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여행] 1일차-인앤아웃버거, 어느 평범한 이탈리안

시간 나는 대로 남겨놓는 짧은 기록. 일정은 샌프란시스코-포틀랜드(캘리포니아 최북단 크레센트시티 1박)-시애틀-다시 샌프란시스코. 2주 예정.

1일차(11/07/11)

1. 기내식

‘기내식’과 ‘기대’는 두운이 맞지만 사실 같은 우주에서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먹은 기내식은 1998년 처음 비행기를 탔을때 먹었던 수준, 그야말로 ‘지옥에서 돌아온 기내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쌈밥’이라는 게 나왔길래 주변 사람들이 먹는 걸 보니 뜬금없는 계란말이가…;;; 구색 맞추는 데만 급급한 느낌? 찍기는 했으나 사진 생략. 사진 올리는데 들어가는 내 칼로리가 아깝다.

2. 아침- 인앤아웃 버거(In ‘n’ Out Burger)

나름 미국물 좀 먹었으나 동부에만 머무르다보니 그 유명하다는 인앤아웃버거님을 영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점심으로 먹었다. 물론 점심시간이기는 했지만 길게 늘어선 드라이브인 줄에 매장안의 사람들까지, 대강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바로 옆에는 크리스피크림 매장이;;; 이게 원래 내가 살던 동남부에서 비롯되어 서부는 물론 동부 윗동네에도 별로 없었는데???). 매장에 들어가보니 한마디로 ㅣ캘리포니아 냄새 물씬 풍기는 레트로에 메뉴 또한 단순한 것이 같은 느낌. ‘애니멀’ 등등을 비롯한 일종의 비밀 주문이 있다던데 그런 건 모르고 그냥 ‘더블-더블’로 주문. 기본적인 컨셉트라면 프랜차이즈에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버거를 최대한 좋은 재료로 만들기 정도? 고기와 치즈가 범벅으로 입안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는 가운데 신선한 야채의 존재가 두드러지는데,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잘 만들었으나 너무 끈적한 빵이 가장 큰 감점요인이었다. 앞니 뒷면에 달라붙기도 하고, 절반쯤 녹은 치즈와 함께 버거 전체를 너무 끈덕거리는 식감으로 도배한다. 패티 역시 무게 및 조리 방법에서 프랜차이즈의 원형을 충실하게 따라,  크러스트 및 불맛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버거와 동격으로 대접해줘야 하는 프렌치프라이는 열린 주방에서 계속 준비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때깔만 놓고 보더라도 좋은 감자를 좋은 기름에 튀겼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다만 식감이 조금 재미있었는데, 눅눅한 건 아닌데 살짝 덜 튀긴 느낌이랄까? 겉과 속의 식감 대조가 내가 알고 있는 프렌치프라이의 이상형보다 조금 덜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감자만 놓고 보더라도 폄하할 수는 없는 맛이었다.

그냥 맛만 보기 위해서 주문한 딸기 셰이크는 정말 맛만 보아야 할 맛. 우리말로는 마땅한 단어 생각이 나지 않고, 영어로는 ‘ vile’ 한, 전형적인 미국 밀크셰이크맛, 그리고 당연히 칼로리 폭탄. 가격을 포함해 전반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지극히 상식적인 버거고, 이 가격에 안 먹을 이유가 없다(쇠고기와 옥수수를 둘러싼 각종 음식 윤리에 관한 논쟁은 예외로 하고).

3. Cotogna

이번 달 미국 <에스콰이어>는 레스토랑 특집. 거기에서 본 두세 군데의 레스토랑 가운데 숙소와 비교적 가까워 먼저 들른 곳. 피자 화덕과 나무 그릴이 달린 열린 주방과 바가 주방과 접객 공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 피자를 시켰는데, 오늘 점심에 A16에 들를 계획이었다는 걸 생각하고 ‘타야린(계란 노른자로만 만드는 생파스타)’로 주문을 변경했는데, 이 과정에서 웨이터가 애피타이저를 파스타로 바꾼 줄 착각해 혼선이 좀 있었다.

