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읽는 건축(3)-목욕탕
고대 로마에서 서울의 찜질방까지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파묻혀 버린 고대 도시 폼페이의 공중 목욕탕에는, 재에 묻혀 그대로 굳어버린 미라 두 구가 유리 상자에 놓인 채로 전시되어 있다. 두 미라 가운데 하나는 허리에 허리띠를 두르고 있는데, 누군가는 이 허리띠가 모두가 옷을 벗어 신분을 알 수 없게 된 가운데 귀족임을 드러내주는 표식이라고, 또 누군가는 그 반대로 어떤 귀족에게 속한 노예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주장 모두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만, 알몸에 허리띠만 걸친 모습이 대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를 생각해보면, 귀족보다는 노예에게 그런 차림을 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따뜻한 목욕이 부쩍 더 생각나는 이 계절에 어울릴 법한, 모든 목욕탕에 관한 이야기 역시 로마로 통한다. 로마 문화에서 목욕탕이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했던 덕에,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는 그의 책 ‘건축 10서(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 디자인 종합 지침서)’ 의 5장 10절을 목욕탕 건축에 할애하고 있다. 책을 들춰보면, 비록 남자와 여자의 목욕탕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각각의 열탕만은 나란히 붙여 놓아 같은 가마로 불을 때 뜨거운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요즘의 사우나와 같이 땀을 흘리는 공간인 ‘Laconium’ 과 온탕을 붙여 놓는 등의, 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온도 유지를 위한 기술 및 공간 계획에 관한 사항들을 꼼꼼히 늘어놓은 것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또한 온도 유지를 위해 그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시간인 늦은 오후에서 저녁 시간을 대비해 가장 따뜻한 입지 조건을 찾고, 햇빛을 가장 많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온탕과 열탕이 남서쪽으로 창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로부터 약 2천 년이 지난 지금 기술의 발달로 채광과 같은 측면은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사실 오늘날의 목욕탕에서 고려되어야 할 기본적인 공간 계획이나 기술적인 측면은 로마 시대의 원형과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온도 유지도 중요하지만, 목욕탕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물을 막거나 다스리는 작업, 즉 방수이다. 건축가 함인선이 자신의 책에 ‘건축은 반역이다’ 라는 제목을 붙이고 건축을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꾀하는 반역적인 수단으로 정의한 것처럼, 사람이 만들어 낸 건물은 자연의 힘과 끊임없는 싸움을 치러야만 하는 운명에 늘 처해왔다. 그리고 그 자연의 힘 가운데 건물에게 가장 버거운 적은 바로 물이다. 건물을 괴롭히는 물은 그 종류도 사실 굉장히 다양하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물인 비나 눈, 그리고 이슬도 있지만, 건물의 재료가 품고 있는 수분(주변 온도 변화로 인해 수분의 함유량이 변하면 건물 미적, 기능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땅이 머금고 있는 물인 지하수도 건물에게는 만만치 않은 골치거리이다. 이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들이 닥치는 물을 막아내기 급급한 게 건물의 현실임을 생각해 보면, 목욕탕에서 필요한 만큼이나 엄청난 양의 물을 스스로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건 사실 건물에게는 자살행위나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목욕탕의 방수에는 단 하나의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고, 실패 없는 방수를 위해 목욕탕의 바닥에는 열 겹에 이르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켜를 깔아 완벽을 추구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외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이나 지하층에 자리잡곤 했던 목욕탕이 이제는 높은 건물의 중간층에도 버젓이 자리잡는 것을 보면, 건물과 물 사이의 치열한 싸움은 점차 건물, 그리고 인간에게 우세한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의 덩어리진 폭력으로 기억되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Easter Promise(2007)’ 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의심의 여지 없이 터키식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알몸의 비고 모르텐센과 두 자객 사이의 혈투이다. 이 3, 4분 남짓한 장면에서는 두 종류의 죽음이 벌어진다. 