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슈니발렌
언젠가 쓴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찾기 귀찮으니 다시 써보자. 초등학교때 우연히 훔쳐본 만화책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부잣집 딸을 놓고 두 명의 영화 지망생(또는 감독?)이 싸움을 벌인다. 한 사람은 부잣집 아들, 다른 하나는 그냥 평범한 집 아들이었다. 이에 부잣집 딸은, 같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 동시에 개봉해 흥행을 더 잘 한 남자에게 결혼하겠다고 밝힌다. 시간이 흘려 개봉 시기가 다가오자 부잣집 아들 감독은 사람을 사서는 개봉관 앞에 잔뜩 줄을 세워 놓는다. 돈을 주고 영화를 보게 하는 셈. 영화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이를 보고는, ‘대체 무슨 영화길래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는 거냐’며 줄에 이끌려 영화를 본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 있길래 궁금해서 봤길래 별 재미는 없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반면 평범한 집 아들 감독의 영화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파리를 날린다. 하지만 본 사람들마다 극장을 나서면서 입을 모아 ‘거 참 훌륭한 영화일세’라는 반응을 남긴다. 흥행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여자도 잃게 된 평범한 집 아들은, 실의를 참지 못하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얄궂게도 그러고 나니 이 부잣집 아들이 사람을 사서 줄을 세워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줄을 서서 먹는다는 과자 ‘슈니발렌(오늘 마침 애초에 ‘슈네발 Schneeball’ 이고 복수형은 슈네밸레’라는 트윗을 보았다)’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바로 이 만화 생각을 했다. 기사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길래 나도 따라 서 봤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군가 사람을 사서 줄이라도 세운 건 아닐까? 라는 미친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맛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욱 짙게 근다. 너무나도 짐작 가능한 맛이라 굳이 사먹을 필요가 없었는데, 어느날 줄이 없는 백화점 매장 앞을 지나게 되어 사먹어 보았다. 역시 짐작을 하나도 비껴가지 않는 맛이었다. 소라땅 등과 비교하는 걸 많이 들었는데 그보다 발효시키지 않은, 그냥 밀가루의 딱딱한 꽈배기가 생각났다. 소금간을 하지 않은 밀가루를 튀긴 맛이다. 기름 냄새도 좀 난다. 한마디로 맛이 없고(無), 잘 만들리 없으니 맛이 없다(taste bad).
그럼 맛이 없다면 무엇이 있을까? 기사나 판매자는 온통 ‘재미’ 또는 ‘문화’에 초점을 맞춘다. ‘부숴 먹는 재미’와 ‘현지 문화 맛보기’가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전자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수는 행위에는 재미의 여지가 있으니까. 그러나 재료와 질에 비해 비싼 가격(3,500)에 깨어 먹는 전용 망치(13,000)원까지 파는 걸 보면 거기에도 말문이 막힌다. 두 번째는 ‘현지 문화 맛보기’인데, 이건 좀 웃긴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쉽게 못 다니는 상황이면 이런 음식을 통해 해외 문화를 맛보는 것에도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렇지도 않다. 찾아보니 2011년의 해외 여행자수는 1,250만명이라고 한다. 갈 사람이 갈 데는 다 가봤다는 수치로 읽힌다. 특히나 슈니발렌이 먼저 입점한 백화점의 주 고객일 동네 사람들로만 그 대상을 좁히면 여행을 통해 해외 문화를 맛보는 건 더 흔한 일일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외국 음식을 통한 문화의 이해에 우리가 정말 개방적인지에 관한 문제다. 1,250만이라는 수치와 일을 통한 경험에 기대서 이야기하자면, 상황이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외국 음식에 보수적인 시각 또는 자세를 지나치게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 그렇게 나가서 여행하고 또 먹고 다니는 것에 비해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한 4~5년 전 미국에서 유럽 여행을 가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마주치면 ‘포장을 뜯고 컵 따로, 면 따로 나눠서 사발면을 가져왔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밀집된 동네에서 뭔가를 먹을 때면, ‘분명히 이 동네라면 외국에 많이 다니면서 좋은 음식과 문화를 많이 접할텐데, 어떻게 이런 음식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이 너무 강하게 드는 순간이 많다. 요약하자면 아직도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그렇게 우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으니 이 슈니발렌의 인기를 그러한 제스쳐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관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조금 더 음식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음식이 큰 화제의 중심이 되는 건, 반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겉을 둘러 싸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벗겨 내면, 그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음식을 향한 우리의 관심은 뜨겁다. 끊임없이 지적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 ‘맛집’ 프로그램 등이 방증이다. 그런 관심이 우리 오늘 저녁에 먹은 음식을 한층 더 나아지게 만들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12/12/05 20:24 | Taste | 트랙백 | 덧글(32)
정작 독일사람들도 잘 모르는 동네 과자 슈니발렌이 그토록 인기라는것이 참 놀랍더군요.
오히려 독일의 전국구 유명 과자라 할 뉘른베르그의 렙쿠헨이 안 알려져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매작과가 좀 더 맛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런 기름진 튀긴 밀가루(?) 맛 나는 과자를 좋아해서 맘에 들었어요!!
