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어? 서울 톨게이트에 진입하는데 무엇인가 달라보인다. 아, 다음 주에… 전광판에 뜨더라, <차를 가지고 나오지 마십시오>. 네 아빠…
교보에 잠시 들렀다. 서점에 가서 책을 보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사실은 서점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30분 이상 머무르면 괴로와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교보가 새단장을 마치고 문을 처음 열었을때, 관련된 글을 쓰려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30분에서 한 시간씩 머무르곤 했는데, 사실 괴로왔다. 오늘도 책을 정말 보러 간 건 아니었다.
언젠가도 이야기한 것 같은데, 10~15년이 지난 지금, 대학시절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꼽으라면 딱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군복무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데, 전에는 옛날 도서관 지하 열람실에서 책들 잔뜩 쌓아놓고 화학 실험 프리 리포트 쓰던 때였다. 일반화가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물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좀 느긋하고 여유로운 구석들이 있었고, 반대로 화학쪽은 깐깐하고 까질했다. 물론 일반화가 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어설프게 아는 바로는 학문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쨌든, 화학실험은 화학에 딸려 1학점짜리 과목이었는데, 목요일이 실험이라면 화요일인가까지 실험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해서 레포트를 내야만 했다. 다들 분위기 파악 못하고 헐렁하게 해서 디밀었는데, 가차없는 조교들은 C와 D를 날렸다. 뭐 나는 헐렁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에 왠지 반발심이랄까 뭐 그런 걸 느껴서 1학점짜리인데도 좀 삽질을 많이 해서 레포트를 썼다. 열람실은 도서관 정문쪽에서는 지하, 후문인지 옆문 쪽에서는 지상인 구조였는데, 햇빛을 등지고 책상에 앉아 오래된 도서관의 그 찌든 책냄새를 맡으며 레포트를 쓰는 시간이 참 알 수 없게도 즐거웠다.
복학하고 나서는 학교 뒤의 사근동과 마장동에서 자취했는데, 시내랑 가깝다 보니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시내로 나가 영풍과 교보문고에서 여러 책들, 특히 건축 이론 서적 둘러보는 시간을 무척 즐겼다. 그러다가 내키면 광화문을 지나 서소문까지 걷기도 했고, 또 친척 가운데 편찮던 분이 있던 시기에는 그 중간의 강북삼성병원에 들르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때가 그런 책들을 가장 열심히 읽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약간 두서가 없는데 하여간, 도서관이며 서점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데 요즘은 그 양쪽 모두에 가는 게 좀 괴롭다. 왜 괴로운지 말하는 것은 은근히 좀 구차한 것 같아서 구구절절이 늘어놓지는 못할 것 같다. 하여간, 발을 들여놓으면 곧 나라는 존재가 아주 작은 하나의 먼지 알갱이처럼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에 시달린다. 오래 머물 수록 점점 더 쪼그라들다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지하공간 공기조화를 위한 바람에 빨려들어가 그 얽히고 섥힌 설비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를 블랙홀로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래서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이제 그렇게 된 것 같다. 슬퍼해야 하는 걸까. 오늘따라 말, 아니 글이 좀 엉킨다.
# by bluexmas | 2010/11/04 00:28 | Life | 트랙백 | 덧글(15)
비공개 덧글입니다.
머털도사를 그린 그분?
청춘이십니다.
사근동,마장동이라면…블루마스님은 H대에서 수학하셨나요?^^;;
저는 서점에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보시는 분들이 제일 존경스럽습니다.
서점은 오로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장소.
인터넷 서점이 없었다면 전 말라 비틀어졌을 거 같아유.
작가님들한테는 안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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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가 특별히 사랑하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심한 편인데.. 언젠가부터.
그런 장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않음’을 깨닫게 되면 상실감이 큽니다-.-
그 공간의 분위기가 변했을 수도 있고.. 아님, 내가 변했을 수도 있고..
그런 기분 너무 싫어서 전.. 그냥 집안에 저만의 공간을 구축하거나,
갈수록 운신의 폭을 좁혀 들어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