첫 번째 죽음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의, 육체 또는 생명의 죽음으로, 그 자체로 잔혹하기는 해도 워낙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에는 사실 상대적으로 그 충격의 강도가 크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잔혹하니까. 그에 비해 두 번째 죽음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목욕과 목욕탕에 대한 인식의 죽음은 어쩌면 육체의 죽음보다도 더 충격적이다. 목욕탕은 옷을 다 벗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따뜻한 물과 공기로 근육을 이완시켜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그러한 속성을 이용해서 사교를 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인식한다. 그러한 본능적인 인식이 의식 밑바닥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혈투와 그 결과인 살인으로 인해 더럽혀진 채 맞이하는, 자신이 지녀왔던 목욕탕이라는 공간의 인식의 죽음에 더 큰 충격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 대신 피가 목욕탕 바닥에 고여 흐르는 장면은 좀처럼 잊기 힘들다. 어째 목욕탕 바닥에도, 또 마음에도 피의 얼룩이 남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이렇게 드문드문 존재하는 영화적, 그리고 허구적인 예외를 빼놓는다면 목욕탕은 그 오랜 옛날부터 즐겁고 행복한 공간이었다. “왜 하루에 한 번씩 꼭 목욕을 하느냐?” 는 외국사람의 물음에, 어떤 로마 황제는 “두 번 할 시간은 없으니까” 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목욕탕은 편안함을 통해 행복함을 찾고, 또 사회적인 유대를 다질 수 있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다. 목욕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일단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축축하고 따뜻하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사람들은 양수에 잠겨 있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따뜻한 물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는 지극히 본능적이며 동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목욕을 위해서 옷을 벗어야 한다는 점 역시, 그러한 측면에서의 솔직함을 자극해서 목욕과 목욕탕에게 사교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남자들에게 있어, 목욕을 통한 유대감 강화는 바로 저 로마 시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유서 깊은 사회적인 전통이나 다름없다. 골프를 통한 사업 모임이나, 비단 골프를 치지 않았더라도 사업에 관련된 많은 모임이 어떤 식으로든 목욕탕, 아니면 보다 세련된 이름의 사우나와 결부되는 것은 거의 상식에 가까운 통과의례가 되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 남자들만을 모아 생일잔치를 했던 누군가는, 잔치의 첫 번째 순서로 모두를 목욕탕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이렇듯 목욕의 사회적인, 또는 사교적인 기능은 초등학생이 단체 목욕을 생일 잔치의 행사 일부로 기획할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본능에 치우쳐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욕탕의 사회 및 여가를 위한 기능은 개인주택의 현대화(라고 쓰고 서양화라고 읽는다)와 더불어 점차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다. 무엇보다, 하나의 생존전략으로서 그러한 기능을 강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통 가옥에 살거나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이 막 도입되었던 시절만 해도 개인 목욕탕이 집에 들어설 자리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사회적인 유대감도 유대감이지만 그보다 개인 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목욕탕을 드나들었다. 말하자면 목욕탕에 가는 것은 선택보다도 일종의 의무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주택가에는 빠짐없이 한 두 군데의 목욕탕이 있었지만, 점차 주거 양식이 현대화되고 개인 목욕탕을 갖춘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의무적으로 목욕탕에 갈 필요가 줄어들자,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결국 많은 목욕탕들이 설 자리를 잃고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에 발맞추고자 목욕탕은 그 덩치를 불려 단지 목욕을 위한 공간이 아닌, 먹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강화한 복합 여가 선용 및 생활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궤를 같이 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서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그러는 한 편, 전통적인 목욕탕의 가치를 보전하는 시도 역시 함께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게는 이제 옛날 분위기의 목욕탕을 찾기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언젠가 북촌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되었고, 북촌의 분위기에 함께 어울려 사람들에게 나름의 관심을 얻고 있는 계동 현대 사옥 뒤편의 ‘중앙탕’ 은 그래도 재개발 불가지역에 자리잡고 있음과 동시에 동네 사람들의 미미한 수요-옛날과는 달리 동네에 사람들이 더 이상 많이 살지 않아 수익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30년 가까이 일해오셨다는 매표소의 아저씨께서 말씀해주셨다-로 인해 그 존재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그건 거의 유일한 예외에 불과할 뿐이다. 