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터미널과 기타 잡담

1. 터미널이나 역과 같은 장소를 싫어한다.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을씨년 또는 휑덩그렁한 공간에서 헤매여야만 하는 그런 공간이 싫다는 이야기이다. 집에서 멀지도 않은 동네인데 터미널에서 거창하게 표까지 사서 버스를 타야 되길래 기분이 좀 이상했다.

2. 쫓기는 게 싫다.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쫓기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오산에 사는 게 싫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11시 17분 급행을 타려고 거의 30분 전에 집에서 나왔는데, 눈 앞에서 마을 버스를 놓치니 차 시간 15분 전까지 버스가 안 왔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탔는데 거의 모든 신호에 걸렸다. 아 정말 일요일 날에도 지하철 역 계단을 그렇게 뛰어 올라가야 하나, 정말.

3.참고로 오늘의 동선은 홍대앞-분당. 쓰면 짧지만 그 두 동네 사이의 거리는…T_T 홍대앞에서 분당을 가는 게 그렇게 먼 길인지 정말 몰랐다.

4. 지하철을 타는 건 답답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버스나 기차처럼 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에는 자기 바빠서 책을 안 읽는다. 지루하지만 당분간 지하철을 조금 더 열심히 타고 그 안에서 책을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는 자료가 될만한 다른 것들을 찾아 보느라 책을 조금 뒷전에 두는 경향이 있다. 집에서도 조금 더 읽어야 되는데… 어쨌든 어제 오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Witold Rybczynski의  <The Look of Architecture>를 다 읽었다. 그 전 며칠 동안에는 박상우의 <작가>를 읽었다. 회사에 다니는 몇 년 동안 건축 이론책을 많이 읽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인간이 되었을 수도 모르겠는데 나는 그동안 푸드 채널을 보고, 블로그에 건축을 뺀 나머지에 대한 글을 썼다. 웃기는 게 그 안에 있으면 호기심이 없어진다. 일을 하면 이론에 관련된 걸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일까.

5. 오늘 저녁에 겪은 일을 생각해보면, 결론은 한 가지 밖에 없는 것 같다. 비판은 어느 수위까지 가능한가? 어느 수준까지 제공할 수 있고, 또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 수 있나? 대체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어느 수준에서 터뜨려야 하나?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얼마만큼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나 화를 안겨야 하나?

6. 늘어놓고 보니 이건 결론이 아니고 그냥 물음이잖아. 그럼 답을 아직 못낸 상황이군 결국…

6-1. 5에 대한 상황을 좀 자세히 늘어놓고 싶지만 나를 너무 많이 드러내야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너무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어서 그냥 말기로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장사를 그런 식으로까지하면 안된다. 그런 위기가 닥쳐오면 복창해야 한다.

6-2.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짐승은 되지 맙시다.”

6-3.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짐승은 되지 맙시다.”

6-4. 체육대회날 만세삼창은 아니어도 복창은 세 번 해야 맛이니까,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짐승은 되지 맙시다.”

(여기까지 쓰니 읽고 왈칵 짜증낼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좀 든다-_-;;;;)

7.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버리지 못할 만큼 게을러서 자꾸 집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자빠졌다-_-;;; 집에는 페트병이며 플라스틱, 종이며 비닐이 비교적 가지런히 분리되어 있는데, 정작 밖에 내다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역시 나는 무엇보다 게으른데에 가장 부지런하다.

 by bluexmas | 2010/03/21 23:57 | Life | 트랙백 | 덧글(31)

 Commented by Gony at 2010/03/22 00:02 

저도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도 블로그에는 그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었죠. 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25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지도 몰라요.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03/22 00:26 

저도 느끼는게.. 수도권 동네라는 게 버스를 금방 잡아타면 서울까지 가깝지만, 눈앞에서 놓치는 등 꼬이면 시간 잡아먹는 게 있죠. 시간에 맞출 수 밖에요..

홍대>분당은 좀 멀긴한데, 교통편만 잘 잡으면 1시간5분 정도에 주파할순 있더군요. 상수역에서 6호선타고 한강진역에서 한남동행 110,0213번 타고 한남동에서 9000,9001,9401,8100번 등을 타면 논스톱으로 분당에 갑니다.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타고 을지입구역 하차, 롯데백화점건너편 정류장에서 위에 열거한 버스와 M4102번을 타도 됩니다) 외양간 고치는 소리같지만..참고해두세요.

