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5)- 맛의 큰 그림

일본의 요리대결 쇼 <철인요리왕(料理の鉄人)>이 13년 만에 시청자 곁으로 돌아왔다. 유튜브 등을 뒤져 전 시리즈를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은 보았다. 승부는 미리 정해놓았을지 몰라도 과정은 아니었을 터, 실시간으로 벌이는 조리 기술 및 콘셉트 대결에는 보고 또 봐도 놀라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만든 건 화학조미료의 출연이었다. 어떤 일화였는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프렌치의 달인 사카이 히로유키의 조리대에는 흰 바탕, 빨간 글씨의 조미료 봉지가 분명히 놓여 있었다. ‘철인의 맛 비결이 바로?!’라며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선하다.

물론 파인 다이닝과 화학조미료의 관계는 보다 더 심사숙고해 봐야할 사안이지만, 그 핵심을 이루는 맛은 어떤 음식에도 붙박이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에 이어 ‘우마미(umami, 旨味)’가 일본말 그대로 불리며 다섯 번째 맛으로 인식되는 현실이다. 혀를 비롯해 온 입 안에서 느끼는데, 정확하게 묘사하기 어렵지만 맛에 두께 또는 여운을 더한다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100% 믿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말 표현인 ‘감칠맛’ 또한 입에 감기는, 즉 ‘감치는 맛’에서 왔다고 한다. 주로 ‘MSG(Monosodium glutamate)’, 즉 글루탐산나트륨이 주요 성분인 화학조미료를 통해 우마미를 더하다 보니 마치 ‘우마미=인공의 맛’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우마미의 자리는 파인 다이닝에도 확고하다. 서양식의 재료 가운데는 토마토, 버섯, 파르메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안초비가 그 대표주자다. 볼로녜제 같은 토마토바탕 파스타 한 그릇이면 우마미의 향연을 맛볼 수 있는 셈이다. 서양요리의 바탕인 육수에는 보통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우마미를 더하는데, 저 재료들을 한데 모아 만든 ‘우마미 페이스트’마저 시판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필자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혀에는 기본 네 가지 맛을 느끼는 영역이 따로 나뉘어 있다고 배웠다. 혀의 맨 앞부분으로 단맛, 그 양 옆으로 짠맛, 그 뒤로는 신맛, 맨 뒤쪽으로는 쓴맛을 느끼는, ‘맛 지도(taste map)’ 이론이다. 요즘도 그렇게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1900년대에 독일에서 나온 이 이론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맛을 혀 전체로 느끼지만 영역별로 민감도에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우마미를 제외한 네 가지 기본 맛이 파인 다이닝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서 알아보자.

최근 한식 현대 요리를 표방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예전에 비해 음식이 전반적으로 더 싱거워져 셰프에게 물어보니, ‘싱겁다면 괜찮은데 짜면 손님이 화를 내다시피 항의해서 싱겁게 간할 수밖에 없다. 단백질의 경우 간을 좀 더 해야 맛이 살아나는데 아쉽다’는 대답을 들었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행위는 단지 ‘짜다/짜지 않다’의 흑백논리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재료 특유의 맛과 향을 살려주고 음식 전체의 맛을 어우러지게 도와준다. 양식은 아니지만 곰탕이나 설렁탕 등, 고기나 뼈를 우려 만든 우리 국물 음식도 각자 더하는 소금의 양에 따라 그 맛이 극적으로 변한다. 소금을 넣지 않는다면 느끼함과 고기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스테이크도 마찬가지다. 소금간을 하지 않는다면 맛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지 못한다. 좋은 고기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장 사나흘까지의 시간 여유를 두고 소금간을 해 냉장 보관하는 것이 맛있는 스테이크의 기본 비결이다.

간장이나 된장 등 발효 장류로 간을 맞추는 우리 음식과 달리, 서양 음식에는 거의 대부분 소금만을 쓴다는 사실 또한 맛을 볼 때 감안해야 한다. 이번 달에 실리는 인터뷰에서 셰프 코리 리(베뉴)가 지적한 것처럼, 발효 장류와 소금의 짠맛은 염도가 같더라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누차 강조하지만 버터나 올리브기름 등, 크림 등의 지방이 기본에 소금만으로 간을 맞추는 서양식은 소금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는다면 당연히 느끼하거나 밋밋할 수밖에 없다.