또 다른 오래된 목욕탕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아현 3동의 ‘행화탕’ 은 사실 이제 그 수명이 다한 채 껍데기만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린다. 물론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 나름 도시 및 건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행화탕은 벌써 속이 헐린 채, 아파트 숲 사이에서 오늘 내일, 철거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공간의 형태는 조금 다르겠지만, 일본 토쿄의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Scai the Bathhouse)’ 나 마케도니아의 국립 박물관이 목욕탕을 개수해서 만든 전시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행화탕과 같은 건물 역시 어떤 식으로는 살려 쓸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복합 여가 선용 공간으로 변모한 오늘날의 목욕탕은, 놀라울 정도로 그 원형이었던 고대 로마의 목욕탕과 닮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 역시 복합 여가 선용 공간으로서, 하나의 단지 안에 오늘날의 도서관, 미술관, 쇼핑몰, 음식점이나 바, 그리고 스파며 헬스 클럽, 로마를 생각하면 빼놓을 수 없는 레슬링장, 그리고 빌라와 같은 숙박시설까지 갖추었다고 한다. 레슬링장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우리나라의 목욕탕 역시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 뒤지지 않는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혹시라도 레슬링장이 아쉬울 사람들을 위해 그보다 훨씬 넓고 따뜻한 찜질방 까지 갖춰 놓았으니 이 계절에 어디보다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따뜻한 찜질방 바닥에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구운 계란이라도 까먹으면서 벽에 걸린 대형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을 깔깔대며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그렇게 길고 길었다는 겨울밤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만약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시간이 아니라면, 찜질방의 너른 바닥에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레슬링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단, 바닥이 레슬링장보다 훨씬 딱딱할 것이므로 ‘빠떼루’ 자세에서 너무 세게 상대를 뒤집지 않는 세심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밝힐 생각은 없지만 이 원고에는 사연이 좀 있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연재를 한 달 건너 뛰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처음에 썼던 것인데 방향이 기획했던 것과 좀 다르다는 지적이 나와서 결국 지면에 실린 것처럼 다시 쓰게 되었다. 계절에 맞춰서 목욕탕에 대해 쓰겠다고 기획을 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애를 좀 먹었다(뭐 사실 매달 그렇지만-_-;;;).
몇몇 알려진 목욕탕에 몰아서 가야만 했는데 사실 목욕탕에 오래 있을 수 있는 체질이 아니라서 좀 힘들었다. 아침에 한 군데에 갔다가 점심을 먹으며 좀 쉬었다가 다른 곳을 가는 식으로, 하루에 두 군데 정도를 두세 번 정도 가게 되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직장인들이 잘 가는 찜질방 같은 곳 분위기를 본다고 아침 첫 차를 타고 새벽에 강남역 같은 곳의 찜질방에 가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공간 사진을 찍으면 사람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느낌이 서로 다르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사람이 없으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그 이유는 정확하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목욕탕의 사진에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사람들이 벗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 사람을 넣고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사진에 