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공원의 햇살
사실 화를 낼 대상조차도 별로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말고 살자고 늘 다짐을 하지만, 막상 뭔가 일이 터져 저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는 집요하고 냉소적인 나를 끄집어내어 목줄을 풀어놓고 나면, 반드시 뒤에는 후회가 남는다.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러나 말은 주워담을 수 없고 후회는 참 빨리도 찾아온다. 때로는 그런 순간에 확 올랐던 열이 채 식기도 전에.
품고 사는 많은 기억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정말 품어보겠다는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고, 또 품을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가지를 쳐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뭐랄까, 크리스마스에 쓸 수 있는 침엽수와 같은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냥 모른척 품고 살자면 어떻게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기검열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지를 모두 쳐 내버리고 바늘처럼 뾰족한 잎사귀 하나, 둘 정도만을 남겼다. 그건 작년 늦가을 공원의 기억이었다. 그 동네에서 학교를 3년 다니고, 또 회사를 3년 다녔음에도 걸어서 일, 이십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공원에 나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 곳엔 넓은 잔디 구릉과 바람, 그리고 오후의 햇살이 있었다. 그래서 그 햇살만 가슴에 품고 살겠다고, 그렇게 써서 보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일을 자꾸 만들면 안 되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행사처럼 치뤄내는 감기처럼 그런 일들은 잊지 않고 찾아오기 마련이다.
# by bluexmas | 2008/12/05 11:19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