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코리 리 (Benu) 인터뷰
몇 달 전 <젠틀맨>에 실린 코리 리(베뉴/샌프란시스코)의 인터뷰를 올린다. 지면에 담기까지 곡절이 좀 있었다. 원래는 작년 여름, <맛있는 상식>의 후속편으로 준비했던 기사였다. 좋은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를 소개하는 기사를 써보자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나는 이를 인터뷰로 이해하고 준비했다. 부업에 정신없던 시기라 레스토랑의 PR에 의뢰를 해서 간신히 시간을 내 미리 질문을 보내고 페이스타임으로 인터뷰하고 사진까지 받아 송고했는데, 그리고 나서야 매체에서 원했던 건 프로파일링이라는 걸 알았다. 원칙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음식을 먹어본 셰프 위주로, 또 최소한의 가공으로 철학을 전달할 수 있는 인터뷰를 선호하기에 당황스러웠다(첨언하자면, 프로파일링, 특히 먹어보지 않은 셰프의 기사를 작성하는 건 정말 쉽다. 인터넷만 뒤지면 된다. 따라서 하고 싶지 않다). 한 번 원고를 수정해 보냈지만 역시 원하던 형식이 아니라는 회답을 받았고 결국 양쪽 합의 아래 보판을 결정했다. 그리고는 내가 부업에 완전히 파묻혀 숨도 못 쉬는 바람에 연락을 못했고, 그쪽에서도 연락이 없어 연재 계획은 그렇게 흐지부지 무마되었다. 이후 <젠틀맨>과 인연이 닿아 <미식의 이해>를 연재하는 김에 제안을 해서 싣기로 결정을 했는데, 그 또한 그쪽 지면 사정과 사진 보충 등의 문제로 몇 달이 더 걸려 결국 올 봄에 빛을 보았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인터뷰를 수락한 셰프, 그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준 홍보담당의 시간과 노력을 결국 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행이었다. ================================================================================
코리 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미국 최고의 셰프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 셰프로는 유일하게 두 군데의 레스토랑(캘리포니아 주 나파 밸리의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와 뉴욕 맨패튼의 ‘퍼 세(Per Se)에서 최고의 영예인 프랑스 미슐랭 별 세 개를 받은 그의 주방 양쪽 모두에 코리 리의 손길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총 8년여에 걸친 토마스 켈러와의 협력 체제를 프렌치 런드리의 총주방장(Chef de Cuisine)으로 마친 뒤 그는 2010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 자신의 레스토랑 ’베뉴(Benu, 이집트어로 불사조)’를 연다. 동양과 서양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 음식이 광주요에서 특별 제작한 그릇과 함께 빛을 발해, 베뉴는 문을 열자마자 찬사와 함께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두 개를 받는다. 세계적인 셰프들로부터 음식을 통한 창조의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기획한 인터뷰의 첫 번째 순서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를 이쪽 길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음식 관련 기억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혹시 그런 기억이 있는가?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외할머니가 찾아오셔서는 함께 공원에 갔던 적이 있다. 철이었는지 사방에 널린 도토리를 할머니께서 주워 오셔서는 집에서 직접 묵을 쑤어 주셨다. 도토리를 말려서 까고 갈아 끓인 다음 틀에 넣어 굳히는 등, 묵을 쑤는 중간 과정마다의 결과물이 하나씩, 각 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기억이 선하다. 자연에서 직접 재료를 얻어, 그것도 손만을 써서 하나의 음식으로 식탁에 올리기까지의 과정 전부를 처음 본 경험이라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베뉴를 처음 연 이후 도토리로 만든 요리를 꼭 하나씩 코스에 포함한다.
다른 인터뷰를 통해 ‘퓨전’이라는 용어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베뉴의 음식을 스스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음식에 ‘퓨전’이라는 용어를 붙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각자 서로 다른 의미로 퓨전이라는 말을 쓰고, 그 와중에서 부정적인 의미가 배어나올 수도 있다. 퓨전이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그걸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퓨전’을 과학, 즉 수학이나 물리의 용어로 인식한다. 물리력이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그런 것이 아니다. 베뉴에서는 동서양 모두의 재료와 조리법을 쓰지만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 하나의 음식으로 완성되는 걸 목표로 삼는다. 일단 베뉴의 음식은 현대적이다. 요리에서 ‘현대적’이라는 용어는 과학이 가미된 조리기술을 이해해서 실제 조리에 실험 및 적용하고 지속적인 진화를 꾀함을 의미한다. 한편 베뉴가 자리 잡고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45%에 이르는 동양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젊고 혁신적이며 개방적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는 항상 젊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었으며, 혁신은 베뉴가 좇는, 따라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열린 마음으로 음미해주었으면 하는 가치다.
