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수납장
한밤의 대참사를 겪고, 며칠 망설인 뒤 CD수납장을 하나 맞췄다. 돈보다는 물건을, 그것도 부피가 큰 가구를 들인다는 사실이 가장 큰 덩어리의 망설임이었다. 그러나 한 번쯤 해보고도 싶었다. 사실은 음악을 가장 아끼니만큼, 지금까지 모아온 음악에게 그만큼의 대접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간단한 산수로도 계산할 수 있지만 어째 더 귀찮아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던 구석기시대의 캐드 프로그램을 돌려 간단한 도면을 그려 인터넷에서 견적을 냈다. 얘기를 나눌때는 만드는 이의 정신이 좀 없어보였지만 결과물은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그렇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에 두고 있던 색을 내줬다. 다만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바깥벽은 초등시절 국기함에 바르는 토분과 똑같은 색이라 별로다.
사실 이 장에 담긴 CD는 전부가 아니다. 4년 전 들어오면서 우선 순위를 정해 아끼지 않는 것, 디지팩 등 특별한 포장이 아닌 것들을 전부 케이스에서 겉 및 속지와 분리해 한데 모아 두었다. 바다를 건너야 하니 비싼 이사짐의 부피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게 장에 담은 것만큼 있고, 또 요즘은 많이 사지 않아도 거의 대부분 디지털로 받는다. 물론 수납장을 들이지 않으려고 끝까지 망설인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시간과 공간은 결국 돈이다. 딱히 거기에 쓸 여유가 없다. 아, 그래도 솔직히 저렇게 꿰어놓으니까 마음이 뿌듯하다. 장 앞에 서서 ‘아, 이런 판도 샀었나?’라며 꺼내어 옆의 플레이어에 돌려본다. CD에서 데스크탑에 받은 뒤 아이튠스 매칭해놓은 아이패드에서 셔플로 대강 돌리는 게 훨씬 편하지만 이것도 나름의 재미는 있다. 최근에 산 Atoms for Peace “한정판” 자켓을 담은 칸과 정렬했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더니 어째 보기가 썩 좋지 않다.
# by bluexmas | 2013/05/15 00:57 | Life | 트랙백 | 덧글(4)
저도 알맹이만 남기거나 중고샵에 팔거나 친구한테 넘기거나를 몇차례 반복했는데도 깨끗이 보관하기 어려운 양이라 늘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