레몬 등 시트러스류의 즙이나 포도주 등을 발효해서 얻은 식초의 신맛, 즉 산은 크게 입맛을 돋워주는 한편 지방의 느끼함 또는 밋밋함을 덜어준다. 이를 흔히 지방을 ‘잘라준다(cut)’고 표현한다. 지방이 맛의 멍석, 또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므로 음식 전반에 걸쳐 넉넉하게 쓰지만 산으로 그 여운을 적당한 시점에서 끊어 주어주며 신맛으로 방점을 찍는 원리다. 우리가 ‘삼겹살에 신김치나 새우젓을 곁들여야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의 요리에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섬유질을 모두 담는 서양식의 경우 식초와 기름으로 만든 드레싱인 ‘비니그렛(Vinaigrette)’으로 버무린 샐러드를 얹거나 레몬즙, 식초 한 두 방울 등으로 균형을 맞춘다.

한편 쓴맛은 보통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짜거나 달거나 신맛으로 균형을 잡아줄 경우 맛을 한 단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타닌의 쓴맛이 강한 차에 레몬이나 설탕을 더하거나 커피에 크림을 더하고, 쌉쌀함이 두드러지는 녹황색채소류에 소금을 더하는 건 모두 같은 이치다.

마지막으로 단맛의 입지는 조금 미묘하다. 궁극적으로는 당이라고 할 수 있는 탄수화물은 감자, 빵, 파스타 등의 형태로 절대 빠지지 않고 단백질과 지방의 맛을 돋워주지만, 설탕의 정제 및 농축시킨 단맛의 자리는 코스로 따지면 마지막인 디저트에 이를 때까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종종 애피타이저 등에서 생과일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단맛보다 신맛이나 향을 포함한 생생함을 빌려오기 위한 요소다.

‘종합적인 경험으로의 맛(flavor)=맛(taste)+향(aroma)+질감(texture)’이므로 나머지 두 요소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아보자. 향, 즉 냄새는 간단하다.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한다. 미국에서 일할 때 종종 ‘브로콜리를 먹기 싫어서 엄마가 코를 틀어막고 입에 넣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같은 원리다. 냄새는 비강 뒤쪽으로 맡을 수 있으므로 씹어 넘기는 동안에도 음식을 즐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삭힌 홍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냄새가 올라온다’는 표현의 의미를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질감 또는 식감은 아주 간단하다. 서양식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씹는 맛’이라는 게 없다.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먹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식의 질감을 묘사할 때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형용사는 기본적으로 ‘soft’고 한술 더 떠 ‘butterly’,‘creamy’ 등에 지나지 않는다. 스테이크든 빵이든 그 무엇이든, 우리 음식을 먹을 때처럼 열심히 씹어야 한다거나 쫄깃하다면 그건 실패한 서양식이다. 같은 감자로 만들지만 우리의 옹심이는 쫄깃해야 제 맛이라면, 이탈리아의 ‘뇨끼(gnocchi)’는 가급적 손으로 반죽하지 않아 오리털을 넣은 베게나 아기의 궁둥이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직접 만드는 뇨끼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이 이제는 전무하다시피 한 가운데, 만드는 곳에서 조차 ‘좀 쫄깃해야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밀가루의 비율을 높인다는 이야기를 들고 슬퍼했던 기억이 선하다.

월간 <젠틀맨> 2013년 1월호

 by bluexmas | 2013/03/09 15:06 | Tast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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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03/1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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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03/1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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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3/03/12 13:03 

역시 잘 읽었습니다. 다시한번 교과서 집필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저 ‘우마미’는 제게는 여전히 뭔가 맛의 ‘이름’이 아니라 ‘묘사’인듯 합니다. 일본 방송을 보면 전부는 아니지만 해산물이나 뭔가 조리하지 않은 음식 종류를 먹었을 때 그런 감탄사를 내더군요. ‘우마이!’라고요. 물론 날것을 먹었을 때도 그렇게 합니다. 일본 위키를 보니 서양의 brothy나 savory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라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