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목장과 소규모 국산 식품 홍보 방식의 문제
요거트에 관한 글을 올렸더니 몇몇 분이 전라도의 소규모 유제품 목장 몇 군데를 알려주셨다. 그 가운데 발효버터를 만든다는 유레카 목장(전남 영광 소재)에서 요거트와 발효버터, 우유를 주문했다.
1. 요거트(가격은 홈페이지 참조)
설탕을 아예 안 넣었다면 좋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달아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가격에서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맛인 가운데, 바로 그 설탕이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백설탕=나쁜 재료’라는 요즘의 인식을 믿거나 받아들였는지, ‘브라질산 사탕수수를 직접 졸여 만든 비정제당’을 쓴단다. 처음 홈페이지에서 관련 글을 보았을때, 혹시 농담은 아닌가 생각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관련 글도 쓴 적 있지만 설탕은 설탕이다. 흑설탕의 미네랄은 소량이라 맛에는 영향을 미쳐도 영양이나 기타 효능과는 상관이 없다. 게다가 그 맛이 요거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러한 가공이 단가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직접 가공하는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그냥 도매로 백설탕을 사다가 쓰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한편 기본으로 비닐 포장을 하고, 플라스틱 병을 선택할 경우 400원의 추가금을 내야한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400원은 큰 돈이 아니다. 단지 포장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왜 굳이 요거트에만 기울여야 하는지, 그걸 모르겠다. 그럴거라면 우유는 왜 비닐 포장을 하지 않을까? 점성이 요거트보다 낮아서? 혹 맛을 지키기 위해 유리병을 쓰고, 그럴 경우에 추가금을 받는다면 이해할 수 있고 망설임 없이 선택하겠다. 또한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다. ‘플라스틱 병에 담긴 제품은 정상가, 비닐 포장을 선택하실 경우 400원 할인’이라고 홍보했다면 느낌이 어땠을까?
2. 우유
무지방 우유인지 모르고 주문했다. 알았더라면 아마 건너뛰었을 것이다. 맛과 품질이 어쨌든 지방을 뺀 우유에는 관심이 없다. 이 제품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버터를 위해 크림을 분리하고 남은 걸 파는 모양이다(크림에서 버터를 분리한 건 버터밀크). 지난달 후쿠오카에 갔을때 우유를 마시고, 고급 우유의 맛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고급=무겁고 복잡한 맛’ 이어야 할까?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비싸게 팔리는 우유의 대부분이 그런 맛이다.
3. 발효버터
발효버터 자체에 대해서는 계획 중인 버터 관련 글에서 따로 다루겠다. 맛에는 큰 불만이 없었지만, 냉장고에서 꺼냈을때 부스러지는게 자꾸 걸려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이런 글을 찾았는데, 버터가 부스러지거나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운 건 결국 제조 과정(냉각 및 저어주기)에 달렸다고 한다. 복잡한 이야기인데, 한마디로 제조과정에서 막을 수 있는 문제라는 의미다.
