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루이 쌍끄-잘못 잡은 컨셉트의 멍에와 호들갑

(세 달 전에 갔다 온 기록을 바탕으로 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밀려도 한참 밀렸다;;)

루이 쌍끄? 솔직히 말하자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회의를 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스트로펍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관심도 품었다. 그것도 순전히, 내세우는 컨셉트가 가스트로펍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스트로 펍(Gastropub)이 뭐길래? 가스트로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펍(pub)이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건 사실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도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영국 또는 아일랜드 풍의 술집, 즉 영국인들이 바에 모여 맥주-주로 에일, 상면 하면 발효 타령은 좀 그만 하자 지겹다-를 들이키며 EPL을 보는 그런 곳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펍은 ‘public house’에서 나온 용어, 즉 우리나라로 치면 선술집과 같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술집이다.

이 펍은 술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음식은 열악하다. 펍에서 먹는 음식을 펍 그럽(Pub Grub)이라고 하는데, 영국이나 아일랜드 쪽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피시 앤 칩스, 셰퍼즈 파이, 뱅어 앤 매시, 미국 쪽으로는 버거, 뭐 그리고 칠리 콘 카르네와 같은 (미국화된) 멕시코 음식 들이 대표주자다. 그 동네의 기준으로 볼 때 별 대강 만들어 대강 먹는 음식들인 것이다.

가스트로럽은 ‘gastro’라는 접두사로 알 수 있듯, 펍의 캐주얼하고 편한 음주 분위기에 음식을 강화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펍 그럽의 큰 틀을 따르지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음식처럼 재료나 성의를 강화한 음식들이 나오는 것이다. 펍의 분위기를 따른다는 건 술을 제대로 갖춰 놓는 것을 의미해서, 주로 맥주 위주로 일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보다는 다양한 종류를 갖춰 놓는다(기본적으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은 와인 위주).

영국과 같은 ’본토‘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몇 년 살았던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에 걸쳐 유행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 바로 옆 건물에도 생겨서 몇 번 갔고 글도 올린 적이 있다. 미국의 가스트로펍 가운데 인기를 얻은 곳이 동부에는 U2의 보노가 소유주 가운데 한 명이라고 알려진 맨해튼의 ’스포티드 피그(Spotted Pig)‘나 서부에는 햄버거로 잘 알려진 한국계 상 윤의 ’파더스 오피스(Father’s Office-청담동 어딘가에 이 비슷한 이름으로 연 햄버거 가게가 있던데…)‘등이다.

스스로 가스트로펍을 표방했으니 나에게는 무엇보다 컨셉의 준수여부가 관심사였다. 대부분 모르면서 까다로운 우리나라의 식객-파워 블로거 포함-들을 만족시키느라 ‘한국화’하느라 어떤 시도는 의지와 상관없이 무산되기는 해도, 서양식을 파는, 특히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은 스스로 내세우는 딱지 또는 장르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카르파치오(O), 꼬꼬뱅(X)인 것처럼. 그러나 보았던 사진에서는 하나같이 코스를 내놓고 있었으니 나는 가기도 전에 어느 동네 가스트로펍의 컨셉트로 코스가 나오는지 그게 궁금했다.

겨울이 절정에 이르던 1월 어느 저녁, 예약까지 열심히 해서 루이 쌍끄를 찾았다. 열린 주방은 어느 레스토랑이고 좋아하지 않지만 공간은 괜찮았는데, 결국 파인 다이닝보다 원래 추구하던 가스트로펍 쪽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다만 건물 뒤쪽으로 확장한 듯한 공간에 앉았는데 난방기를 별도로 틀어도 발이 시렸다. 1인당 5만 원 이상 드는 음식을 먹는 데 발이 시리다면 그건 맞는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코스 자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구성 자체는 합당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네 가지 요리의 코스였는데, 그걸 또 줄이고 가격(45,000)도 조정한 상황이었다. 몇 가지를 고르고 코스에 포함되지 않은 디저트를 따로 주문했다.

아뮤즈-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은-로 나온 부르스케타(?). 푸아그라 파테가 핵심일텐데 그 핵심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터라…아 그렇구나, 라는 느낌과 함께 넘어갔다.

