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심장
병원
내가 가지고 있는 병원에 대한 기억의 원형prototype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비롯되었다. 때때로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외삼촌을 문병가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의 일이었다. 중동붐이 일었던 그 때, 외삼촌도 그곳에 가셨다가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해서 돌아오셔야만 했다. 타이어가 나가서 차를 갓길에 세웠는데 그걸 미친 듯이 빨리 달리던 다른 차가 들이받았다고 들었다. 그 탓에 외삼촌은 거의 돌아가실뻔 했고, 오랫동안 병원에 머무르셔야만 했다.
지금도 돌아보면 내가 왜 어머니를 따라서 병원에 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면회제한 연령보다 어려서 사실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어머니는 나를 어딘가 두고 혼자 외삼촌을 만날 수 없었으므로, 누군가를 따라 비밀스러운 냄새가 나는 복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가곤 했다. 병원이니까 그 특유의 병원 냄새는 기본이었고, 거기에 어두컴컴함까지 합쳐져 그 복도를 지나치는 건 어린이였던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거기에다가 어머니와 나는 늘 뛰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어딘지도 모를 구역을 빠져나가면, 병원 1층의 인공신장실이 나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그 간판이 정말 어찌나 컸던지 지금까지도 기억에 선하다. 그 모든게 아직도 무섭게 느껴진다.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던 외삼촌을 둘러싸고 울음바다를 이뤘던 외가친척들과 오랫동안 자리보전을 하셔야 했던 외삼촌, 몰래 가는 문병, 어두컴컴한 복도와 달리기, 인공신장실, 그 모두가.
심장
쓰려고 생각해보니 또 외가 얘기다. 외할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막내 이모를 버스 정류장에 바래주러 나가셨다가 무슨 일로 정류장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신 끝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그때의 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나보다 세살 많았던, 사촌들의 맏이였던 누나는 장례가 치뤄지던 어느 날 밤, 사촌동생들을 모두 이끌고 어두컴컴한 고개를 넘어 내 친할아버지댁에 갔던 기억이 났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듣기 민망하게 외할아버지가 손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예뻐하셨다고 가끔 말씀하신다. 저놈이 손자들 가운데 가장 크게 될 것 같다고… 그러나 나는 뭐 지극히 소시민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며, 그때 당시의 일은 기억에 전혀 없다. 당신께서 더 오랫동안 사셨다면 어째 좀 죄송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애초에 크게 되는 건 바래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어서.
점심을 먹고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초음파라면 늘 임산부와 신생아, 이런 것들이 생각나기 때문에 나는 병원에 간다고 팀사람들에게 말하면서, 혹시 임신한 것으로 밝혀지면 나 혼자 아이는 또 어떻게 키우고 사냐고 농담을 했다. 가뜩이나 프로젝트도 없어서 다들 노는 판국인데… 병원엔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이 노인들이어서 기분이 좀 이상했다. 언제나 귀찮은 행정절차를 거친 다음, 웃통을 벗고 침대에 누웠고, 그렇게 매체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초음파 검사가 이루어졌다. 뭐 기분이 똑같을리는 없겠지만, 심장 판막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노라니 이게 대체 그런 기분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기사격인 여자는 서른 장 정도 되는 사진을 찍고 젤리로 범벅이 된 내 상체를 대강 문질러 닦아 준 다음 검사 결과는 내 ‘주치의’ 에게 통보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여자가 나가고 셔츠를 다시 뒤집어 썼는데, 채 닦아내지 않은 목께의 젤리가 불쾌한 느낌을 선사했다. 어제도 미친 듯이 빨리 달리기를 했는데도 죽지 않은 걸 보면 심장에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분은 참 야릇하게 이상했다. 96년이었나, 군에 있을때 여러가지 문제로 군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받았었는데, 그때도 나의 몸이 이런 검사까지 필요로 하는걸까, 라는 생각에 약간 착잡했었는데, 어째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 도와주는 팀이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자리를 비우고 나니 기분이 좀 그래서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수퍼마켓에 들러 쿠키를 샀다. 생각해보니 마감은 없지만 우리 팀에도 사가야만 할 것 같아서 그것도 함께.
# by bluexmas | 2008/12/17 10:03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