. 운송비를 빼더라도 면세 한도를 넘어 도합 18%의 세금까지 내고 나니 1g에 500원 꼴로 사온 셈이 되었다. 하루에 한 잔씩 마신다고 계산할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수소문한 결과 소분하겠다는 분들이 나타나 33.3g씩, 100g을 두 분에게 보냈다.
그래서 이 비싼 커피의 맛은 어떤가. 그를 위한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커피를 주문하면서 추출방법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마침 홈페이지에서도 내가 쓰는 바라차 바리오(Baratza Vario) 그라인더를 팔기에, 그와 멜리타 드리퍼의 조합을 쓰고 있다고 밝혔더니 다음과 같은 요령을 알려왔다.
We use 21g of coffee ground slightly finer than a standard Flat Bottom filter. (I believe you said you had one of the Baratza grinders, whose settings go from fine to coarse (0 – 40) with espresso hitting around 8 all the way to french press around 30.) I would recommend starting around 18-20 and adjusting to taste from there! We suggest bringing your water just to a boil and then taking it off the heat to use.
– 물과 커피의 비율은 21:300, 즉 1:14. 대개 1:10의 비율을 쓰는데 그보다 꽤 물을 많이 잡아야 한다고. 온도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다시 물어봤는데도 대답이 없었는데, 92도면 적당하다고 본다. 한편 내가 쓰는 그라인더 기준으로 분쇄도는 18~20사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다소 곱게 가는 편이다.
Here is our step-by-step guide to brewing with the Kalita which we’ve found works best with our coffees!
Place filter in brewer and rinse, starting from the bottom center and moving outward in concentric circles. Discard rinse water.
Add coffee and shake to an even bed.
60g bloom pour (stir optional) for 45 seconds
– 스톱워치와 저울을 이용해 내리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소위 말해 ‘뜸들이기’로 60g을 물을 붓고 45초 동안 둔다.
At 0:45 circular pour to 200g, add more water using a circular pour and hit the grounds along the sides of the filter, pour small amounts periodically (25 to 50g) and try to hit 375g by 2:00
– 45초 뒤 200g을 원을 그리며 붓고(내려보면 굳이 안 그려도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목적은 물이 커피에 닿는 비율을 일정하게 조정하는 것일텐데, 이 정도로 곱게 간 경우라면 물이 기본적으로 일정하게 내려간다. 어쨌든 2분까지 375g
Allow to drain until water in slurry is about a cm or so above the grounds, pull brewer around 2:45/3:00 when brew weight is around 300g (approx 10 oz)
– 커피 위로 올라온 물이 1cm 정도 남았을때까지 내린다. 경과 시간은 2분 45초에서 3분.
(Dose can range from 20 to 23g depending on the coffee and strength desired.)
자, 그래서 맛. 관건은 사람들이 ‘쓴맛’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쌉쌀함에 달렸다고 본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렌지, 레몬, 자몽과 같은 감귤류의 껍질이나 파인애플 등에서 맛볼 수 있는 바로 그 쌉쌀함으로, 대개 신맛의 바탕으로 깔린다. 따라서 입체적인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의 균형을 잡아주는게 결국은 볶기(굽기)의 관건이다. 덜 볶으면 신맛이 너무 강하게 남거나 쌉쌀하다 못해 아릴 수 있고, 많이 볶으면 그냥 쓰고. 딸려온 팜플렛에는 파인애플이나 그랜베리, 포도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느낀 것을 끼워 맞춰 외워버리는 부작용이 있으니 그 정도까지 보려 들기보다는, 바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쌉쌀함과 신맛의 균형만이라도 잡혀 있는지 보는 정도면 충분하다.
다음은 향. 커피하는 양반들이 ‘향미’라는 말을 쓰던데 대체 어디에서 나온 용어인지 모르겠다. 향은 향이고 맛은 맛이다. 차라리 경험으로서의 맛(flavor)=Taste(맛: 쓴맛,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Aroma(향)+Texture(질감)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자스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꽃향이 가장 두드러진다.
명품이 열 배 비싸다고 보통 물건보다 열 배 좋은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고, 이 커피도 그렇다. 물론 가격에 비례해 맛이 올라는 가지만, 갈수록 그 비율이 작아지며 어느 시점에 이르면 감지가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다. 마시면서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의미는 균형에 있다. 디테일은 천차만별이니 음식마다 제각각 다르지만 ‘좋은 음식이다’라고 말한다는 건 결국 균형이 잘 잡혔음을 의미한다. 커피의 울타리 안에서만 따져 본다면, 가장 균형이 잘 잡힌 하나의 예로 볼 수 있겠다.
# by bluexmas | 2013/10/02 13:19 | Taste | 트랙백 | 덧글(1)
말씀대로 열배 가격에 열배만큼 좋은건 아니기에, (20세기는 블루마운틴, 21세기는 게샤?) 예가체프 선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