말씀대로 사람이 힘들다해서, 순간 이익만을 위해 짐승처럼 행동하면 절대 안되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26

아, 저도 지하철 두 번 탔는데 한 시간 1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서울 시내에서 버스타는 거 저도 참 좋아하는데 변수가 너무 많아서 가끔 두렵습니다. 특히 광역버스는 더 그렇지요.

 Commented by JuNe at 2010/03/22 00:33 

아니 전 그거 분리도 못하고 쌓아두다가 어지럽히고 하지 말입니다 저보다 더 게으른데에 부지런한 사람은 세상에 드물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26

그래도 이를 북북 갈면서 다 내다버렸답니다^^

 Commented by JuNe at 2010/03/24 13:27

역시 제가 더 게으른 쪽으로는 부지런해서 뿌듯합니다(/ㅅ)/ ->이런걸로 뿌듯해하는 나란 사람..;;

분리 그게 뭘까 먹는걸까 하면서 마구마구 쌓아두고… 대신 치워줄 사람도 없이 혼자 살때도 이랬던 것을 보면… 방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더러운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게을러서라는 것을 이럴때마다 깨닫습니다;;;

 Commented at 2010/03/22 00: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27

네 아주 요상한 식당에 갔어요… 제가 홍대에 있을때에는 사람들 별로 없어서 괜찮던데요.

 Commented at 2010/03/22 01: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27

그렇죠… 말씀하시는 상황이 맞아요. 건수 잡았다는 식으로 물고 늘어지는 거 참 피곤해요.

 Commented by squamata at 2010/03/22 01:25 

짐승은 차라리 표리부동하거나 이율배반적이지라도 않지요.:(…

예전에 있던 집에서 이불가방만한데 칸막이가 있는 재활용품 분리 가방을 매번 넘치도록 가득가득 채우며 유용하게 썼었는데. 정작 수거함은 종류가 나뉘어있지 않아 늘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27

앗 그게 정말 웃기는 세상이치죠. 수거함은 나뉘어 있는데 정작 트럭은 다 때려부어서 수거하기도…

 Commented at 2010/03/22 01: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28

저도 시간약속은 잘 지키려고 해요. 5분 늦기 시작하면 벌써 혈압이 막 오르기 시작해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03/22 01:50 

생활의 발견… 명장면들이 많지요. 그리고 늘 찔리는 구절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31

네, 저는 18금 장면들이 기억에 참 많이 남던데요. 그런 이야기도 한 번 써 보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당고 at 2010/03/22 01:52 

저도 터미널이나 역 같은 데 싫어요.

전 가끔 그냥 떠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싫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강남에 살 때도 분당이 멀다고 여겨졌는데 홍대에 사니까 완전히 안드로메다예요. 홍대로 이사 오고 한 번도 안 간 듯;

bluexmas님은 언제나 이동거리가 참 많으신 것 같아요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32

떠나는 것 자체가 참 귀찮고 싫지요. 저는 다 멀어서 다 싫은데 그냥 지하철에서는 책이라도 읽으니까요. 분당선에서 제대로된 쩍벌남 아저씨를 옆에 앉혀서 좀 괴로웠어요.

 Commented by Cheese_fry at 2010/03/22 07:04 

홍대와 분당을 하루에 찍으시다니… 용자십니다. ^^; 저는 고속터미널 근처에 살았었는데, 서쪽으로는 여의도, 동쪽으로는 압구정, 북쪽으로는 사대문 안, 남쪽으로는 예술의 전당.. 이 선을 넘는 동선은 거의 불가.. ^^; 만화책 사러 홍대 한번 가려면 연간 행사였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32

네 전 오산에서 홍대를 가서는 분당을 찍고 다시 오산으로 돌아오는 용자입니다. 아 만사가 귀찮아요 그냥T_T

 Commented by 혜정 at 2010/03/22 08:48 

전 분당사는데, 홍대는 일년에 한번 갈까말까해요… 분당에는 직행버스가 꽤 있는편인데, 왜 홍대-신촌-이대 이쪽라인은 아직도 안생기는걸까요? 덕분에 신촌 북오프 갈때는 진짜 귀찮아요. 그래도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걸리지 않지만.