넣을 수 없는 건, 그 공간이 옷을 입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인호의 연작 소설 ‘가족’ 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어린 아들과의 목욕탕 나들이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끈끈한 정 같은 것도 확인하고 싶었겠지만, 그보다 그는 아들의 ‘물총’ 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끌고 목욕탕에 갔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고 해도 워낙 오래 전에 읽었기 때문에 세세한 내용들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는 그렇게 해서 확인했던 아들의 ‘물총’ 이 제 역할을 할 것 같이 보여 내심 만족스러웠다는 투의 내용으로 이야기를 끝맺어서, 나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나는 딸이 결혼할 때가 되면 그 아버지가 사위 될 사람을 데리고 비슷한 이유로 목욕탕에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서로 합의했다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을 테니 굳이 어른까지 나서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길거리에 널린 그 많은 숙박시설은 다 쓸모와 수요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알아서 다 잘 하고 산다. 그게 무엇이든, 그리고 어른들이 걱정하든 말든.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추운 계절이다. 그래서 붕어빵이나 호떡, 그리고 어묵국물처럼 따뜻한 무엇인가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기껏 붕어빵이나 호떡, 그리고 어묵국물과 같이 작은 것들에서 나오는 김 정도에 마음이 포근해진다면, 목욕탕은 어떨까? 그 무럭무럭 솟아나는 김 덕분에, 목욕탕 또는 온천은 지도에마저 그 김을 딴 ‘♨’ 로 표기되고 있다. 비록 냉탕이 있기는 하지만, 목욕탕은 공감각적으로 따뜻한 공간이다. 따뜻한 물이 넓은 욕조마다 찰랑찰랑 넘쳐나니 공간 전체가 촉각적으로 따뜻하고, 붕어빵이나 호떡보다 더 많은 김이 정말 무럭무럭 솟아오르니 시각적으로 따뜻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추운 겨울,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이라니, 목욕탕은 당연히 겨울의 공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랬던가?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의 속성 때문에, 목욕탕은 오히려 전투적인 공간이었다고, 머리보다 몸이 더 강하게 기억하고 있다. 목욕이라는 행위의 속성과 목적을 생각하보자. 그렇게 공간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적극 활용해서 근육을 이완시키고, 땀구멍을 열어 흘러 나오는 땀을 통해 노폐물을 내보내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드는, 그것이 목욕의 목적이다… 라고만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단지 목욕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때밀기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불과하다. 때를 밀지 않으면 목욕은 목욕일 수 없고, 그 때밀기 덕분에 목욕탕은 태생적인 공간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전투의 공간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빨간 벽돌로 세우고, 하얀 페인트로 그 ‘♨’ 기호를 그려 놓은 굴뚝을 통해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던 옛날 목욕탕에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목욕탕에 가본 세대라면 금방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각자의 몸이 목욕탕을 전투의 공간처럼 기억하고 있는지를.
우리의 주거 문화가 지금보다는 조금 덜 아파트에 치우쳐 있던 시절, 대중 목욕탕이 아니면 온 몸에 물을 물에 적셔 씻을 공간이나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목욕탕 나들이는 주말에만 이루어지는 의식에 가까웠고, 그렇기 때문에 목욕탕으로 향하는 어른들의 발걸음에는 엄숙함이나 비장함마저 감돌곤 했다. ‘이것은 내 몸을 두고 벌이는 때와 나 자신과의 한판 승부와 같은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투사라면, 아들은 최소한 적성불문하고 사관학교에 입학이라도 해 봐야 가문의 체통이 서는 법… 어른들을 본받아 뜨거운 물에 손가락 끝이 쭈글쭈글해지도록 몸을 불렸다가 박박 한 번 밀어봐야겠지만 힘없는 어린이들에게 이태리와 전혀 상관없는 때수건 ‘이태리 타월’ 은 너무나도 거친 자기 학대의 도구일 뿐이었으니, 내키지 않는 두어 번의 문지름 뒤에 찾아오는 건 볼기짝에 떨어지는 매운 손바닥 두어 차례와 어른들의 손이라는 용병을 통한 대리전투일 뿐이었다. 곧 살갗이 찢어져 나갈 것 같은 아픔에, 목욕하고 매점에서 사주시는 바나나 ‘맛’ 우유나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 있던 시장 분식집의 고기만두-고기가 딱 한 점 들어 있던, 그것마저 없으면 그냥 야채만두-는 채 머릿속에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때와의 전투는 고통스러웠다.
