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선생님
소문에 의하면, 그의 대학 전공은 문헌정보학이라고 했다. 사실 그때는 그렇게 멋있는 이름으로 그 전공이 존재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천연섬유학과’가 사실은 ‘잠사학과’였던 것처럼, ‘문헌정보학과’는 사실 ‘도서관학과’였다. 그는 문학선생님이었는데, 그의 전공은 도서관학이었다고 했다. 다들 연관이 있을 것 같다면서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소문에 의하면 그는, 이사장의 먼 친척뻘이라고도 했다. 그도 아니면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 이사장이랑 아는 사이였다거나.
그는 참으로 독특한 교습법을 가진 사람이었다. 문학이라는 것이 결국 말과 글이니만큼, 입으로 음미하면 작품의 맛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업을 들어오면, 그날 배울 시며 소설, 아니면 시조까지도 학생들 모두가 함께 입을 맞춰 큰 소리로 읽도록 했다. 그것도 수업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다른 교실들이 모두 선생님의 목소리로 들어차는 가운데, 문학 수업이 있는 교실은 학생들의 우렁찬 떼낭독으로 늘 떠나갈 듯 했다. 한 학기 내내 문학 수업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직접, 학생들이 읽는 문학작품의 가치에 대해 말했던 기억은… 거의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직접 읽으면서 그 맛을 느끼고 몸으로 새겨 이해하라는, 깨우친 자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아, 그렇다고 해서 매 시간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만 큰 소리로 읽다가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는 강약조절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한 시간 내내 읽는다면 기계적으로 읽다가 재미를 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는지, 중간중간 읽기로부터 쉬는 시간을 두기도 했다. 그럴 때에는 꼭 학생들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 개인기를 보여주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를테면 그 당시 유행하던 코미디언의 흉내를 내봐라, 뭐 그런 식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거의 늘 불려나갔다. 물론 나는 개인기 같은 걸 할 줄 몰랐다. 그래도 그는 거의 언제나 나를 불러 올렸다. 그는 빡빡머리에 살찐 나를 ‘곰’이라고 부르며 늘 얼굴을 터뜨릴세라 주물러대곤 했다.
늘 그렇게 즐거운 개인기의 시간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때로 그는 학생들을 질타했다. 특히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어야 할 낭독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기라도 할라치면, 정말 가차없이 체벌을 물고를 텄다. 그런 불협화음이 아름다운 문학작품에게 굴욕이라도 된다는 듯, 그는 학생들을 무섭게 질타했다. 우리는 때로 의자를 들고 서 있기도 했고, 단체로 어깨 동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문학시간에 문학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곁가지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학교를 떠난지 꽤 오래 되었지만, 소문에 그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의 전공은, 역시 소문에 의하면 문헌정보학이라고 했다. 나의 후배들이 내가 그랬듯 ‘연관이 있는 것 같으면서 없어’라며 고개를 갸웃거릴지는 잘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10/10/25 01:56 | —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