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길거리에서 산 오 천원짜리 모자티
고등학교 때는 정말 심각하게, 빛을 안 보고 백일동안 갇혀 쑥과 마늘을 먹으면 나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물론 살찐 사람을 사람 아닌 존재로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데, 나도 좀 보통체격의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특히나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소위 말하는 ‘보세 옷’을 사 입기. 초등학교 때에도 아동복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뱅뱅이나 브렌따노 등등의 어른 캐주얼의 큰 치수 옷을 사서 입었던 나는, 정말 하나의 치수만으로 나온, 상표가 없는 옷가게의 옷들을 입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그 뒤로 10년도 더 지나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허리에 맞는 바지를 사서 거의 반 정도의 기장을 잘라내는 아픔 따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아마 바지를 두 벌 정도 사면 남는 감으로 한 벌의 바지를 더 만들 수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지난 주엔가 홍대 앞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 모자티(‘후디’ 라고 불러야 하나?)를 샀다. 가격은 무려 오 천원. 옛날의 아픔이 있어서 요즘도 치수가 안 나와있고 입어볼 수 없는 옷은 사기를 꺼리는 편인데, 어째 맞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오 천원이라면 눈 딱 감고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모자티를 하나 정도 사려고,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보고 다녔던 참이었다. 잘 어울리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집에 들어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어봤는데, 맞았고, 무려 크기까지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보세옷이 몸에 맞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 by bluexmas | 2009/09/18 16:55 | Life | 트랙백 | 덧글(10)
비공개 덧글입니다.
참, 저는 배에 타이어를 두르고 있어요…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