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과일의 맛
올해 가장 맛있게 먹은 과일은 코스트코에서 산 천도복숭아였다. 2kg에 9,800원. 꽤 시고 적당히 달며 껍질을 씹는 맛과 재미도 있었다. 코스트코의 청과류는 썩 좋지 않아서 잘 사지 않는 편인데 속는셈 치고 집었다가 너무 맛이 좋아 갈때마다 집어왔다. 역시 코스트코에서 파는 프로세코나 소비뇽 블랑 등등의 저렴한 스파클링/화이트 와인과, 때로 블루치즈 등등을 곁들여 함께 먹었다. 그런 종류의 와인이 지닌 자몽 등등 껍질의 쌉쌀함과 이 천도복숭아 껍질의 맛이 좋은 짝을 이룬다. 고맙다고 생각하고 먹었다. 지난 주까지는 있었는데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직업 때문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곳에서 다소 비싼 과일들도 종종 사다 먹는데 만족하기가 어렵다. 이유는 꼽자면 여러가지겠지만 결국 ‘과일의 맛=단맛’으로 수렴되는 현실 때문이다. 달아야 맛있는 과일이라고 생각하니 전부 그쪽으로 품종 개량을 한다. 예전엔 봄만 되면 딸기 먹을 생각에 설레었는데, 이젠 무덤덤하다. 사봐야 전부 딸기 아이스크림맛이 나기 때문이다. 딸기만 먹고 아이스크림 맛까지 느낄 수 있으니 좋지 않느냐고? 적어도 내가 먹어보았던 여러 나라의 딸기 가운데 우리나라 것만큼 달기만 한게 없다. 수입냉동딸기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니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한편 프랑스에서 스타쥬를 했다는 셰프 한 사람이 ‘토마토가 디저트처럼 달더라고요’라는 이야기 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이걸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맛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과일에도 단맛이 없지는 않지만 정말 그 단맛을 위해서 과일을 먹어야 할까? 그러려면 차라리 설탕이나 꿀을 먹는게 나을텐데, 맛있는 과일이랍시고 바로 그 설탕이나 꿀맛에 비유까지 해가며 파는 현실은 씁쓸하다. 그러면서 아이스크림이니, 케이크니 하는 디저트가 달다고 난리를 치는 이 현실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단맛이 너무 싫어 올 여름은 작심까지하고 참외와 수박을 거의 먹지 않았다. 수박은 딱 한 번 1/4통을 사다 먹었고, 참외는 아예 사지조차 않았다. 수박이야 그렇다쳐도 참외는 독하도록 달아 특유의 풋내를 느끼기가 힘들다. 과일맛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집에서 키워 먹을 수는 더더욱 없고… 갑갑하다.
# by bluexmas | 2013/09/17 12:37 | Taste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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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근무지에 놀러갔다가 같이 일하던 동료-이분은 그동네 토박이 공무원-를 만났는데 농업기술센터로 발령받으셨더라고요. 때가 마침 지역 농산물 축제였는지라 거기 전시된 홍옥좀 어디서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우리 관내에서도 홍옥 재배하는 곳이 없어. 딱 하나 있는 게 바로 우리 센터에서 키우는 몇 그루정도. 그게 저기 전시된 거고.”하고선 그 전시품을 막 집어주더라는…그 동네가 워낙 경작지가 부족한지라 과수농업쪽에 몰빵하다시피하는 곳이라서 귤과 파인애플 빼고 한반도에서 재배되는 모든 과일은 다 재배하는 곳인데도 홍옥을 볼 수가 없답니다. 그나아 아오리는 시장성이 있으니 재배하지만. 그 특유의 신 맛이라고 해야 하나…그것때문에 가을되면 홍옥나오기만 기다렸는데 요즘은 정말 찾기 어렵더군요. 뭐 보존성 나쁘고 낙과 심하고 하니 과수농가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한참 떨어져서 별로 키우고 싶지도 않겠지만요. 요즘 취향 자체가 그런 특별한 맛을 별로 찾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옥도 홍옥이지만 국광은 정말 본지 오래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