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숲
여느 해 보다도 더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되던 그 해 봄, 4월, 그와 나는 그렇게 몇 년 동안 살았던 그곳보다 한층 더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과 같은 마음을 끌어안은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의 뒤에 서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단 한 대 밖에 없었으니까… 돌아볼 생각도 없었고, 내 눈 앞에 들어서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 역시 그렇게 반사도가 뛰어난 재질은 아니어서 나는 그가 내 뒤에 서 있었을 것이라는 정도 말고는 넘겨짚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곧 엘리베이터가 멈춰섰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채 몸을 싣고는 문이 닫히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 한 번 정도는 돌아보고 인사라도 건네야 되는 건 아닐까 망설였다. 그런 내 망설임이 긍정의 손을 잡아 끌고 온 그 순간, 돌아보려 했지만 등 뒤로 부는 바람을 느끼고는 그렇게 돌아선 채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몇 번이나 버튼을 누른 덕분에 문은 숨을 한 번 들이 쉴 정도의 짧은 찰나만큼 빨리 닫혔고, 그렇게 들이 쉰 숨을 다시 내쉬었을 때 나는 그 숨에 잘 지내라, 라는 예의에 불과한 마지막 인사를 던졌다. 그러나 입을 움직이는 나 조차도 무슨 말이 흘러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바람은 타인의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내가 등을 돌리고 서 있던 그렇게 길지 않았던 그 순간, 그는 숲으로 떠나고 있었다.아니면 내가 등을 돌린 사이에 그를 그 속에다 밀어 넣었든지.
고등학교 동창인데다가 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전공을 택했던 탓에 십 여년도 넘게 관계를 유지했던 친구 J는 사실 1993년 말부터 근 십 년 동안을 숲에 들락거렸었다. 물론 그가 스스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은 아니었고, 나 혼자 생각 속에서 서양 장기 말을 옮기듯 그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10년도 더 지난 2004년, 오랫만에 서울을 찾아 그것보다 더 오랫만에 그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던 분위기는 그 혼자 나의 두 배도 넘게 취했던 3차에 가서 개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니, 사실 나는 전혀 개박살이 나지 않았는데 그가 스스로를 계속해서 부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근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강도의 주사를 부렸고, 나는 참다못해 그를 그 자리에 놓아둔 채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새벽 세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다음 날, 그는 전화를 해서 나에게 이런저런 변명과 함께 사과를 했지만, 그는 밤새 그 숲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래 나중에 또 보자, 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그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돌아보면 언젠가는 타인의 숲이라는게 정말 있었던가, 싶다. 숟가락으로 떠서 종이컵에 담아둔 흙 만큼의 양으로 마음의 어두운 그늘 어딘가에서 잠복기를 거치고 있었겠지…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이라는 것을 한다는 명분 아래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인간관계에 노출되면서 그 숨어있던 숲은 블랙홀처럼 그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세를 불려도 모자르다고, 더 이상 사람을 들일 수 없다고, 숲 전체가 몸으로 울어대는 통에 잠을 설치는 날들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다. 요즘은 사람을 타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는 과정이 마치 병아리 감별처럼 빠르게 이루어지고, 그 짧은 순간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숲으로 던져지고 만다. 처음 숲이 그 세를 확장할 때만 해도 모두가 발에 땅을 디디고 서 있을 수는 있었는데, 이제 쌓이는 사람들은 땅을 밟기는 커녕 남의 머리를 밟고 서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만들어 서 있다가, 가끔은 기다리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운지 줄 밖으로 뛰쳐나와서는 내 뺨을 사정없이 갈긴다. 그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쇠로 문을 열어 주고, 그들은 뒤조차 돌아보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는 타인으로 감별당한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아래에서 위로는 비온 뒤 죽순처럼 증오가 무럭무럭 자라 올라간다. 너무나도 빨리 자라 때로는 동물처럼 느껴지는 증오는 그 뾰족한 끝으로 쌓여있는 사람들을 뚫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그렇게 뚫인 사람들의 피는 자기들로 해를 가려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숲 바닥의 풀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오늘 따라 흐르는 빨간 피와 그 피를 머금고 자라는 푸른 풀들의 색깔 대비가 한층 더 두드러져 보인다.
# by bluexmas | 2008/12/09 12:50 | —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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