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스페이스 3- 무섭지 않은 다섯 가지 이유 + 결론
그렇다, 나도 대부분의 평에 공감한다. <데드 스페이스 3>는 무섭지 않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1. 길이: 공간적 배경보다는 길이가 더 문제다. 너무 길다. 일단 줄거리가 궁금해 캐주얼 모드로 거의 죽지 않으며 쭉 빠르게 갔는데도 딱 20시간이 걸렸다. 2는 여덟 시간 안팎으로 걸렸고 1도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이든 낯익으면 둔감해진다. 3편까지 나와서 낯익고 길어서 낯익다. 웬만하면 덜 무서울 수밖에 없다. 딱 절반 정도 길이였다면 좋았겠다. 특히 암벽등반하고 오른손, 왼손 따로 움직여 맞추는 퍼즐 정말 짜증난다.
2. 공간적 배경: 눈으로 뒤덮인 행성->흰색->밝음, 팽창색. 따라서 좀 덜 무섭다. 물론 눈에서 갑작스레 네크로모프가 튀어나오면 무섭지만 열린 공간이므로 피할 여지가 많아 또 덜 무섭다. 전작들이 무서웠던 이유는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공간적 배경이었다. 어둡고 좁고 낮은데 적이 튀어나온다. 2는 하드코어만 빼놓고 전 모드로 한 번씩 끝까지 깼는데 할때마다 짜릿했다. 3편까지 만들자면 규모를 키우는게 당연한 수순이니 외계도시까지 등장하는 건 이해하고 또 설정도 훌륭하지만 딱히 무섭지는 않다. 처음 우주로 튕겨 나가는데 공기가 250초인가 딸려 나오는 걸 보고 ‘이래서야 뭐 숨막히겠나’ 싶었다. 실제로도 이것저것 다 해봐야 절반 정도 쓸까말까하다.
3. 적: 일단 새로운 적들이 별로 무섭지 않다. 개가 변한 ‘러커’는 사람이 변했을때 가지는 그 돌연변이적 특성이 별로 없다. 200년 전의 군인은 털옷을 입은게 무섭다기보다 귀엽다. 한 번 죽이면 다리에서 촉수가 나와 살짝 무섭지만 그래도 충격이 게지 않다. ‘프레그넌트’가 종종 나오는데 딱정벌레처럼 몸통과 다리가 확연히 구분되어 덜 무섭다. 그나마 무서운게 머리만 기어다니다가 몸에 붙어 네크로모프가 되는 것 정도? 유니톨로지 군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머리 한 번 쏘면 죽어 자빠지는 데다가 자기 한 몸 간수 못하고 네크로모프에서 당하는 사람까지 등장시킬 필요는 없었다. 한편 중간 및 최종 보스들 또한 너무 ‘임팩트’가 없었다. 계속 감질나게 들락날락하는 중간 보스도 그렇지만 마지막은 정말 이게 뭔가 싶었다. 물론 캐주얼 모드로 했으니 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최종 보스라고 나와서 그 큰 눈을 뒤룩거리는데, 이걸 깨려고 여기까지 20시간을 암벽등반까지 해가며 왔나 생각하니 마냥 허무해 최후의 결전을 벌일 의욕이 나지 않았다. 1편의 하이브 마인드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고 2편의 마음속 최후 결전이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감안하면 이건 좀 아니었다.
4. 무기(와 전투): 처음 벤치를 접하고 몇 번 이리저리 가지고 놀아보면 재미있지만 곧 질린다. 조합해봐야 2편에서 쓰는 것처럼 어차피 안 쓰는건 안 쓰기 때문이다. 3편의 적들은 움직임이 빠르고, 맞아도 에너지가 적게 주는 대신(캐주얼 모드 기준) 은근히 목숨이 질겨서 1, 2편의 보통 화기는 크게 쓸모가 없다. 특히 아이작 클락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플라즈마 커터가 별로 안 먹히는 건 좀 서운했다. 전작들 모두 펄스 라이플-라인건-콘택트빔(얼트 파이어 스테이시스 업그레이드 애용)의 조합으로 끝까지 깨다가 종종 재미삼아 시커 라이플이나 포스 건을 쓰면서도 어째 아이작 클락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아 플라즈마 커터를 억지로라도 가지고 다녔던 것에 비하면 안타깝다.
따라서 3편에서는 거의 모든 무기를 헤비 프레임 위주로 맞춰서 가지고 다녔다. 무려 오천원 손해보면서까지 6개월 전에 예약구매해서 꽤 그럴싸한 무기를 가지고 다녔으나 곧 질려서 다 분해해서 새로 조립했다. 이런 조립 시스템을 도입한 건 많은 매체에서 지적한 것처럼 원래 엔지니어인 아이작 클락의 정체성에 잘 들어맞아 좋지만, 그로 인해 파워 노드 바탕의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들어낸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라인 건의 경우 아주 신경을 써서 회로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샤프슈터 팁을 끼우지 않는한 발사가 1/4박자 정도 느려 적들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워 계륵 신세로 전락한다(참고로 샤프슈터 라인건 말고도 몇 가지 변형이 더 있어서 골고루 시도해보았으나 실용성면에서는 다 떨어진다. 그냥 샤프슈터 라인건 정도면 된다). 한편 새로운 무기 가운데에서는 그레네이드 런처가 근거리용으로 좋다. 2편에서는 재미로 썼지만 산과 계곡 위주의 공간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시커 라이플 정도는 하나 가지고 다니는게 좋다.
5. 줄거리: 스포일러 만들기 싫어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좀 억지스럽다. 2편에서도 그렇지만 다들 징징거리면서 ‘아이작 이것 좀 해결해줘’,’엉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볼게’의 되풀이는 피곤하고, 종내에는 주인공에게 깊이 감정 이입되어 ‘아 이 친구 불쌍해서 게임하고 싶지가 않다’라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아니 왜 불쌍하게 여친 잃은 사람을 폐인 만들고 또 그걸 불러다가 싸대기 때려가며 추위에 떨고 00하게 만드냐고…?
6.결론: 그래도 여전히 훌륭한 게임이다. 특히 음악이 좋다. 하지만 전작들에게 아낌없이 9.0~9.5를 줄 수 있었다면 이번 편은 8.0~8.5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단지 반복되기 때문에 그 즐거움이 덜한 것은 절대 아니다. iOS용을 먼저 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2편 먼저 했지만 1편도 여전히 재미는 있었다. 3편은 거기에 살짝 못미친다. 하드코어-클래식 모드로 다시 시작은 했지만 처음 한 시간 이후로 엄두를 못 내는 건, 그 나머지 열 아홉 시간이 어떨지 너무 뻔히 알기 때문이다.
# by bluexmas | 2013/02/27 19:28 | Media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