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5월의 마지막 밤
아침에 일어났을때 창밖이 흐려, 빨래를 할까말까 잠깐 망설였다. 오늘 아니면 오전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 했는데 나중에 햇볕이 나는 걸 보니 흐뭇했다. 적당한 오후 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갈까 생각했는데, 그때쯤 비가 내렸다. 사실 오늘 내일까지는 운동을 딱히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 같지 않지만 은근히 몸이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니 긴장이 탁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원래 그러니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이 블로그를 뒤져보면 잠을 잘 못 잤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요즘 잠을 잘 못자고 있었다. 건실한 직장인들처럼 일찍 일어나고는 있으니 결과는 성공이지만 과정은 실패인 뭐 그런 밤들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이런 잠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찾아온다. 어제도 그럭저럭 잤다고 생각했는데, 공항을 오고 가는 길에 계속 졸렸다. 피곤해서 졸리다기 보다 그냥 졸린 상황이었다.
이왕 말을 꺼낸 김에 공항 얘기나.
어제 간만에 공항을 갔다. 이런 식으로 공항에 몇 번 갔었던 적이 있다. 어딘가 가지도, 만나지도 않는데 그냥 가게 되는 공항은 꽤나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마음의 거리가 벅차게 느껴진다. 공간 또는 건물의 성격이 너무 강한 탓일까. 어째 여기 올 자격이 없는 사람의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도 메고 배낭도 들었지만 나는 갈 곳도 없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금방 지쳐서, 빨리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김포도 인천도 모두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김포에 가서 지하도를 거쳐 두 청사를 모두 들렀다가, 다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에 갔다. 물론 조립은 분해의 역순. 김포공항의 내부에 들어가본 건 1998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맞나… 공항을 배경으로 드라마 안 찍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나에게도 몇 편의 그렇고 그런 드라마가 있다.
인천공항의 공항철도 터미널에서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가 온 청사에 울려퍼졌다. 처음엔 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물어봐서 영화라는 걸 알았다. 보지는 않아도 얼굴은 다 아는데, 남자배우의 얼굴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일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주섬주섬 싸들고 밖에 나갔다. 가볍게 나갔다가 살짝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오가는 길에 창 밖으로 살짝 보였던, 별 볼품없는 바다 생각을 했다. 강으로도 달랠 수 없는 심정들이 있다. 움직여야할 때를 많이 넘겼다.
자고 일어났더니 빗발이 한층 더 굵어진 분위기였다. 왠지 알 수 없는 여유가 생겨 밥은 물론 찌개까지 끓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짧은 저녁시간 동안이나마 6월이나 여름, 장마의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여유에 상관없이 계절은 다가온다.
# by bluexmas | 2011/06/01 00:00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