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이라는 말

점심 전에 어머니에게 문자를 날려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바로 옆에 사는데 일주일에 한 번도 밥을 같이 안 먹으면 내가 자식이 아니겠지. 그런데 어머니가 전화를 하셔서는 일 끝나고 어디를 갔다 오셔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저녁이 늦어져서 같이 먹기 그렇지 않겠냐고… 그래서 어차피 점심에 밥을 저녁 먹을 것까지 해 놓았겠다, 그냥 간만에 돼지 목살이나 구워 먹을까… 생각하면서 장을 보러 나가는데 또 전화를 하셔서는 일곱시 좀 넘으면 돌아오실테니 밖에 나가서 같이 먹자신다. 그래도 아들이 밥 같이 먹자고 전화했는데 못 먹는다고 그랬더니 섭섭하다면서. 뭐 그렇게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구만…

어쨌든, 일요일 아침에 장을 같이 보러 가기로 정하기는 했지만 나는 또 당장에 먹을게 없어서 시장까지 걸어가서 오이와 토마토, 애호박 등등을 샀다. 사실 오늘은 장까지 가는게 좀 귀찮았는데 묵을 쑤어가지고 오는 가는 귀 먹은 할머니는 ‘주일’ 이면 안 나오신다고 해서… 할머니의 묵도 맛있지만 직접 뜨신다는 청국장을 맛보고 싶었으므로 부러 장까지 걸어갔다. 나오는 길에는 들어간 쪽과 다른 쪽 입구 어귀에 있는 아주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한테 깍지채 있는 완두콩을 이천원어치 샀는데, 일부러 나이 드신 분한테 샀음에도 양은 다른 데에서 파는 것만큼은 아니었던 듯… 어쨌든, 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러 오징어를 샀는데, 한 마리씩은 팔지 않아서, 그냥 두 마리를 사서는 시장에서 산 야채들과 함께 나눠 담았다.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 시간 맞춰 어머니가 데리러 오셨는데 또 어머니는 오시면서 오이 소박이와 딸기를 가져 오셨고. 뭐 이렇게 나눠 먹으며 산다.

저녁으로는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이 샤브샤브라는게 누군가가 계속 재료를 끓는 국물에 넣고 또 건져야 되는게 아니었던가… 나는 사실 혼자 사면서 이런 음식을 별로 먹은 일이 없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국물이 끓기 시작하니 아, 이걸 내가 챙겨드려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료 넣고, 건져서 나눠 드리고… 그러다 보니 뭔가 행동을 취하실 듯 하다가 그냥 계속 받아서 드신다. 언제 와서 점심으로 드셨다던데, 그동안 두 분이서 어떤 기분으로 이런 걸 드셨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좀 그랬다. 물론 두 양반이 아주 나이를 많이 드셔서 이렇게 꼭 챙겨 드려야만 드시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라는게 그렇지 않았을까, 다들 가족들끼리 와서 먹을텐데.

어쨌든 그렇게 저녁을 먹고, 새벽 세시 반 부터 일어나셔서 어디엔가 보내는 원고를 쓰셨다는 아버지를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고, 나와 어머니는 두 양반이 사시는 단지를 잠깐 돌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기를 했더라? 어머니는 또 그러셨다. 일생에 언제 우리가 이렇게 살 기회가 있겠니. 다른 자식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이게 뭐랄까 해외 여행이라면, 복권 당첨이라면, 아니면 기타 등등 살면서 흔하지 않은, 또는 아예 찾아오지도 않는 그런 기회나 행사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라 자식이랑 왕래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건데, 어째 이게 일생을 들먹이면서 사람을 고프게 만드는, 일상보다 흔하지 않은 무엇이 되어버렸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치 손에 거의 다 타고 얼마 남지 않은 촛불을 들고 깨끔발로 걷는 듯한 기분이다. 바람은 언제나 거세게 불고, 촛불은 곧 스러질 듯 희미하고, 뜨거운 촛농은 떨어지고, 다리는 저려온다. 그래도 계속 걸어야만 하고 어쨌거나 촛불은 꺼진다고 하고. 그럼 슬퍼해야만 하는 건가, 나.

 by bluexmas | 2009/05/22 22:27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