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시간
가끔은, 그냥 멍하게 서서 바라보고만 있을 때가 있다,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핥는다. 해가 가장 긴 날 조차도 빛의 혀는 짧아서, 넓고 넓은 집의 공간 구석구석을 핥아주지는 못한다. 창 밖을 내다보면 가끔, 빛이 혀를 조금이라도 더 내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광경을 목격할 때도 있다. 그는 얼굴을 온통 찡그리고 있다. 그럴때면 나는 그냥 모른 척 다시 집 안의 공간 어딘가로 눈을 돌린다.
드물게 눈에 담는 빛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찾아오면 내 집, 내 공간에 있으면서도 나를 지워야만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그렇게 짧은 순간 동안이나마 머물렀다가 갔던 빛이 아예 오지도 않을테고, 또 그러면 주인이 잘 머무르지 못하는 집이 더더욱 을씨년스러운 공간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이런 시간이면, 숨을 죽이고 그냥 바라만 보게 된다. 느릿느릿, 그 짧은 혀가 나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다. 어디에선가,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공간이 오랜 시간동안 가슴 속에 묵혀만 두었던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눈은 풀려있고 입은 반쯤 벌리거나 또 다문 채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가슴 속에만 묵여두었던 두꺼운 한숨이 꾸물꾸물 흘러나온다. 그럴 때면 귀는 막지 못해도 눈은 좀 감아야만 할 것 같다. 속해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시간과 공간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 by bluexmas | 2008/12/14 20:28 | — | 트랙백 | 덧글(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