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내버려 두지않는 ‘오롯이’
1. 명절때마다 드는 생각은 딱 한 가지. 미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이 험난한 세상 자신이 미친 줄 아는 사람은 덜 미쳤고, 미친 줄 모르는 사람은 더 미쳤다. 후자가 전자에게 하는 그 수 많은 말들이 바로 명절 꼰대질.
2. 나는 요즘 ‘오롯이’가 무지하게 거슬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보다 쓰임새가 거슬린다.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문장이 거의 없다(최근 읽은 <밤이 선생이다>에서 그래도 덜 어색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시절 기도문에 오롯이가 꼭 나오곤 해서 사실 안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쓰지 않는다. 굳이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이 말을 쓸 엄두 또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구멍 숭숭 뚫린 문장에서 오롯이를 보는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오롯이를 오롯이 내버려 두라.
3. 제사상이나 거기 올라가는 음식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쓰신 분이 참여하는 쇼핑몰에서는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한우”를 판다. 제사상 욕하기 이전에 느끼함과 담백함에 대한 개념 같은 것부터 다시 정립해야 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지방이 조금이라도 관여하는 음식에 ‘담백하다’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이미 맛에 대한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비평하는 사람이 동종의 사업체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나는 옳지 않다고 본다. ‘제사상에 오르는 재료는 제철이 아니거나 맛이 없다. 사과는 반사광으로 빨갛게 색만 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식품 쇼핑몰에 관여한다면 그건 1. 대부분의 재료는 나쁘지만 내가 관여한 곳에서 파는 건 좋다. 여기에서 사라; 2. 사실 우리가 파는 것도 똑같다 가운데 하나로 읽힐 수 밖에 없다.
평가가 괜히 어려운 게 아니다. 그 자체보다 그걸 위한 여건을 만들기가 어렵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야 자유로운 평가가 가능한 법인데, 대놓고 자신의 평가를 간접광고에 쓰는 현실을 왜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가. 이해하기 어렵다. 비평의 기본 조건 자체를 갖추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비평가라 부르는가.
4. 아무 생각없이 여의도까지 자전거를 끌고 나가, 한 가운데에 현대 자동차가 전시된 카페에서 교정지를 들여다보았다. 커피는 공업용 액체 같이 지독했지만 그래도 한적해서 나쁘지 않았다. 종이에 앉은 자신의 글을 보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간신히 본다. 그래도 지금 막바지 작업하고 있는 것은 간신히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 by bluexmas | 2013/09/20 01:49 | Life | 트랙백 | 덧글(11)
그래도 요즘 젊은 사람이 명절을 두려워하게 되는 레파토리 가운데 하나는 맞지 않을까 합니다. 취직 어디 할 거니/결혼 언제하니/애는 언제 낳을 거니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