동서양 음식을 모두 접한 사람으로서 그 둘의 가장 큰 차이를 꼽는다면? 가장 큰 차이라면 간 맞추기의 접근이 다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동양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 서양 음식이 짜다고들 말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사실은 동양의 음식이 더 짠데, 이는 동양 음식에 쓰는 양념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일 뿐이다. 맛의 기본을 이루는 양념인 간장, 된장 등은 모두 복합적인 발효 풍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염도를 다르게 느낀다.
베뉴의 음식을 고안할 때 한국, 또는 동양과 서양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찾으려 했는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 1: 중국 1; 프랑스 2’처럼 어떤 공식을 만들어 거기에 맞추거나, 부분적인 결합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매우 한국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중국 음식, 스페인 음식도 마찬가지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베뉴의 음식은 자연스레 조화를 이뤄 발전했기 때문이다.
프렌치 런드리의 셰프 토마스 켈러와 8년을 일했으니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베뉴를 열면서 계승하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프렌치 런드리에 남겨 두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영향, 또는 전통이 있는지? 프렌치 런드리를 비롯한 토마스 켈러의 레스토랑과 베뉴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 대부분은 손님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홀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레스토랑의 식구들이 의사소통하는 방식이랄지, 재료의 손질 및 보관 방법, 그 재료를 공급하는 사람들 등을 꼽을 수 있다. 음식의 맛을 통해서는 드러난지 않는 측면이다. 한편 프랑스 요리의 심각함, 형식에 큰 비중을 두는 측면(<프렌치 런드리>와는 달리 베뉴에서는 자켓을 입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과는 거리를 둬, 그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빚어내고 싶었다.
레스토랑을 계획하고 여는 과정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고, 아직도 염두에 두고 있다. 레스토랑 업계에 종사하면서 실패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눈이 먼 것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어려운 업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감 또한 가져야 한다. 오너셰프로 스스로의 레스토랑을 꾸려나가는 것과 다른 사람의 사업체에 고용된 세프로 일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다면 오너셰프로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리의 예술적인 측면과 사업, 즉 현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원하는 음식을 만들면서도 원가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예술, 또는 창의적인 셰프와 사업가가 내리는 결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균형을 찾으려 애쓰지만 그 두 요소 가운데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돈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셰프가 될지도 모른다. 음식도 레스토랑도 다를 것이다.
음식에 관한 블로깅이 한국에서도 성황이다. 인터뷰에서 레스토랑을 처음 열고 블로그를 통한 사람들의 반응에 놀랐다고 들었는데. 블로그를 통한 반응 그 자체보다, 음식에 대해 논하는 블로그 자체가 그렇게 많다는데 놀랐다는 의미였다. 최근에서야 그러한 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프렌치 런드리 시절에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이러한 블로그 문화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음식에 대한 지식도 없는데 평가를 내리고, 그러한 평가가 셰프의 평판이며 레스토랑의 영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음식에 대해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찾아와야 레스토랑의 문을 계속 열 수 있다. 그렇게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내가 셰프로서 이러한 레스토랑을 꾸려나가는 걸 가능케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당연히 있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이해나 경험이 부족한 가운데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무지하면서도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게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아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한다.
그러한 글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가? 베뉴와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보게 되면 기분이 나빠지는 건 당연하다. 경험이 없는 블로그든, 경험 많은 음식 평론가든, 면전에 대고 직접 말하든 상관없다. 무엇보다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손님에게 행복을 선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나에게 화가 나고 그 다음 경우에 따라 쓴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경우도 있다.
영감을 얻는 요리 외 분야가 있는지? 야구, 축구 등 팀스포츠는 전부 좋아한다. 팀을 이뤄 같이 한다는 개념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리가 아니라면 디자인을 했을 것 같다. 전화기처럼 잡거나 만질 수 있는 물건의 디자인을 의미한다. 일상에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고 먹음으로써 즐길 수 있는 요리를 좋아하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창조성 등으로 일상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무엇인가를 디자인하는 일이라면 다 좋다.