묻힐 땅만 손바닥만하게들 남기고 나머지는 아파트로 채울 기세로 맹렬하게 건물을 올려대고 있는 오늘날, 그런 현실이 안고 있는 백 만 가지의 부정적인 측면 가운데 한 가지의 긍정적인 측면을 꼽아보자면 언제든지 목욕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역시 완전하게 긍정적인 측면은 아니다. 기술의 발달이 그러한 여건을 허락했기 때문에 더 많은 물을 집에 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런 공간은 마당이 있으며 개방성이 미덕이었고, 주로 목재였던 우리 전통 가옥에서는 가지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폐쇄성을 허락하고서 개인 목욕탕을 가지게 된 것이나 다름 없고, 그 여파로 그 어릴 적의 전투가 벌어졌던 목욕탕은 정말 전장에 나가서 목숨을 빼앗긴 전우들처럼, 하나 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실제로 서울 시내에서 옛날 분위기의 목욕탕을 찾기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언젠가 북촌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되었고, 북촌의 분위기에 함께 어울려 사람들에게 나름의 관심을 얻고 있는 계동 현대 사옥 뒷편의 ‘중앙탕’ 은 그래도 재개발 불가지역에 자리잡고 있음과 동시에 동네 사람들의 미미한 수요-옛날과는 달리 동네에 사람들이 더 이상 많이 살지 않아 수익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근 30년 동안 일해오셨다는 매표소의 아저씨께서 말씀해주셨다-로 인해 그 존재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그건 거의 유일한 예외에 불과할 뿐이다. 또 다른 오래된 목욕탕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아현 3동의 ‘행화탕’ 은 사실 이제 그 수명이 다한 채 껍데기만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물론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 나름 도시 및 건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행화탕은 벌써 속이 헐린 채, 아파트 숲 사이에서 오늘내일, 철거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공간의 형태는 조금 다르겠지만, 일본 토쿄의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Scai the Bathhouse)’ 나 마케도니아의 국립 박물관이 목욕탕을 개수해서 만든 전시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행화탕과 같은 건물 역시 천장고가 높고 기둥이 균일한 간격으로 박혔으며, 내부 공간이 복잡하지 않은 건물이므로 겉껍데기를 살려둔 채, 미술관과 같은 건물로 개수해서 쓸 수 있기는 할 것이다. 사실, 설사 복잡한 구조의 건물이라고 해도 요즘의 디자인이며 기술이라면, 개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 디자인이며 기술에 상관없이 의지가 없으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있으면 가능한 높이 올려서 사람들을 채워 돈을 벌어야 하니까. 돈이 먼저고, 문화는 당연히 나중이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은 몇몇 사람들의 머릿속 이상세계에서나 존재한다.
그렇게 옛날 목욕’탕’들이 사라져 빈 자리에, ‘스파’ 며 ‘사우나’, 또는 ‘워터랜드’ 와 이 거창한 이름을 가진 공간들이 비집고 들어앉기 시작했다. 정말 이러한 공간들이 ‘비집고’ 들어앉아야 하는 이유는, 옛날의 그 목욕탕에 비해 엄청나게 큰 덩치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현대화된 아파트에는 욕조가 보급되었으니 그런 단지에서 목욕탕은 존재 가치를 잃었고, 목욕사업은 그 격전지를 주로 직장인들이 많은 지역으로 옮겨, 자본이라는 지원군을 받아 덩치를 불려 전열을 재정비했다. 더 크고 넓은 공간 안에 목욕은 물론, 그 목욕으로 인해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까지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근육을 이완시키고 나면 나른해지고, 나른해지면 잠이 온다. 게다가 때밀기는 전투와도 같으니, 체력을 소모하게 되고 배도 고파지기 마련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수용하기 위해 목욕탕은 잠을 자거나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나, 간식은 물론 끼니까지 때울 수 있는 공간을 함께 갖춘 거대한 종합 위락시설로 탈바꿈하게 된 것인데, 결국 그 변화의 유형이 대형화된 서점이나 할인양판점과 별 다를 바가 없어, 그 풍요로움이며 다채로움에 놀라면서도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 들러 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주인아저씨가 지키던 동네 책방이 대형 서점에 밀려 없어진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 때를 밀며 그 때만큼 묵은 이야기도 사람들과 두런두런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가운데 한 종류가 없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주거 환경의 현대화 덕분에, 사람들은 예전처럼 정기적으로 목욕탕에 가서 때를 전투적으로 밀어야 하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집에서 목욕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융통성 덕분에, 목욕탕을 전투적인 공간으로 인식, 그리고 기억하도록 만들었던 때밀기는 더 이상 전투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더운 물은 틀기만 하면 콸콸 쏟아져 나오고, 굳이 때를 밀지 않아도 피부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의학계의 고견도 있겠다, 옛날처럼 박박 밀기 보다는 슬슬 밀다가 귀찮으면 또 다음을 기약해도 상관이 없다. 