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몰트] 글렌드로낙 12, 18, 21년
암스테르담에서 레이캬비크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싱글몰트 한 병을 사가지고 들어가자는 생각을 했다. 1주일이면 750ml들이 한 병 정도는 충분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죽 돌아보니 보통 면세점에서는 1리터 들이 큰 병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몇몇 종류를 들여놓고 있었고, 한 군데에서 그보다 덜 대중적인 것들을 시가, 와인 등등과 함께 모아놓고 팔고 있었다. 안 마셔본 스카파 16년이 조금 싸서 이것과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느 대륙에서 온 건지 생김새만으로는 추측이 불가능한 매니저가 와서는 “고민하지마. 이거 좋으니까 사가셔.” 라고 말했다. 좋은걸 몰라서 문젠가, 돈이 없어 문제지… 그래도 10만원이라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마치고 지갑을 열었다.
기호품이라는게 다 그렇겠지만 핵심은 섬세함, 아니면 미묘함을 존중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싱글몰트의 경우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이탄향을 두드러지게 지니고 있는 무리가 있어 호/불호의 뚜렷한 분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어차피 위스키를 매일 마실 것도 아니니 평소에는 셰리 캐스크 등에 숙성해 막말로 달달한 것보다 오히려 이탄향이 풍기는 것들을 더 좋아하지만 그냥 한 일주일 동안 어쩌면 숙제처럼 비워야 하는 거라 오히려 이런 쪽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정 넘어서 레이캬비크 숙소에 도착해서는 짐도 내려놓기 전에 알콜중독자처럼 손을 벌벌 떨며 뜯어 마셨다. 무엇보다 토피(toffee)향`이 두드러지는데 너무 넓거나 거칠지도, 너무 좁거나 소극적이지도 않고 딱 적당한 두께로 넘어간다. 결국 우려와는 달리 일주일이 채 다 되기고 전에 거의 다 비웠다. 막판에는 레이캬비크 시내에 단 한 군데 있는, 빵부터 케이크를 지나 초콜릿까지 파는 베이커리에서 봉봉을 사다가 안주삼아 즐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깝게도 두 배의 가격에 팔리고 있으니 다음 기회는 한참 더 있어야 올듯.
글렌드로낙 전체를 마셔본지가 오래라 기억이 없어서 돌아와서 12년과 21년도 마셔보았다. 12년은 비슷한 ‘연식’의 다른 위스키에 비해 딱히 두드러진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고 21년은 오히려 정점을 치고 내려간다는 느낌이었다. 이왕 다 마셔본 거 가까운 시일 내에 15년도 다시 마셔보고 확인을 해봐야 할듯. 글렌드로낙의 경우 우리나라에만 나왔다고 들은 1996년 빈티지도 있다.
참, 12년의 경우 모 호텔 바에 처음 갔다가 마셨는데 문진으로 쓸 수 있을만큼 무거운 유리잔에 내와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울리고 말고를 떠나 일단 너무 무거워서…
# by bluexmas | 2012/11/02 15:08 | Taste | 트랙백 | 덧글(6)
(독한술은 못 먹는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