다음은 전체. 이게 그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는 ‘보퀘리아.’ 그야말로 순수한 재료의 맛… 하몽이야 뭐 조리해서 내는 건 아닐테고, 수란과 꼴뚜기의 조리상태는 좋았다.

그 다음은 저온조리했다는 비트 샐러드. 구운 비트에서는 옥수수 맛이 났다. 신기해서 며칠 뒤 비트를 사서 저온에서 구워봤더니 정말 옥수수 맛이 났는데 반 개 먹고 귀찮아서 더 안 먹었다. 아직도 냉장고에 있는데 썩었을 게 뻔해서 들춰보지 못하고 있다.

빵. 동글동글 귀여운데 속이 찐득한 게 발효가 덜 된 듯 보였다. 게다가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자리로 가져온 모양인지 손으로 만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물론 온도가 빨리 내려가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당장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면 시간을 좀 두었다가 가져오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웨이팅은 여자분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친절했지만 프로보다 알바의 느낌이 강했다)?

앙트레. 병어 구이에 바닐라 빈을 더한 콜리플라워 퓨레였는데, 요즘 savory food, 특히 생선이나 그 곁들이에 바닐라 빈을 더하는 게 약간 유행인 모양이다. 몇몇 프로그램에서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직접 먹어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바닐라는 그 향의 성질이 단맛과 잘 어울리므로 짠맛을 더해야 그 맛이 살아나는 생선류의 맛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퓨레 위에 얹은 것들은 저민 문어다리였는데, 바닐라빈보다 더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양식에는 쫄깃한 식감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썩 좋지도 않은 느낌의 문어를 쫄깃한 정도로 조리해서 더했기 때문이다. 또한 병어는 먹고 나서 가시를 발라내야만 했다. 양식 파인 다이닝에서는 손님이 가시를 발라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생선 포 뜨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낭비가 많다. 물론 납작한 생선이니 포를 뜨기가 어렵겠지만, 이 정도는 기본기 부족이었다.

엉덩잇살 스테이크와 감자는 조리 상태가 좋았다. 다만 담아낸 모양은 병어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성의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디저트. 오히려 기대를 했는데, 그건 ‘서프라이즈’라는 이름이 붙은 디저트가 머랭으로 만든 공이었기 때문이다. 풍선에 액체를 넣고 액체 질소에 얼려 공을 만드는 걸 본 적이 있는지라 그런 건가 생각했는데, 받아 보니 반구 둘을 합친 것이었다-_- 약간 실망했지만 그마저도 만들기 썩 쉬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큰 불만은 없었다. 안에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는데, 바삭바삭한 머랭의 껍데기와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식감이 잘 대조를 이루었다. 머랭으로 새 둥지 모양처럼 만들어 아이스크림을 앉히는 데, 어쩌면 그것의 응용인지도.

수플레는 행정구역상으로 청담동이지만 사실은 번화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에서 만드는 데 장안의 화제라는데, 나에게는 이게 더 나았다. 숟가락에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어서, 이를 수플레에 담가 먹으면 뜨겁고 차가운 온도의 대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만 얼린 알갱이 블루베리가 부드럽디 부드러운 수플레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블루베리의 맛을 고수하고 싶다면 퓨레나 다른 형태로 바꿔 넣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플레가 훌륭한 디저트이기는 하지만 클래식이고 기본이라 셰프, 특히 패스트리 셰프라면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끔 호들갑떠는 분위기가 이해 안 간다. Savory Food 가운데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그렇다.

컨셉은 자신있게 가스트로펍인데 메뉴에서도 술안주 느낌의 음식은 별로 찾아볼 수 없고 술도 다양하지 않아서, 나가는 길에 셰프에게 물어봤더니 원래 그러한 컨셉트를 표방하고자 문을 열었으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파인 다이닝의 분위기를 찾아서 결국 메뉴도 바꾸고 맥주도 본인이 마시다가 반품한 게 더 많다는 대답을 했다. 그럼 아예 가스트로펍 딱지를 떼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는데 별 대답이 없었다.

