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싫은 것

힘겨운 하루였다.

컵케이크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냥 여가선용 또는 취미활동을 위해서라면, 솔직히 내 몸과 마음은 컵케이크와 다른 태양계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일을 위한 것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정해져있다. 빛 때문이다. 게다가 날씨가 흐려서 부엌에는 햇볕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을 무릅쓰고 꾸역꾸역 만들었다. 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왕 부엌에 머무르는 김에 반찬 몇 가지를 더 만들었다. 동물성 단백질을 집에서만이라도 적게 섭취하는 식단을 짜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험을 해보고 있는데, 참 만만치가 않다. 두부로 뭔가 만들어보려 했는데, 이게 정말 미친 듯이 귀찮은게 두부를 으깨서 무명천에 짜 물기를 빼야만 한다. 만두속을 만들때와 마찬가지의 방법이다. 그냥 두부를 썰어 구워먹는 것보다 더 귀찮다. 마음이 그래서인지 만드는 것도 영 시원치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 여러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때 꼭 필요한 우선순위 정하기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우왕좌왕했다. 아마 상태 좋을때보다 적어도 30%이상의 시간을 더 썼을 것이다.

사실 오늘은 좀 밖에 나가고 싶었다. 근 일주일째 밖에 나가지 못했다. 참다못해 어제 새벽 잠깐 차를 끌고 나가 용인서울 고속도로를 달리며 부잣집 아들 놀이를 했다. 그야말로 아담한 고속도로였다. 도로는 넓지 않고 적당히 구불구불하고 또 지면보다 높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종점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어야 되는데 괜히 강을 보겠다고 성수대교까지 차를 끌고 갔다가 후회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경부를 탔으나 바로 질려버려 다시 차를 돌려 같은 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왔다. 재미없었다.

아직도 그와 지난번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그때 그와의 대화는 버거웠다. 네시간 자고 일어나서 정신도 없는데다가 차까지 끌고 나왔기 때문이다. 집중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내가 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다른 것보다 잘 설명하지 못하는지 물었다.

그러게, 정말 왜 그럴까.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무엇인가를 좋아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조근조근 설명하지 못한다면 1.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다, 2. 그 이유라는 것이 미묘하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이어서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해버리고 변죽만 울리고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먼저 1이 아닐까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내 마음 속에 회의가 있었다. 그 회의의 존재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거의 결론을 내릴 뻔한 적도 빈번히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럼 혹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싫지 않은 건 아닐까. 1a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내 안에서 잔잔한 파도같은 머뭇거림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도 궁극적으로는 아니었다. 단지 싫지 않기 때문에 끌고 나가기에는 너무나도 귀찮은 일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결국은 2일 수 밖에 없는 것. 그러나 이건 사실 어떠한 면에서 개그일지도 모른다. 왜?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렇게 복잡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 설명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설명의 영역을 지나 정당화의 그것까지 발을 들여놓게 된다. 정당화라는 건 외부의 평가가 부정적일까봐 염려하기 때문에 나오는 일종의 자기방어전술이다. 공격받을까봐 미리 방어를 취하는 셈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또 한 편으로는 약간 확대해석을 하자면 결국 나라는 인간은 원하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일종의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언제나 나는 내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아주 조목조목 설명해야만 했다. 그냥 가지고 싶은 건 가지고 싶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명하려 애썼다. 그러나 사실, 그냥 가지고 싶은 것도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내가 그걸 왜 가지고 싶어하는지 조목조목 따지다보면 손 안의 새처럼 날아가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단순하기 때문에 욕망이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욕망은 머리보다 몸의 영역에 속해있다. 대체 언제부터 복잡한 메카니즘을 통해 욕망을 이해하고 정당화하라고, 나는 배워왔던 걸까.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이해하지 못할거야’라고 생각하기도 지겹다. 이제 나는 나에게 염증을 느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열 개의 컵케이크를 만들고 다섯 개에 크림치즈 프로스팅을 올렸다. 열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부엌에서 만들고 사진을 찍다가 저녁을 만들어 먹고 청소기를 돌렸다. 잠시 소파에 누워 있다가 밤안개를 헤치고 본가로 가 컵케이크 네 개를 드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걸레질을 했다. 봄이면 이사를 가야 되는구나, 생각하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다.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땄다.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오늘은 또 몇 명이 링크를 끊을까.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요.

 by bluexmas | 2011/02/05 00:01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at 2011/02/05 00: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안녕학점 at 2011/02/05 01:17 

욕망은 머리보다 몸의 영역에 속해있다. 대체 언제부터 복잡한 메카니즘을 통해 욕망을 이해하고 정당화라고, 나는 배워왔던 걸까.

아… 어쩐지 자꾸 읽고 있어요.

컵케이크.

한 번도 못먹어봤는데 크림치즈도 올리다닝; ㅠ; 먹어보고싶어용.핰핰.

 Commented by 딸기쇼트케이크 at 2011/02/05 01:19 

컵케이크 하니 예전 유명한 모 컵케이크집에서 먹었던 커피맛 프로스팅이 생각나는군요. 뭘 넣었는지 미묘하게 단맛 과 커피향 뒤에 씁쓸하니 플라스틱냄새가 스며들어있었지요…아무리 단것을 좋아한다고는 해도 단맛만 넘쳐나는 프로스팅만 해도 충분히 괴로웠는데 미묘한 그 맛이라니… 컵케이크는 아직 어려워요… 특히 프로스팅의 맛은 아직 그 묘미를 모르겠어요;

 Commented at 2011/02/05 01: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1/02/05 02:39 

참으로 고생하셨네요.(토닥토닥)

점점 부엌일이 싫어집니다.

참주부가 아닌게지요.

불과 2년 전엔 손이 완전 촉촉했는데…이젠 꺼실꺼실…조금이라도 미지근한 물에 손만 갖다대면 화끈거려서 오들거리며 찬물로 설겆이하고…

가까운 동네 있었으면 하소연이라도 했으련만.(위기의 주부들?ㅋㅋㅋㅋ)

 Commented at 2011/02/05 12:40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