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여행] 2일차-별 하나와 별 하나 사이
딱히 시차를 느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새벽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깼다. 냄비를 좀 샀는데 그게 하필 아틀란타에서 오는 거라 거기 시간으로 아홉시에 “혹시 사기치는 거 아니지?”라고 확인하기 위한 것. 아주 간만에 쓰는 카드 때문에 비슷한 일이 생겨서…(하략)
동네에 달리기 전문 가게가 있어서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정밀진단(?!)을 받고 신발을 한 켤레 사와 바로 10km를 달렸다. 애틀랜타에도 비슷한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보다도 훨씬 더 꼼꼼하게 점검을 해 줬다. 그래서 나온 신발이 혼자 생각했던 것과 똑같아서 결국 인연인가보다 생각하고 사와서는 바로 열심히 달렸다. 경치도 공기도 좋기는 한데 예전에 말한 것처럼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어차피 눈에 안 들어오니까 별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와 곰곰이 생각한 다음, 점심 저녁 각각 한 군데씩의 레스토랑에 들렀다. 모두 미슐랭 별 한 개짜리. 여기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은데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접고, 간단하게 음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자.
점심을 먹은 곳은 마이클 미나(Michael Mina)의 동명 레스토랑. 두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의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 셰프가 최근에 문을 연, 이름으로 보아 플래그십이라고 생각해 될 곳이다. 레스토랑이 비지니스 구역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점심에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라 보이는, 비즈니스 런치에 잘 어울리는 코스 메뉴를 내놓고 있었다. 메뉴 자체의 콘셉트를 논하기 이전에 굳이 영어 단어를 빌자면 ‘sloppy’한 조리가 걸렸다. 파스타의 토끼고기에서는 뼈를 씹었고, 메인 코스인 생선에 곁들인 페넬에서는 샐러리나 다른 비슷한 새초에서 볼 수 있는 섬유질(줄기를 꺾으면 실처럼 나오는)이 남아 있었다. “상온”이라고 말하지만 살짝 냉기를 머금고 있는 빵이랄지, 그런 종류의 디저트에서는 대부분 살짝 바삭하고 따뜻하게 구워서 나오는 디저트의 브라운 버터 케이크랄지, 전반적으로 직장인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약간 날로 먹으려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닐까 싶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세심함이 떨어졌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소위 말하는 미슐랭 별 감은 아니고, 뒤집어 긍정적으로 말하면 내가 먹은 음식은 레스토랑의 본 모습이 아니라고나 할까…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을 내가 확인할 길은 없는 것 같다. 언제나 제한된 예산 때문에 레스토랑에 주로 점심 시간을 이용해 가던 스스로의 전략을 다시 재고하게 만들었다, 레스토랑이라는 게 일단은 레시피, 그 뒤에는 셰프의 철학이라는 걸 바탕으로 돌아가므로 한 셰프의 이름으로 아무리 레스토랑을 많이 꾸려나간다고 해도 솔직히 크게 신경쓰지 않는데, 이 점심을 먹고서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소위 말하는 미슐랭 별 짜리 음식을 처음 먹어본 셈이므로, 과연 이것이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 감을 못 잡았는데 저녁을 먹은 <Fleur de Lys(백합을 형상화한 심볼마크?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온다)>에서는 내가 기대했던 수준의 음식과 서비스를 접할 수 있었다. 셰프인 위베르 켈레르( Hubert Keller, 발음 맞나?-_-) 는 알사스 출신의 프렌치 셰프로, 원래 잘 알려져 있지만 나는 <Top Chef>를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역시 코스로 전채-생선-고기-디저트에 $85였는데, 시간이 없어 각각의 음식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하게 언급하기 어렵지만 솔직하게 말해 이 정도로 복합적인 맛의 조합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관자의 겉이 조금 덜 바삭하게 지져졌다거나, 다른 요소는 좋았지만 미디엄 레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던 물소, 살짝 덜 부풀고 혼자 너무 거대했던 수플레 등등은 살짝 아쉬웠지만, 커피에서부터 물 흐르듯 유연한 서비스까지, 별이고 뭐고를 떠나 정말 잘 하는 레스토랑이라는 건 이런 느낌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돌아가서 (시간이 나면) 자세히 쓰겠지만, 뭉뚱그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먹고 많이 배웠다. 텔레비젼에 많이 나오는 양반인데 홀을 누비면서 손님들을 응대하는 걸 먹는 내내 구경하고 있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예산 때문에 언제나처럼 와인 짝짓기를 못하는 점이 아쉬웠을 뿐.
페리 빌딩은 애크미 브레드 컴퍼니말고도 좋은 물건을 취급하는 식품점들로 가득 차 있다. 애크미 브레드 컴퍼니 바로 옆이 치즈나 유제품 전문점 ‘카우벨 크리머리’, 또 그 맞은 편이 기라델리보다 한 단계 위의 초콜릿을 내놓는 ‘샤펜버거’… 따라서 빵과 치즈, 그리고 우유나 요거트 등등에 후식으로 먹을 초콜릿까지 몇 발짝 안 움직이고도 살 수 있다. 더 제대로 샌드위치를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크리스 코센티노(Chris Cosentino, Incanto)의 살루메리아 ‘보칼로네’에서 살라미나 소시지 등등을 살 수 있다. 물론 와인을 포함 다른 종류의 가게도 있지만 다 둘러보지는 않았다. 나는 카우걸 크리머리에서 산양젖 요거트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탈리아 물소젖 치즈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에 뭘 먹었는지는 사진도 없고 기억도 없어서 전혀 모르겠다. 사온 빵들을 먹었나? 이상 4일차의 기록 끝.
# by bluexmas | 2011/11/10 18:16 | Taste | 트랙백 | 덧글(4)
계속 이거 댓글달까 말까 고민했는데 저 캐나다에서 웨이트리스거든요. 저희 식당에서도 점심 손님들은 가격도 다르고 손님들 자체도 바쁘시고하니까 서버들도 주방장님도 아무래도 점심 손님은 잘 신경 안쓰고 늘 저녁 위주예요. 특히 저희 식당에서 점심특선으로 싸게 내놓는, 진짜 거의 원가에, 메뉴만 드시는 손님은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이. ㅠㅠ 식당도ㅠ비지니스니까 이걸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아무튼 글 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행복한 기억 안고 돌아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