게다가 목욕탕에 가게 되더라도 용병인 ‘목욕관리사’를 사서 때밀기는 물론 ‘세신’ 까지 맡기면 그만이니 전투는 더 이상 내 몫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때밀기가 옛날의 전투적인 ‘권위’를 상실했으니 목욕탕 역시 그 전투적인 공간의 느낌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요즘의 목욕탕, 또는 사우나가 전통적인 목욕공간 그 자체보다는 그 부속 공간을 더욱 보강한 핵심에는, 그야말로 전투를 치르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휴식을 통해 전의를 가다듬는 공간인 집의 물리적인 기능을 옮겨다 놓은 수면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때밀기가 삶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투였다면, 사실 삶은 전투 그 자체이다. 전사들이 누비고 다니던 벌판은 빌딩숲으로 가득 차게 되었지만, 그 숲에서는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의 공기가 숲을 메운 나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남자들의 정장이며 넥타이는 전투복과 거의 다름 없으며, 짧게 치켜 자른 머리는 직업군인들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그 전투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아니면 모처럼 일찍 끝나 동지들끼리 모여 하루의 쌓인 피로를 함께 풀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본의 아니게 놓쳐버린 남자들은 대신 24시간 그들을 반겨 주는 사우나로 향한다. 철저하게 동성만이 모여 있는 사우나는, 마치 옛 전사들의 합숙소와도 같은 느낌이다. 홀딱 벗고 자는 몇몇 교양 없는 사람들을 빼 놓고는 사우나에서 주는 유니폼마저 받아 입으면 그들은 하나처럼 보인다. 아무런 칸막이도 없이 넓은 방, 모인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딱딱한 베개와 푹신함 보다는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개인 공간을 표시해주는 기능을 위해 존재할 뿐인 장판을 대강 놓고 누워 잠을 청한다. 불이 꺼진 수면실에서는 지하 동굴의 느낌이 나고, 남자들의 얼굴에서는 집에서 보낼 수 없는 하룻밤에 대한 아쉬움을 읽을 수 없다. 감상에 빠지면 지는 것이니까, 전투에서는.
이윽고 아침이 되면, 깨워주는 마누라가 없이도 남자들은 벌떡벌떡 잘도 일어나 옷을 벗고 욕탕으로 들어가 깨끗하게 씻으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많은 사람들이 욕탕 입구의 작은 서랍장에서 익숙한 듯 면도기나 칫솔을 꺼내는 것으로 보아, 이제 막 보낸 밤이 첫날 밤이 아니었고 또 마지막 밤일 수도 없을 것이다. 또 하루의 치열한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그들은 깨끗하게 씻으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이, 몸에서 가장 앞으로 많이 튀어나온 부분인 배에 가장 먼저 떨어진다. 뜬금없이 영화 ‘300’ 이 생각났다. 스파르타의 용사들은 컴퓨터의 힘을 좀 빌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복근도 아름다웠는데, 대한민국의 용사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다듬기 조금 어려운 뱃살을 달고 있다. 그러나 보기 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차라리 서글펐다. 집 대신 사우나의 수면실에서 밤을 보내는 저 남자들 가운데, 멋진 복근 한 번 다듬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보낼 시간도 없는 남자들에게, 복근 다듬을 시간은 사치일 것이다.
샤워를 마친 남자들이, 다시 어제 입었던 제복 아닌 제복을 챙겨 입고 넥타이를 맨 뒤 하나 둘씩 지하동굴을 빠져나간다. 목욕탕 화장대의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스킨과 로션을 듬뿍 바르고, 전투가 끝나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도 완벽하게 머리 모양을 잡아준다는 시장표 젤을 발라 가르마를 타고 나면, 뱃살과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용사의 풍모가 돌아온다. 그렇게 또 용사의 하루가 시작된다. 새 날의 약속 따위는 스파르타 용사들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다.
# by bluexmas | 2010/03/06 23:18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9)
저도 어렸을땐 어머니 손에 끌려가 여탕도 몇번 갔는데, 말씀대로 어머니가 미는 때밀이 수건이 너무 아파서-살갗 찢어지는 줄 알았음- 여자 몸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둘다 재미있지만 두 번째 글은 왠지 더 남성잡지스럽고(?) 첫번째 글은 더 공간의 의미에 집중된 느낌이네요. 보이지 않는 목욕탕 바닥에 열 겹의 서로 다른 재료가 켜켜이 쌓여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든든합니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