요즘 즐겨먹는 한국음식이 있다면?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음식은 별로 맛이 없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종종 먹을 걸 가져오거나 보내준다. 집의 냉장고는 거의 비다시피 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에서 온 마늘쫑 장아찌가 있다. 밥 위는 물론 피자에도 얹어 먹는다. 집에서는 밥을 해서 거의 채식에 가깝게 먹는다.
한국에 종종 오는데 무엇을 즐겨 먹는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좋은 음식들을 먹게 된다. 간장게장과 같은 음식은 좋아해서 갈 때마다 먹는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같은 종류의 게가 없어서 직접 담가 먹지는 못한다. 한편 장충동의 ‘전원’도 좋아한다. 보쌈도 좋아하는데, 재료가 좋아서인지 맛있다. 한국 재료는 정말 훌륭하다.
음식의 측면에서 베뉴가 어떻게 진화할 것이라 보는가? 무엇보다 레스토랑은 자연스레 진화해야 한다. 목표라면 우선 베뉴가 일부러 찾아오는 레스토랑(destination restaurant)로 자리 잡는 것이다. 베뉴에는 단품과 맛보기 메뉴가 있다. 젊은 셰프로서 무엇보다 손님을 많이 끄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단품 메뉴를 준비한다. 한 시간 남짓 하는 짧은 시간 동안 몇 가지의 요리만 맛보려는 손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맛보기 메뉴를 손님들이 더 많이 찾는 레스토랑으로 베뉴가 자라기를 희망한다. 그를 통해 손님들이 총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맛보기 메뉴만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굉장히 큰 진전일 것이다.
한국음식이 조금씩 각광을 받는 추세다. 당신이나 ‘모모푸쿠’의 데이비드 장 등 한국계 셰프들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혹은 더 나아가서 세계 속에서 한국음식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보다 더 우리 음식에 초점을 맞춘 레스토랑을 열 계획은 혹시 없는지? 주류 음식으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뉴욕, 런던 등 세계적인 대도시에는 한국인이며 한국 음식점이 꽤 많지만, 그런 몇몇에서도 외곽지역으로 벗어나면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도 한국 음식에 대해 잘 모른다. 그 경향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시점이기는 하다. 한국 바깥의 한국 음식점은 거의 전부 생계형이어 왔다. 이민자가 생계 수단으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형태였다는 의미다. 뚜렷한 사업 계획을 가지고 시장을 분석해서 여러 도시에 열고 운영하는 커리어라기보다, 생계수단인 직장의 개념이었고 그래서 발전이 없었다. 2, 30년 전의 일본 레스토랑 ‘베니하나’와 같이 여러 위치에 자리 잡아 우리 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그런 레스토랑이 없다. 이제 우리도 세계를 대상으로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 추세라 그런 레스토랑을 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음식의 미래는 어떠한가?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등, 한국을 보면 문화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먹는 것은 물론 요리에도 관심이 많고, 엔터테인먼트의 측면에서 레스토랑과 그 사업을 이해하는 세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음식에 관심 및 높은 가치를 두고 투자를 하려는 원동력으로써 매우 중요하다.
커리어와 직업으로서의 레스토랑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음식 전반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보다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음식점 서비스에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라면? 보다 한국 음식에 치중한 레스토랑을 열 계획 같은 건 없는지? 한국 음식점에 관심이 아주 많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베뉴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니 기회가 닿는다면 다른 도시에 다른 콘셉트의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배우며 자라는데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떠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업체로서 꾸준히 자랄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성장을 말하는데, 당신처럼 되기를 꿈꾸며 조리를 공부하는 젊은 세대에게 해줄 말은 없는지? 직업윤리를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한다. 매체에서 음식 관련 콘텐츠를 정말 많이 접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사실 매체를 타는 셰프는 정말 극히 일부다. 유명세 등을 좇기보다 기본이 중요하다. 손으로 음식 만드는 그 자체를 좋아하고 그 음식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커리어를 잘못 고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외의 측면은 너무 작은 비율이므로 목표로 삼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월간 <젠틀맨> / 사진: 베뉴
인터뷰, 셰프, 코리리, 베뉴, 샌프란시스코, 미슐랭, 젠틀맨 # by bluexmas | 2013/06/01 12:03 | Tast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