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번이나 쓰려고 했다가 쓰고 싶었던 다른 것들 때문에 쓰지 못했던 글,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써야만 할 것 같다.
몇 주 전 아침이었다. 어찌해서 아이팟을 틀지 못하고 온갖 저질 농담-사실은 좋아하는-_-;;;-이 넘쳐나는 라디오 토크쇼를 들으면서 출근하고 있었는데, 마침 사람들의 전화를 받아서 어떤 대통령 후보를 찍을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묻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정치 관련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춰놓았었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날은 스트리퍼 전화를 받아서 같이 낄낄대고, 또 다른 날은 코미디언 전화도 받아서 낄낄대는, 그렇고 그런 락 음악 전문 방송국의 아침 토크쇼였다. 어쨌든, 자신을 두 십대 딸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남부 억양 걸쭉한 여자가 전화를 했는데, 자기 큰 딸이 다음 달에 뉴욕으로 떠나는데 자기는 아직도 이 나라가 안전한지 알 수 없으므로 매케인을 찍겠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뭐 누구를 찍든 투표권도 없을 뿐더러 세금만 꼬박꼬박 내지 완전히 다른 나라 사람, 그리고 이방인인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물론 여기에서는 미국)가 안전한지 안심이 안 된다’ 가 바로 ‘매케인 지지’ 로 연결되는지는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라디오가 너무 짜증나서 곧 꺼버리고 차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무 테입이나 주워 틀어놓고 출근하면서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그 전제와 결론 사이에 적어도 너덧단계는 존재해야만 했을 것 같은, 끊어진 논리의 연결고리를 나는 쉽게 생각해낼 수 없었다. 결국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그게 그냥 비약이라고 결론 내려버렸다. 그리고는 마음이 곧 편해졌다.
어찌어찌해서 거의 대부분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보게 되었다, 부통령 후보들 것도 역시. 처음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발견하고서는 대체 이 나라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알고 싶어서라도 채널을 고정시켜놓고 보게 되었다. 나는 어차피 비영어권나라 사람이고, 영어라면 계속 배우고 있으니까 정책이고 뭐고 아무 것도 몰라도 그냥 보고듣고 있으면 뭐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찾아서 보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부통령 후보들 토론회는… 사라 페일린 귀걸이가 계속해서 달랑거리는게 짜증나서 보다가 돌려버렸다. 듣기로는 페일린을 가꾸는데 돈이 꽤나 깨졌다는데, 분명히 가장 비싸게 살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나 컨설턴트를 사서 맡겼을텐데 어찌해서 시선과 신경이 분산되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귀걸이를 달도록 권했는지 나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보아왔던 페일린의 스타일은, 정치인이라는게 고정된 그래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게 중요하므로 당연히 같은 분위기를 고수해왔겠지만, 옆머리를 귀 뒤로 돌려 반만 묶은 머리에 무테안경, 그리고 달랑거리는 종류의 귀걸이였다. 토론회처럼 계속해서 얼굴만을 가까이에서 카메라로 비추게 되는 환경에서 반짝거리는 안경에 또 광이 반짝반짝 나는 얼굴에 또 머리에 조금이라도 얼굴을 많이 움직이면 쉴새없이 달랑거리는 귀걸이, 그리고 거기에다가 조금도 쉴틈도 거리낌도 없는 행동과 말투…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어서 그런지, 나는 페일린이 말하는 걸 10분 이상 앉아서 들을 수가 없었고 그건 그녀의 말투나 행동, 뭐 이런 것들 보다는 쉬어갈 수 있는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미지 메이킹 때문이었다. 피곤하다구, 특히 귀걸이… 내내 뭐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터뷰하게 되는 학생들에게조차도 가장 기본적으로 권하는 귀걸이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진주귀걸이 뭐 이런 것 아니었나? 아니면 그런 세월이 지나버린건지도…
어쨌든, 삼천포 아니 페일린 귀걸이로 빠졌던 얘기를 다시 돌리자면 그렇게 몇 번의 토론회를 보고 난 다음 나는, 정책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이해도 못한다고 가정했을때, 과연 저 토론회에서 얘기하는 것만 보고 매케인 찍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으며, 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하게 될까 정말 궁금해졌다. 뭐랄까, 그냥 어느 동네 하원의원정도다, 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가, 그것도 자기들이 제일 잘났다는 자세로만 살아가는 이 나라 미국의 대통령후보가 그 정도의 분위기(..뭐랄까, ‘뽀대’ 라고 하기엔 대통령 후보에게 너무 굴욕을 안기는 것만 같아서-_-;;;)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먹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기나 뭐 이런 것들을 죽어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나에게는 대통령 아우라 따위를 가진 사람으로는 절대 안 보였다고나 할까…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부터 말투, 말하는 내용 뭐 이런 것 등등… 한 열 살 정도 젊었다면 이것보다는 나았겠지만 이건 지난 8년간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고서도 욕심은 남아서 재집권하려는 정당이 자신있게 내밀만한 카드는, 적어도 뽀대면에서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대통령을 뽀대로 뽑는 것은 절대절대 아니겠지만(또 그래서도 안 되고), 정치의 많은 부분이 결국 인기에 바탕을 둔 표에서 힘을 얻는다는 걸 현실로 가정할때 이 카드는 전혀 아니올시다, 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거기에다가 페일린은… 으음.
두 번째 토론회였나, 두 후보가 가운데에 앉고 주위에 질문할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싼채로 진행되었던… 토론 중간 어느 순간엔가 매케인이 답변을 하는데 그 뒤에 비춰진 오바마가 눈에 뜨일 정도의 측은함을 품은 얼굴로 매케인을 바라보던 장면이 기억난다. 토론 와중에 직접 본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사진을 보게 된 것인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나에겐 ‘참 노인네 안쓰럽네’ 와 같은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 두 후보, 상대방이 말하는 차례에 서로 바라보는 그 표정을 읽는 것만으로도 섣부르게나마 아, 저사람 어떤 사람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메케인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음식관련 작가 Micheal Ruhlman은 어제 자신의 블로그에다가 오바마에게 투표하자는 글을 올렸고, 그 덕분에 언제나 적정 수준의 북적거림이 있었던 블로그는 보통때보다 조금 더 북적거리고 있다. 뭐 나는 오바마가 좋으니 너 글 잘 올렸다, 와 그 반대로 나는 매케인, 그러니까 너는 개##와 같은 종류의 덧글보다는 아니 음식블로그 꾸려나가면서 음식 얘기나 하지 정치 얘기는 왜 하고 지#이냐와 같은 반응이 지배적인 것을 보면서, 나 역시 블로그에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하다. 정말 사람들은 매케인을 찍고 싶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믿도록 만드는 걸까… 그런 종류의 믿음에는 분명히 근거가 있어야만 하는데 뭔가 정책에 대한 세부사항도 언급하지 않은채 ‘나 경험 많으니까 되면 잘 할 자신 있다’ 라고만 계속해서 말하는 사람에게 표를 줄 정도라면 정말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할텐데 나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답답했다.
# by bluexmas | 2008/11/04 14:58 | Life | 트랙백 | 덧글(5)
비공개 덧글입니다.
j님: 그게 그러니까 미국에서 컨설팅회사 같은데서 생각해서 만든 이미지겠죠. 미국에서 살아서 그런 이미지에 낯익은 저조차도 참 보기 그렇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