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거리
나이아가라 호텔 앞에서 내렸다. 호텔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진작에 말했다. 그는 장거리 손님을 기다렸던 눈치였다. 어쩌면 내렸어야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습관처럼 ‘오산’을 불렀더라면 분위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가야할 곳은 오산이 아니었고 택시는 유난히 더러운 냄새를 풍겼다. 삶에 대한 진한 염증이나 회의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10분 정도의 차이로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집은 생각보다 가까워서, 노래 한 곡을 채 다 듣기도 전에 눈에 들어왔다.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치는데 왠지 그 모든 게 낯익은 느낌이었다. 겪었던 것을 또 겪는 기시감이라기 보다, 오늘부터 바로 이곳에서 살기로 아주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모든 것을 매뉴얼대로, 큰 마음의 동요 없이. 그건 아마도, 다시 많은 것들과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시간은 늘 원하지만 절대 찾아오지 않고, 또 다른 시간은 절대 원하지 않지만 늘 찾아온다. 시간을 그렇게 딱 둘로 나눌 수 있다면, 지금 나에게 찾아온 건 후자다. 그래서 익숙함을 느낀다. 겪어보았으니까,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으니까. 멀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들에게 가까워졌으니, 어째 그 가까움을 발판삼아 진짜 멀리 떨어져야만 할 것 같다. 가깝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들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어째 그 거리가 버거워서라도 조금 더 다가가야만 할 것 같다. 그래, 이 모든 것을 겪었던 시간이 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매뉴얼은, 이미 숙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 보았던 것은 점자판,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산지사방에 온통 어둠이어서. 손 끝은, 생각보다 많은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의 공기는 모두가 예고했던 것처럼 포르말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코는 바로 막혀버렸지만 손 끝은 지치지도 않고 냄새를 들이마셨다. 더듬거리며 고무장갑을 찾았지만, 집히지 않았다.
# by bluexmas | 2011/04/19 01:56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