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금요일

어제 정말 너무 일을 딴 생각과 같이 해서 오늘은 그러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회사에 갔다. 그래서 어제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뭔가 신나는 느낌이 없었다. 아무래도 일이 별로 재미없는 모양이다. 결국 오후로 접어들면서 어제같이 심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마음의 상황이 전개되었고 퇴근 시간을 30분 넘기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도 지끈거렸지만 무엇보다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그 모든 살들을 다 잃고 난 뒤에 오래 앉아있으면 그 시절보다 엉덩이가 더 아픈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도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나 다리는 멀쩡한데 엉덩이의 모든 살이 의자에 닳아 없어지고 뼈를 바닥에 비벼대는 듯한 느낌이 찾아온다. 결국 엉덩이가 아프다는 핑게로 퇴근시간 30분을 넘겨 퇴근.

그냥 여러가지 일로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운동이고 뭐고 다 접고 빨리 가버릴까, 라는 유혹을 계속해서 느꼈지만 달리기만큼은 거르면 정말 안 될 것 같아 학교 체육관에 가서 정말 꾸역꾸역 달리기를 하는데 마지막 2km를 남겨주고 아이팟의 전지가 다 닳아서 그만큼을 음악없이 달려야만 했다. 대신 숨소리로 박자를 맞췄다.  달리기가 끝나고는 맥주 딱 한 병만, 이라는 마음으로 바에 찾아갔는데 정말 맥주 한 병만 마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가슴에 이름을 쓴 스티커를 붙인 걸로 보아 무슨 파티를 하는 모양인데 정말 너무 시끄러워서 맥주를 눈에다 부어대고 있는지도 몰랐다. 맥주투성이인 얼굴을 얼른 훔쳐내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은, 어제 유혹에 못 이겨 샀던 삼겹살을 구웠는데 점심에도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요즘 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 것도 같았다. 삽겹살에 진판델은 어떨까, 싶어 지난 주에 여섯병 살 때 한 병 묻어 온, 그리고 추천받은 9불짜리를 땄는데 한 모금 마시면 당장 뭔가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다가 갑자기 공허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기 위해 지어놓고 나간 밥을 먹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데우지도 않았더니 뭘 먹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고 올해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먹게 될 포도(포도와 포도주의 조합이라니… 계란을 푼 닭고기탕, 뭐 이런거랑 비슷할라나)를 를 먹고 일부러 가게에 들러 사온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는데도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결국 오늘 하루는 모든게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뭔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삶 자체가 그저 그런 느낌이 드는 그런 날이었다.

 by bluexmas | 2008/09/27 13:14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at 2008/09/27 19: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veryStevie at 2008/09/27 20:12 

한국에 계신다면 날씨탓이려니 그러겠는데( 한국은 꽤 추워졌거든요.. 근데 예쁜 가을날씨.. 쌀쌀한 가을바람에 강한 햇살, 저 그런날씨 좋아해요) 음 xmas님은 왜 feel blue하실까??!! 그저그런 금요일을 보내셨으니, 뭔가 refresh되는 주말을 보내셨으면 해요^^ 저는 오늘밤도 이력서 쓰기에 힘쓸려고요 지치지만 이미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좋은 주말 보내셔요

 Commented at 2008/09/28 15:1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0/01 13:51 

비공개 1님: 별 일은요… 늘 겪는 그저그런 감정의 산과 골짜기겠죠. 그나저나 잘 지내세요? 영국은 추울텐데 감기 조심하세요.

스티비님: 뭐 살다보면 기분이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고 그런거죠… 이력서 쓰면 누가 봐 주는 사람은 있나요? 내용도 그렇지만 디자인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거 봐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요.

비공개 2님: 그랬군요. 뭐 죄송까지… 분위기 시끌벅적해서 눈치는 채고 있었죠. 해장여행 혹독하게 치르고 돌아왔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행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