그러한 컨셉으로 끌어가고 싶었으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격차가 있고, 결국 그걸 맞춰주느라 변화를 가져왔다면 사실 그건 레스토랑의 책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동네에 레스토랑을 열 정도라면 엄청난 투자가 받쳐줘야 하는데 그러한 투자에 비해서 시장조사를 활발하게 안 한 결과는 아닐까, 혼자서 억측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savory chef의 음식으로부터는 경험부족이 물씬 풍겨 나왔다. 음식만 놓고 보자면 사실 딱히 높은 수준의 기술이나 딱히 색다른 아이디어를 통한 접근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 아닌데, 그래도 음식의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면, 빵은 그저 그랬지만 나머지 디저트들의 완성도가 더 나았으므로 차라리 디저트만 따로 먹을 수 있다면 적어도 전 메뉴를 다 한 번씩 먹을 정도는 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한 시까진가 열고 음악도 보다 더 활발한 하우스 같은 것들로 바꾸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늦은 시간에 한 번 정도는 더 가서 분위기를 보고 싶지만 그래도 루이 쌍끄가 가스트로 펍일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는 가스트로 펍의 컨셉트가 이 레스토랑의 멍에로 보이는데 정작 이 레스토랑이 좋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은 그래서 좋다고 하니 나는 좀 어리둥절하다. 붙어 있는 딱지만 그렇지, 어떠한 이유에서 실천을 못하고 있는데 그 이름만으로 인기를 얻는 상황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와 그 OO떡볶이집, 거기 진짜 좋아. 김밥이 정말 맛있거든.떡볶이는? 아, 떡볶이를 만들어서 팔았는데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해서 이젠 김밥만 해,’ 아, 김밥이랑 떡볶이집은 많은데 가스트로 펍은 처음이니까? 촌스럽기는.

 by bluexmas | 2011/04/04 09:31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삭후 at 2011/04/04 10:44 

조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네요.

안주로써의 메뉴가 아니라 충분히 질 좋은 식사가 될 만한 음식을 먹으면서

또 술을 곁들이기에 괜찮다고 많이 화제가 되었었는데

그러게요, 술은 대부분 와인에 한정되어있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대개 식사타임이 아니라 2차로 루이쌍끄를 찾으시더라구요.

(아니면 식사를 마치고 그냥 그 자리에서 쭉 와인을 드신다던지..)

아싸리 괜찮은 식사를 목적으로 가는 분들와 뒤섞여서, 아마 주인 입장에서 많이 혼란스러웠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심지어 저는 어느 시간에 가야 가장 괜찮을까 고민했을 정도니.

이런 컨셉은 아직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자리를 덜 잡은 걸까요, (그렇담 희망은 있고)

아니면 철저히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기 어려운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대낮에 테라스에서 커피 대신 맥주를 홀짝이는 게 이상하지 않은 한국을 꿈꿔봅니다만.. 그만큼 다양한 식문화가 공존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루이쌍끄에선 단품요리를 먹는 게 낫더라구요. ^^

+ 청담동 마더스 오피스. 그 곳이 버거집인가요. 주방이 개판이던데. ㅎㅎ 적어도 작년까지는.. 지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07 00:50

우리나라에서는 아저씨들이 편의점 플라스틱 탁자에서 소주를 낮에 드시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는데요 뭐.

 Commented by 푸디 at 2011/04/05 00:14 

저도 가스트로펍…이란 소리에 편한 분위기와 다양한 주류를 기대하고 갔으나 너무 파인다이닝스러운 공간과 음식 구성에 좀 당황했어요. 좀 푸짐한 느낌에 맥주 벌컥벌컥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갔으나. 여튼 음식은 대체적으로 맛있게 먹었고 버섯두오모라는 디쉬의 식감과 맛 조화 등등이 아주 좋았지요. 감자는 튀김상태 맘에 들었으나 치즈가루가 좀 에러였고…그렇지만 수플레는 역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갔을땐 스푼엔 아이스크림 없었는데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07 00:50

크 담에는 한 숟갈만 달라고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