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어제와 그제, 정말 미친 듯이 비가 왔다. 비가 오지만 또 춥지도 않고 습도는 80 퍼센트가 넘는, 아침 여덟시에도 저녁 여섯 시 같고, 저녁 여섯 시에는 더 저녁 여섯 시 같은 그런 컴컴한 날씨, 전형적인 아틀란타의 겨울. 아침에 머리를 말려 놓고 나면 알게 된다. 오늘 날씨가 어떻다는 것을, 또 차는 어느 정도 막히리라는 것을. 어제는 출근하는데 한 시간 사십 오 분이 걸렸다. 거기에다가 끈적거리는 기억이 있으면 더 괴롭다. 그렇게 끈적끈적한 날씨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 덕분에 막히는 차 안에 혼자 앉아있다 보면 그 끈적끈적거리는 기억들이 김치 담글때 쓰려고 쑤는 밀가루풀이 끓어서 거품 오르듯 꿀럭꿀럭 피어오르니까. 그러니까 너는 왜…?
어쨌든 그렇게 비가 오고 나면 다시 추워진다. 차라리 추운게 낫다. 눅눅하지는 않으니까. M선배가 휴가를 떠나고 없어서 오늘도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웠더니 시간이 많이 남아서, 내일 쓸 블랙베리와 블루베리를 사러 수퍼마켓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서걱거리는 바람이 할퀴듯 불어 오고 또 갔다. M선배가 없으면 나는 회사에서 우리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된다. 얘기할 사람이 없어진다. 그러나 상관없다.
일이 없어서 다른 팀 모형 만드는 걸 도와주는데, 네 시에 일을 접고 볼링을 치러간다고 전화가 왔다. 요즘은 회사에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 빼놓고는… 다른 회사들 사정이 안 좋다, 안 좋다 하는데, 그 바람이 드디어 우리에게도 불어닥쳤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겐 일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가 없다. 걱정되냐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건 이제 걱정 안 하고 산다. 언제 어떻게 죽을까 걱정 안 하는 것과 똑같다. 지금 이런 식으로 산다면 병으로 죽는 일은 없을테니까 길 가다 차에 치어 죽는다거나 어딘가 걸어가는데 위에서 유리창이 떨어져서 두개골이 박살나 죽는 것과 같은 상황은 사서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죽게 되면 그때는 그냥 죽는거다. 그렇게 죽어서 억울하다는 생각은 죽어서 하면 된다. 살아서는 할 필요가 없다.
M선배는 가고 없지만 쌀국수는 먹어줘야 금요일이 금요일일 것 같아서 운동을 간단하게 접고 쌀국수집에 들렀다. 손님이 없으면 국물이 미칠 듯이 진해지는 것이 이 집의 특성이다. 물론 화학조미료도 한 몫 단단히 한다. 국물이 떠 넣을때는 액체지만 입에 넣으면 젤리처럼 변해서 목구멍을 쑤욱 훑으며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집의 쌀국수는 고기로 사람을 잡는다. 몇 젓가락 먹다 보면 국수는 없어지고 고기만 남는다. 저녁을 그렇게 먹으니 커피도 마셔줘야만 될 것 같아서 늘 아침에 들르는 커피집에 문 닫기 직전에 들렀다. 사진 두 장을 찍는 동안에 에스프레소가 식었다. 그래도 아직 금요일을 향한 내 마음은 식지 않았으니 상관없다.
내일은 회사 연말 파티가 있는데, 안 간다. 주말에 정장입고 시내까지 내려가서는 늘 보는 얼굴들 앞에서 영어 쓰기 귀찮다. 누가 뭐래도 이렇게 사는 길 말고 다른 길을 택하기엔 애초에 글러먹은 인간이 나인 것을, 어쩌겠나. 그냥 집에서 나 혼자 파티하련다.
# by bluexmas | 2008/12/13 15:04 | Life | 트랙백 | 덧글(6)
근데 받침 오른쪽에 이가 살짝 나간듯한..;?
급기야 쌀국수까지 해드셨나!!!
흥분했지 뭡니까.
전 내일 시간이 허락하면 진저브래드 맨을 구울까 생각 중이어요!
starla님: 아, 지금 계속 고민중이에요, 음식 오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한 번 쯤 해 먹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어렵지는 않은데 그 맛이 날지 알 수가 없어서요.
turtle님: 베리가 넘쳐나는 용암을 만들 일이 있었거든요(시제가 과거인 이유는 벌써 만들었다는?). 곧 블로그에 올릴께요. 생 블루베리로 머핀을 만들어봤는데, 너무 물러져서 머핀 속이 죽처럼 질척거리더라구요. 냉동이 나을 듯…
생강빵 종류는 가루 생각이 훨씬 낫다고 그러더라구요. 블로그 어딘가에 레시피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