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야 고마워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은 우울하다. 그건 내 돈을 들이거나 들이지 않거나, 술자리가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 상관없다. 나는 우울하다. 사실 어제는, 그럴 수만 있다면 옆구리를 뚫어 파이프를 박아 술이 위장에 흡수되기 전에 몸 밖으로 도로 빼내고 싶었다. 계속 마시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오늘은 하루 종일 우울했다. 나는 사실 우울하더라도 대놓고 ‘우울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보다 나 자신을 괴롭혀가면서 돌려말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 편인데, 이런 경우에는 그것도 필요없이 그냥 ‘스트레이트’하게 우울했다.
그래서 저녁때까지 잠을 청했다. 글쓰기가 물리적으로 싫은 하루였다. 물리적인 모든 게 그냥 내키지 않는 하루였다. 그렇게 있다가 아주 늦은 시간에 잠깐 집을 나섰다. 지금 쓰고 있는 치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였다. 터덜터덜 역 앞을 지나갔는데, 닭꼬치를 파는 노점의 핫도그가 아주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하고 올라오면서 우울함이 조금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핫도그야 고마워, 이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통통한 자태로 지켜줘서. 그렇게 살짝, 속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정작 핫도그를 사먹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핫도그도 제자리를 저렇게 꿋꿋이 지키고 있으니, 나도 기운을 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새 치실을 샀다. 빛이 아무리 밝아도 어떤 동굴은 그저 계속 어둡다. 희망이 아무리 화사하게 빛을 발해도 어떤 절망은 절대 감화되지 않는다. 알고 있는 것과 그걸 확인하는 것은 다르다.
# by bluexmas | 2010/11/25 00:22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