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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일이 거의 끝으로 다다르고 있는데 치아바타 생각이 났다.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으니 맛있는 빵을 사 먹는 건 언감생심이고, 그렇다고 집에서 해 먹을 겨를은 있었냐면… 현재 ‘집=쓰레기통’, 그래서 스폰지를 만들어놓고 잠을 청했다. 오후에 일어나서는 집을 조금씩 치우면서 빵을 굽고, 수프와 뭐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어서 먹었는데, 빵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건 별로 맛이 없었다. 반은 불규칙한 생활에 입맛이 썩어서 그렇고, 또 반은 못 만들어서 그런 것이겠지. 오늘 남은 시간에는 일을 안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짧은 프리랜서 생활에서 가장 빡센, 그러나 절반 이상 자초한 것이니 불만은 없는 마감을 하고 뭐랄까, 홀랑 타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예상외로 서늘한 바람이 살살 불어들어와서 정신을 바싹차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재가 다 날아가 버릴테니까. 여름이 아직도 다 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힘든 여름이었고 또 한 3주 동안은 정말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고통스럽지 않으면 배우는 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스트레스 받으면 받는 대로 산다. 거부할 생각은 없다. 때로 그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게 더 스트레스니까. 담배 끊으려는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나한테는 그런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산다는 건 결국 태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우고 또 태워서 더 이상 태울 게 없으면 죽는 것 아닐까. 나는 오래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신경쓰고 관리해도 상하는 부분이 있다. 왼쪽 어금니가 썩다 못해 자각증상이 있는 걸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냥 계속해서 타고 있다. 아니, 사실은 태우고 있는 것이겠지. 그건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의미이다. 가늘고 긴 삶을 동경해본 적은 없다. 물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딱히 거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답이 하나만 써 있는 문제를 푸는 기분으로, 이런 삶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왜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해 보고 싶다. 내가 나를 만들 수 없던 시절이 있었을테니까.
이 삶에는 대가가 너무 많이 따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적을 만들고, 너무 많은 사람을 미워하고, 너무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렇다고 그런 대가를 치르고 아주 잘 살고 있느냐면, 또 그런 것은 아니라 대체 왜 이래야만 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전생을 믿지는 않지만 그런 게 진짜 있다면 나의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사람을 떼로 죽이고 그 피를 받아 목욕했다는 폭군이나 뭐 그런 건 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도 구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손 벌리고 싶은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지금도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위해 지겹도록 손 벌리고 살고 있으니 더 큰 것을 위해서 손 벌릴 용기도 넉살도 나지 않으니까.
# by bluexmas | 2010/09/08 02:42 | Lif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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