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2009 시즌 개막전 관람기(테네시 대 피츠버그)

공교롭게도 한때 외화를 바쳤던 학교의 경기가 같은 시간에 열려, 야구까지 세 경기를 한꺼번에 보느라 작은 부분들을 많이 놓치기는 했지만, 흐름을 보니 테네시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야구보다 미식축구에서 승기(momentum)이 더 중요한데, 한 번 이 승기가 흘러가는 걸 보고 있으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정말 되돌리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의 경기가 그랬다.

무엇보다 피츠버그는 그네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러쉬를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윌리 파커가 개죽쑤는 광경을 계속 보면서, 제롬 베티스 이후로 제대로 된 파워 백을 들이지 못해서 이들의 러닝 경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뭐 미식축구 전문가가 아니라도 경기를 계속 봤으면 느낄 수 있는 것이므로 큰 의미가 없기는 하다.

어쨌든 그렇게 기울어진다고 생각했던 경기가 마지막 쿼터 중반에서 슬슬 균형을 찾고, 결국 피츠버그 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한 두 선수가 돋보이는 게 아닌, 정말 하나의 유기체로서 인식이 되는 경기를 펼치는 건 피츠버그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렇게 승기를 거의 다 가져온 마당에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  하인즈 워드가 욕심을 부려 골라인 5야드 앞에서 사고친 것을 극복하고 결국 이기는 것을 보고 나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점수나 기록으로 봐서도, 또 정말 실시간으로 봐서도 그다지 재미없는 경기이기는 했지만, 이런 경기가 정말 미식축구스러운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압도와 압도를 거듭해서 밀리고 또 밀리다가, 작은 실마리 하나를 찾아 풀어나가 승기를 거머쥐는 경기. 그래 이 맛이야! 라고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면 너무 다시다스러워질 것 같아서 그냥 입닥치고 끝까지 봤지만, 전년도 수퍼볼 우승팀과 그에 못지 않게 폭력적이고 끈끈한 팀을 데려다가 맞붙였을 때에 볼 수 있는, 개막전으로 아무런 손색이 없는 훌륭한 경기였다.

뭐 이건 굳이 내가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쿼터백으로서 벤 로스리스버거가 진화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정말 흥미진진하다. 벌써 수퍼볼 두 번 우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 같이 러쉬가 안 먹히는 날 패스를 사십 번 넘게 시도할 수 있는 쿼터백이 되었다는 건… 팀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인식되는 경기를 한다고 언급했지만, 그런 가운데에 늘 눈에 띄는 세이프티 트로이 폴라말루가 부상당해 결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다음 주 시카고와의 경기도 재미있을 것 같다(트레이드 된 쿼터백 제이 커틀러와 피츠버그의 수비, 특히 패스 러시 또는 브라이언 얼랙커와 벤 로스리스버거의 패스 안 하고 오래 버티기 신공 등등…). 오늘도 부상당하기 전까지 정말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개막전부터 부상이라니 아쉽다.

 by bluexmas | 2009/09/11 23:47 | Sports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