그 별사탕 들어있는 라면땅의 거대한 버전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한시간씩 줄을 서서 먹을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한마디 더해보자면
라면에 돈까스에 도시락(오벤또)에 일본식 카레 등등..
요새 한국에 왜 이렇게 일본식 식당이 많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요.
학교 앞에만해도 정말 많더라구요~
너무 뜨거운 반응이라(대여섯시 쯤 가면 모조리 품절되는 사태가;;;) 말씀하신 예시가 아주 적절한 듯 합니다. 신세계백화점 지하에 처음 런칭되었을때 사람들이 슈니발렌 사려고 길게 줄서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_-;;;;;
동그란 모양도 재미진 컨셉도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데 알맞아서 올해까지는 너도나도 살 것 같지만 워낙 과열이 된 감이 없지 않아 있으니 이 붐은 금방 끝나지 않을까 합니다;;;; 다들 맛을 보고 ‘뭐야 이거 그냥 소라깡이네’ 라는 걸 알게 되면…엄… 운영업체가 좀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빵 스타일의 꽈배기 말고
튀김 스타일의 딱딱한 꽈배기에 설탕물 발라놓은 맛이더군요.
슈네발린 로텐부르크가서 먹고 그냥…음..^^…이랬던 기억이(….)
갑자기! 올해! 왜 유행하는걸까요 역시 마케팅인가.
한사람당3개 제한+전용망치+외국(유럽)과자+이상하리만치 자주나오는 기사
의 영향인듯 싶습니다…………..
기사가 정말 이런 과자가 왜?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잊을만 하면 나오더라구요………
저는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서 좀 살다가 북미좀 살다가 대구 내려온 케이스인데
서울생활 초반의 컬쳐쇼크는 서울에서는 줄서는 집=맛있는집 이라는 법칙이 없더라구요….
지방에서는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줄서는집은 대개 맛있는집이거나 굉장히 저렴하거나 한데
서울은 그냥….. 점심시간이라서 줄을 서는경우가 많아서 괜히 줄선집 맛있는집 이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낭패본게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뭐 서울서도 줄서는 집이 대체로 맛있다는 집이긴 한데(물론 인구대비 식당이 부족한 경우 예외)..
그 맛있다는 게 설 사람들 달달한(당분과 조미료로 길들여진) 입맛에나 맛있는 집인게 문제이지…;;
강남 신세계에서 사람들이 줄서있길래 관심가졌다가 패스했는데,
확”이슈되었다가 사람들의 기억언저리에 유유히 사라질 그렇고그런 아이템 중 하나가 될 듯하네요.
참 울나라 유럽 좋아해요..
미국쪽 과자라믄 코웃음치면서 유럽이라믄그저…
벨기에 초컬릿,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프랑스 양과자는 많이 들어봤으니까
이번엔 생소한 독일 과자라서 그러는가 본데
저도 누가 선물로 줘서 먹어보긴 했슴다만..
그 돈주고 왜 이걸…그랬슴다..소라깡이 훨 맛있음..
5년전 로텐부르크에서 나름 명물이래서 사서는 한 입 먹고 기념샷 한번 찍고 바로 비둘기님들 밥이 된…
저 과자가 갑자기 왜 유행인지 모르겠어요 ㅎㅎ
역시 마케팅과 입소문, 요즘은 블로거들의 후기샷이 단단히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분명 먹어보고 실망했음에도 블로거 후기 보면 솔깃하더라니까요 ^ ^;
하아 먹고 싶어도 배둘레햄이 용서를 안하는 군요.
하루 세끼를 닭가슴살만…(맛은 괜찮아 다행)
제대로 독일 발음은 “쉬네~발’ (눈덩이) 되겠네요…
근데 저도 독일 10년 넘게 살았지만…
렙쿠헨이 아니라 저게 왜 유명해 졌는지 정말 모르겠네요..
그냥 신기해서 일까요??
그냥 적절한 마켓팅과 왠지 신기한 과자라서 일까…????
저건 독일에서도 정말 안 유명한 아이템인데..
먹어본 사람이 드물 정도 일텐데..쯥…
그나저나 추억의 나우누리가 문을 닫는 다는 군요..
한국 돌아와서 처음으로 접했던 통신문화..
삘리리~삐~ 삐~ 소리가 그립네요..
나우누리 3~40대 채팅방에서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던 분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날씨가 추우니 이런 저런 옛 생각이 떠오르네요..
독일 길가에서 이 맘때면 나타나던 군밤장수 아저씨들도 생각나고
따뜻한 군밤을 한웅큼 주머니에 넣고 얼은 손을 녹이며 종종걸음으로 학교로
가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이번 여름 로텐부르크에서 신기하게 생겼다! 라며 덥썩 사먹은 슈니발렌은 맛있었는데
돌아와서 본 인터넷 후기에는 다들 이게 무슨 과자냐며 혹평이..
윗분은 같은 로텐부르크에서 먹었는데도 맛이 없었다고 하시네요ㅎㅎ
전 부숴먹지는 않고 가게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주길래(케익이랑 같이 주문해서) 슈니발렌을 썰어 먹었습니다..?
슈니발렌 맛있었다는 후기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이젠 ‘그냥 그 때 배고파서 맛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는 지경이예요ㅋㅋ
아무튼 저는 또 먹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