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운영진께 드리는 글
이글루스가 SK로부터 독립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글을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장애가 있을 때마다 빗발치는 덧글 및 항의글에 숟가락 하나 보태봐야 딱히 귀를 기울이실 것 같지도 않아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로그인 장애가 나는 것을 보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새로운 인수 소식이 들리더군요. 따라서 시기가 좀 공교롭지만 이번엔 그냥 의견을 좀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이글루스의 운영 주체가 바뀌니 “응원”해 달라는 후드티 이벤트를 보았을때,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응원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추상적인, 막말로 뜬구름 잡는 개념인데다가 그걸 해야할 이유조차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궁금합니다. 운영추제가 바뀌는 것만으로 응원을 해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응원이든 또는 성원이든, 그걸 보낼 동기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달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수단 또는 매체의 특성은 연속성입니다. 위치야 망이 뻗지 못하는 곳이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기반을 갖춘 곳에서라면 언제라도 접근이 가능해야 합니다. 즉 로그인 장애 같은 게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연속성=안정’인데 그걸 보장하는 어떠한 계획에 대해서 운영진께서 언급하신 적이 없습니다.
특히나 안정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수익 모델의 부재입니다. 어쨌거나 운영하시는 분들께는 이게 사업이어야 합니다. 즉, 이득을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면 인수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부에서는 고민이 있었는데 밝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인수하셨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안정을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므로 그에 대해 이런저런 방안을 세웠다’라고 공개하시고 대책을 함께 논의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존재가 비전없는 사업가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런 모습을 보이고 계십니다. 광고도 좋고 유료회원도 좋습니다. 일단 공개를 해야 회원들이 ‘아 이런 부분에서 고민 및 노력을 하고 계시구나’라고 생각하고 당장 움직이려 들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일정(timeline)입니다. 운영주체가 바뀌므로 크든 작든 불편함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감수할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히 공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써왔습니다. 백업이 공식적으로 되는 시스템도 아니고 옮기기도 어렵습니다. 이래저래 현실을 따져보면 귀찮아서라도 옮길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한정 그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의 인내심은 한없이 짧습니다. 내부적으로 데이터를 가지고 계실테니 사용자가 빠져나갔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다른 블로그로 옮기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때가 되어 부득이하게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뚜렷한 일정을 제시하셔야 옳습니다. 처음 인수 발표와 동시에 ‘두 달 내에 00기능을, 석 달 내에 00기능을 완전히 정상화 하겠습니다’와 같이 구체적인 계획이 뒤따랐어야 동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게 후드티와 응원 메시지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정상화하겠습니다’라는 공고가 올라옵니다. 그 “최대한”이라는 것이 대체 언제입니까? 늘 우스개소리로 ”언제 한 번 밥 먹자’고 말하는 사람하고는 영영 밥 못 먹는다’는 말을 합니다. 약속에 시한을 정해놓지 않았다면 지킬 의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입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믿음이 깨졌습니다.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제가 이글루스를 쓰기 시작한지 내년이면 10년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단골집하고도 비슷합니다. 정을 붙였으니 음식이 조금 맛없어도, 가격이 다소 올랐어도 웬만하면 갑니다. 그리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함께 고민도 가능합니다. ‘아 내가 이번 주에 한 번 더 찾아가는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찾아가 한 그릇 더 먹습니다. 그 길에 친구도 한 명 더 데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래도 저 양반들이 계속해서 이걸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느낄때만이 가능합니다. 어제의 간 안 맞는 국, 오늘의 이 빠진 그릇의 원인이 사라진 의욕이라면, 그때는 과감하게 접고 다른 집으로 갑니다.
엉겁결에 선택한 서비스였지만 이글루스의 장점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밸리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의 성격을 지녀 포스팅을 장려하고, 그로 인한 콘텐츠가 구글 검색에 잘 걸린다는 점은 네이버가 독점하는 한국의 인터넷 현실에서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쉽게 이전을 결정할 만큼 괜찮은 블로그 서비스도 없습니다. 이글루스 같은 시스템에서 자리잡으면 사실 네이버 같은 쪽으로 옮기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시스템 자체에 종속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주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의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바라는 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통계가 작동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사이트 방문이나 접속에 문제가 없고, 스팸이 꼬이지 않을 정도면 됩니다. 하지만 검색은 분명히 정상화 되어야 합니다. 블로그의 장점은 자발적인 콘텐츠 생성으로 인한 정보 축적입니다. 따라서 검색 불가능한 블로그는 블로그도 아닙니다. 만일 이 부분에 대한 고민-영구적 불능?-이 없이 인수를 결정하셨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검색이 불가능한 현실이 재정적인 문제와 얽혀 있다면, 선택 가능한 유료 서비스 도입을 적극 건의합니다. 결국 블로그에서 유료 서비스란 용량의 증가 또는 백업입니다. 이글루스에는 공식적인 백업 시스템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달 일정액을 받는 조건으로 정기적인 백업만이라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 가능하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불가능하다면 위키피디아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모금이라도 좋습니다. 뭐라도 좋으니 이용자들의 불안을 잠식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블로그질 10년에 여기에 썼던 글을 바탕으로 밥을 벌어 먹게까지 된 사람으로서 생각해보면, 블로그의 핵심은 결국 일관성(consistency)입니다. 이는 개인이 꾸준히 글을 올려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도 의미하지만, 이글루스처럼 커뮤니티의 성질을 지니고 그게 매력인 서비스라면 그 사용자 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이글루스 운영진의 현실적인 고민을 촉구합니다.
bluexmas 드림
# by bluexmas | 2013/09/10 13:24 | Life | 트랙백 | 덧글(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