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맹인을 위한 음악재생기
1,200 번째
안녕하세요? 볼 수 있고 또 없는 모든 분들께 오늘 이렇게 저희 회사의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구걸맹인을 위한 음악재생기는 그 크기부터 최신 전자기기의 압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을 주축으로 올해 초부터, 지하철 3호선을 중심으로 사례 및 설문조사를 해 본 결과, 일단 구걸맹인을 위한 음악재생기는 그 크기가 너무 작을 경우 구걸을 위한 호소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생기에서 나오는 소리도 중요하지만, 목에 메고 다녔을 때 어느 정도는 눈에 잘 띄어야 사람들에게 ‘어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착안, 일단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10센티미터에 두께 4센티미터의 크기로 직육면체 껍데기를 디자인, 제품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간단한 조작을 위해 필요한 기능만을 추려내어, 단 몇 개의 버튼에 담았습니다. 각 제품 설명시간에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겠지만, 제 1형은 테이프형에는 재생과 멈춤을 위한 단 한 개의 버튼 밖에는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 제품의 대상이 맹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개발취지인 것입니다. 회사 연구팀의 조사 결과, 사람들은 노래의 종류보다는 소리의 크기나 부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 또는 구성진 정도에 더 큰 적선욕구를 느낀다고 밝혀져, 저희도 그 부분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일단은 제품 소개를 먼저 드리고 그 후에 질문 받는 시간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구걸맹인을 위한 음악재생기는, 그 재생미디어를 기준으로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눠집니다. 편의상 1형, 2형, 3형이라고 하겠습니다.제 1형은 주로 나이 많은 구걸맹인층을 대상으로 개발된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로서, 오토리버스와 구간무한반복 기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오토리버스는 계속되는 지하철 구걸을 위해 맹인들에게 필수인 기능이구요, 구간무한반복은 사람이 많은 토요일 오후 같은 때에 계속되는 반복재생으로 호소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탑재되었습니다. 가장 기본기능만을 탑재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 2형은, 가장 무난한 매체인 씨디재생기입니다. 복음성가의 발달 및 보급으로 구걸활동에 좋은 씨디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아 저희 회사에서도 그 경향에 발맞춰 씨디 재생이 가능한 구걸 음악 재생기를 개발, 보급하게 되었습니다. 재생면이 따로 있는 매체의 특성과 맹인의 시력한계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제 2형은 탑 로딩, 그러니까 위에서 씨디를 꽂아 넣는 방식으로 개발되어 양쪽면 모두에 씨디를 읽을 수 있는 렌즈를 달았습니다. 보다 긴 재생시간과 깨끗한 음질로, 씨디재생기는 맹인구걸업계에 보다 호소력 짙은 음원을 제공해 새바람을 불러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3형은, 젊은 맹인이나 비맹인 가족을 동반한 맹인을 위해 개발된 엠피쓰리 재생기입니다. 이번 구걸맹인을 위한 음악재생기를 개발하면서 첨단 기술의 압박에 그렇게 많이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보다 더 먼 구걸업계의 미래를 바라보는 자세로 개발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경영진을 자극, 이렇게 엠피쓰리 재생기를 개발해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2기가의 내부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고, 에스디카드로 16기가까지 확장이 가능하여, 무한반복기능조차 필요 없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고 다른 노래를 재생하며 이 노선, 저 노선에 걸쳐가며 구걸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저희가 기본 메모리에 저작권 협의를 마친 필수 복음성가 500곡 전집을 탑재해 놓았구요, 여태 엠피쓰리 재생기처럼 컴퓨터에 연결해서 노래 및 목록 관리도 가능합니다. 최신 매체에 익숙한 젊은 맹인층이나, 도와줄 비맹인 가족이 있는 맹인들에게는 매력적인 제품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 밖에 세 유형의 제품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튼튼한 연결고리와 길이 조절이 쉽게 가능한 가죽끈: 지금까지 역과 거리를 오가면서 땀에 절어 끊어진 목걸이 끈이 얼마였는지요? 제조단가는 좀 올라갔지만, 이번에 개발한 재생기에는 땀 흡수 방지 코팅이 된 소가죽에, 목에 닿는 부분에 쿠션층을 넣은 가죽끈을 기본 장착하여 장거리 구걸에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2. 성경 및 목사님 복음 설교 음역대에 더 잘 맞는 음향설계: 한마디로 고음역에 특화된 음향설계입니다. 기독교 맹인과 불교 맹인의 비율이 98:2 인 현실에서, 다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개발하는 것이 바로 개발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교 맹인도 얼마든지 사용가능합니다만, 저음 재생이 그다지 묵직하게 되지는 않는 단점은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3. 재생기 감지센서: 만원 3호선 한 가운데에서, 구걸하던 두 맹인이 마주쳐 서로 보지는 못하지만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동업종 종사자간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이번에 개발된 재생기에는 다른 재생기를 감지하는 센서가 달려있습니다. 예를 들어 1형을 가진 맹인이 수서방면에서, 3형을 가진 맹인이 종로 3가 방면에서 걸어 오면서, 물론 같은 전철이겠지요, 구걸을 한다면, 적어도 세 칸 앞에서 두 재생기가 서로를 감지하고 신호를 보냄으로써, 다른 재생기가 가까이 다가옴을 소리로 듣기 전에 알려줍니다. 이 음성신호를 감지한 맹인이 만약에 다른 맹인을 마주치고 싶지 않을 경우, 다음 역에서 내려 반대노선으로 갈아타거나 하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4. 내장 충전지: 이제 커다란 9볼트 건전지를 테이프로 둘둘 감아 붙여 달고 다니는 일이 없도록, 이번에 개발된 재생기에는 충전지가 내장되어, 전원이 있는 곳 어디라면 충전이 가능해 구걸활동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막 새 모델들이 공개되었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보다 먼 구걸업계의 미래를 바라보는 저희 회사이니만큼, 차세대 모델들의 기본 계획은 벌써 윤곽이 잡혀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일체 또는 탈부착이 가능한 돈바구니가 달려, 도난방지센서가 함께 부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태껏 얼마나 많은 구걸맹인들이 멀쩡한 사람들로부터 바구니에 담긴 돈을 뺏기거나, 천원짜리를 내고 치사하게 구백하고도 오십원을 거슬러가는 행태에 시달렸는지, 그 눈물겨운 사례는 일일이 열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더 이상의 손실을 막고자, 차세대 모델에는 도난방지센서의 부착을 목표로 삼고 제품개발 중에 있사오니, 볼 수 있고 또 없는 분들의 이번과 같은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제품에 대한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 by bluexmas | 2009/10/06 11:58 | — | 트랙백 | 덧글(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