한편 부스러지는 것만큼이나 높은 가격도 구매를 망설이게 한다. 200g에 8,500원이다. 이즈니니 루어팍이니 하는 것들이 250g에 6~7,000원대다. 재료의 질을 따지기 이전에 전통과 노하우 면에서 앞선다. 배송비 2,500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생산 시스템 때문에 그 배송도 1주일에 한 번씩 몰아서 한다는 점 또한 걸린다. 스티로폼 상자에 냉장제 등, 어느 정도 과대포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보니 포장의 처리도 거추장스럽다. 택배에 포장에, 탄소발자국이 수입품에 비해 결코 작다고만 할 수 없다. 한마디로 저런 제품에 비해 접근이 어렵다. 예전에 비해 발효버터를 구하기가 훨씬 쉬운 요즘이라, 백화점 말고도 동네 마트에서 괜찮은 제품들을 살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불편함과 높은 가격을 무릅쓰고 소비자가 선택하려면 품질 면에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소규모 제조업자들이 감정적인 접근에 치우친다. 효능이나 ‘신토불이’식의 국산품 애용 권장 등이 주를 이룬다. 100g에 18,700원인 생햄을 ‘웰빙식품’이라 홍보한다. 효능 자체는 둘째치고서라도, 근본적으로 많이 먹을 수 없는 제품에 굳이 웰빙 딱지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런 방법에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종류의 외국 음식은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승산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모두들 어둠 속에서 서성이는 느낌이다. 소비자야 그렇다쳐도, 생산자마저 모른다. 제품을 만들줄은 알지만 그 맛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또 쓰임새가 어떤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쌀을 생산하는 사람에게 밥 잘 지어 먹는 방법을 물으면 ‘그냥 압력밥솥에 지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만드는 소시지는 그냥 썰어 케첩을 뿌려 조리예처럼 내놓는다. 100g 6,000원인 국산 라클렛 치즈에는 아마추어 냄새 물씬 나는 블로그 포스팅에서 발췌한 조리예가 담겨 있다. 김밥에, 불고기에, 감자전에 녹여서 먹으란다. 100g에 6,000원 짜리를? 코스트코에서 먹을 수 있는 치즈가 1kg에 10,000원대다. 맛이 없더라도 가격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유레카 목장의 경우도 모차렐라 치즈를 새우살에 올려 녹여 먹는다는 이야기는 정성껏 만든 자기 제품의 수준을 스스로 깎아내릴 수도 있다. 버터라면 효과적인 보관 방법, 도움이 될만한 레시피-하다 못해 쿠키라도- 등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취향은 아니어도 깔끔하게 만든 홈페이지의 홍보 및 안내 문구들을 잘 들여다 보면 문장의 호응이랄지 맞춤법 등이 허술하다. 사실 전문인력에게 맡길 일인데, 과연 그 전문인력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국산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아껴줄 수 없는 현실 속에 산다. 관심을 가지고 지갑을 열지만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 by bluexmas | 2013/05/29 12:48 | Taste | 트랙백 | 덧글(17)
‘이런 이런 맛을 위해서 노력해보니 이런게 만들어졌다’랑은 많은 차이죠
음식은 올림픽이 아닙니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 지갑을 열어줄 소비자는 극소수이고 소비의 연속성도 보장할 수 없겠죠
참… 잘 만든 발효유는 물을 좀 타서 희석해 마시는 것도 좋네요
터키 사람들이 그렇게 마시던데 뭔 맛일까 싶어서 해보니… 왜 그러는 지 알 것 같더군요
잘 만들고 진한 것 한정…..
당밀도 분리하지 않아 거친 맛이 있는 그런 설탕을 건강식이라고 하면서 가격도 상당히 비싸게 주고 사는데 사실 오키나와 흑설탕이 더 싸다는 느낌입니다.
이거나 그거나…
음식은 결국 맛으로 결정되고 건강식이냐 아니냐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인데
나도 만드네 와 나도 먹네 하는 허세들이 만나는 것이 소위 요즘 웰빙 양생 메뉴들의 범랍이더군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가장 싼 치즈가 프로세스 치즈 아니면 모짜렐라 치즈인데 한국에서 외국보다 비싸게 치즈 만들어서 새우 살에 올려 먹으라니… 허 참… 허허허…
(랍스터나 킹프라운 가운데 잘라 펴서 치즈 듬뿍 올려 구운 것은 아주 일품이기도 합니다)
비싼 치즈를 정말 먹었다 싶게 만들어주는 요리를 개발하지 않은 것도 좀 패착이네요.
치즈는 생산하는데 치즈를 즐기지 않는 사업주인지… 원…
어쨌든 저런 어이없는 조합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즈는 그냥 먹는 음식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인데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정보는 널렸는데 주울 생각을 못합니다.
이지니나 루르팍 앙코르 이런 것들은 아주 저렴하고요.
한국산이 비싸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있을려나요? 있을까요?
1 Response
[…] 이것이 결국 한국에서 실현 및 지속 가능한 farmer’s market이라 생각한다. 치즈, 요거트, 사과, 복숭아 등등, 이런저런 걸 사먹어 보았지만 여태껏 만족스러웠던 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