전 지하철보다 버스에서 더 책읽기가 좋더라구요. 잠이 쉽게 안들어서;; 지하철은 사람도 많고 왠지 불편해서 잘 안타기도 하고.

쫓기는게 싫어서 더 일찍 여유롭게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보통때보다 30분이나 일찍 준비하는데 나가는 시간은 똑같다는건… 제가 뭘 잘못한걸까요…

 Commented by yunz at 2010/03/22 12:28 

저기.. 블루크리스마스님… 안녕하세요(엥?) 뵙게 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사실 너무 놀래서;;말도 에데데-했네요(진짜 민망하네요…;;;) 좀 미리 알려주셨음, 뭔가- 뭐라도- 했을텐데…ㅜ 그날도 많이 바쁘신 거 같던데, 역시나 후덜덜한 동선이네요…. 그나저나, 참(;;;)잘(;;;;) 생기셔서 더 놀랬습니다…(응? 이건 뭐=_=;;;; 퍽퍽퍽퍽!) 혹시(…..) 다음에(…) 오실 일이 있으시면, 꼭- 또- 들러주세요….(사실 주말에는 완전 정신이 없어서요, 가시고 난 뒤에 저; 패닉됨;;;허둥지둥 커피날르는 거 다 보셨을테고;;;부끄럽고 민망해서 아이고-) 무튼, 모쪼록-

그 속에 있으면 호기심이 없어진다는 말씀은 참으로 와닿네요. 저도 그랬거든요. 미술관련 책은 점점 멀어지고, 미술관련 행사는 점점 관심 없어지고- 그럼에도 챙겨서 읽으시는 모습이 대단하세요- 저도 바쁘게 걷는 거 별로예요…천천히 하고 싶은데, 제가 촘 밍기적거리는 (행동이 느려서요;;)편이라 맨날 허둥지둥;;;(쓰고보니 결국;;; 오늘도 주절주절-)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34

히히 한 눈에 알아봤는데 미리 말씀드리면 더 당황하실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저도 딱히 윤즈님 보러 갔다기보다 좋아서 간 것이기도 했구요~ 사장님께 치즈케이크 좀 더 해동해서 내놓으시라고 말씀 좀 전해주세요. 가운데는 거의 아이스크림 수준이더라구요…

원래 그 안에 있으면 관심이 없어지지요. 밖에 나오니까 그럭저럭 또 들여다보게 되네요…

 Commented by yunz at 2010/03/24 02:31

아’ 그 치즈케익이요;;;; 그렇죠, 많이 얼어있죠;;;;(왜 제가 민망한 걸까요;;;) 지금은 완전히 녹녹한 상태에서 나가요, 그러니까 블루크리스마스님 다음부터…(참;;) 그제서야…. 저도 일이 두서없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요…..(정말 찌질한 답이네요 ㅠㅠ) 그런데, 사실 감사한게요,,, 저는 블루크리스마스님이 무척 무서우실꺼라(-_-;;)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지 않고 따뜻해보이셔서 (저는) 무척 고맙고(이거 뭔가요) 감사했어요…그냥….그랬다구요.헤-(또 바보처럼 웃네요)

 Commented at 2010/03/22 13: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34

알겠습니다~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3/22 15:39 

어릴 적에 터미널은 제 놀이터였어요..모두가 시간에 쫓기는데 혼자서 유유자적 자판기 우유를 음미하며 터미널의 철대 위를 걷거나 매달리며 놀았어요 흐흐-_-;

지금의 터미널에선 그럴 수 없지만..물론 제가 컸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도 있지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34

음산한 터미널은 좀 싫더라구요. 터미널이라는 데가 대부분 좀 그런 것 같아요. 버스와 기차의 차이도 있을까요?

 Commented by  at 2010/03/23 01:06 

저는 터미널 쬐끔 좋아하는데.

물론 제가 바쁠 때는 싫지만, 아닐 때는 한가하게 죽치고 사랑 구경하는 거 좋아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24 00:35

요즘 터미널이 싫은 이유는, 아무래도 노숙자들 때문인 것 같아요. 가만히 있게 놀아두지를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