보통의 생면과 달리 계란 노른자만을 쓰는(피에몬테 지방 특선? 내가 번역한 책에도 언급되어 있다) ‘타야린’은 비교가 좀 그렇지만 사발면 면발처럼 부들부들해서 충분히 예상가능한 식감이다. 소스인 닭 간 라구는 맛있었지만 당연히 기대할 수 밖에 없는 허브가 없어 마무리가 아쉬웠고, 간 또한 살짝 부족했다. 미국, 또는 서양이 아니라 우리나라 입맛에 맞는 정도?

빵은 달라고 그래야 주는데, 돈을 받는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포카치아인데 계란을 넣었는지, 기공도 작고 굉장히 부드러우며 풍부했다. 기름으로 짐작되는 액체에 거의 적신 정도로 나오는데, 원래 차갑게 내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펜넬씨의 향과 카이엔페퍼라고 짐작되는 매운맛이 끝에 살짝 감돈다. 레스토랑에는 미안하지만 이게 가장 맛있었다.

여기까지 먹고 주문이 잘못 전달되었다는 걸 알아서, 잠시 고민하다가 원래 주문했던 그릴에 구운 오징어를 그냥 달라고 했는데, 실수였다. 크기가 다른 새끼 오징어(한치?)들을 같은 시간 동안 구웠는지, 크기가 작은 것들일수록 쫄깃해, 전형적인 우리나라 아침 프로그램 보양식 소개 간지였다. 서양음식의 기준으로 본다면 용납할 수 없는 수준. 게다가 마지막에 더한 소금이 너무 짜서, 이 또한 실격이었다. 파스타와 함께 합쳐 반으로 나누면 딱 맞을 정도의 간이었다. 산도, 기름도 아무 것도 두드러지지 않은 채 나무 그릴의 탄 맛만 강하게 풍겨, 곱씹을 수록 돈 아까운 수준. 디저트는 너무 재미없어 보여 먹지 않기로 했다.

다 먹고 한 4km 걸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리 면에서 기복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코스 메뉴가 있다던데 물어볼 걸 그랬다. 어두운 조명 아래 분위기는 좋아서 천천히 술 마시면서 즐기기에는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이 동네에 살더라도 한 번만 가면 될 것 같았다. 본토인 이탈리아는 가보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이런 레스토랑에 가면 홍대앞의 라꼼마가 얼마나 잘하는 레스토랑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1일차는 여기까지. 직전까지 일만 하다 와서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도 좀 잡고 있고, 또한 가고 싶은 곳들도 예약이 꽉 차는 불상사를 겪고 있다, 90번의 전화통화 끝에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은 프렌치 런드리는 현재 가망 없어 보이고, 거기에서 수석 주방장이었던 (그리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인) 코리 리의 ‘베누(미슐랭 두 개-_-;;)’는 간신히 예약을 잡았으며 같은 맥락에서 ‘셰 파니즈’ 또한 예약이 꽉차 있고… 한정된 예산과 시간 속에서 직업 훈련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그 생각만으로 참 머리가 복잡하다.

 by bluexmas | 2011/11/09 02:10 | Tast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당고 at 2011/11/09 02:16 

역시 충실한 여행기.

당분간 bluexmas 님 덕분에 심심하지 않겠어요.

 Commented by 강우 at 2011/11/09 06:27 

끈끈한 인앤아웃이군요, 일일차 여행기의 충실함에 감탄합니다.

부디 예약신(;)의 가호를!

 Commented at 2011/11/09 07: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1/11/09 07: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1/11/09 10: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ettler at 2011/11/09 12:33 

포틀랜드는 안 가봐서 모르겠고, 씨애틀과 샌프란시스코…좋은 곳만 오셨다 가시는군요.

샌프란시스코 근처 소살리토의 그 유명하단 햄버거 가게도 가 봤는데,

미맹이긴 하지만 전 맛있었어요 ㅎㅎ

담엔 북동부 쪽으로 안 오시나요? 0_0

 Commented by 나녹 at 2011/11/09 12:51 

인앤아웃 자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저도 계속 동부다보니 먹어볼 기회가 없어서 굉장히 궁금했어요.

남은 일정의 후기도 기대할게요~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1/11/09 22:05 

아~ 미쿡 가셨군요…

전 2월 17~26일로 10일간 캐나다 휘슬러로 오늘 비행기 예약과 숙소 예약을 완료했습니다..

아~ 돈도 냈군요..ㅠㅠ;;

이제 휴가나 내면 되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