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현실
중앙역으로 향하는 다음 버스를 타기까지 남은 시간 십 여분,오로지 이거 하나를 보기 위해 바다를, 그리고 국경을 건너온 바로 그 건물 앞의 길거리에 앉아서 그 건물의 사진이 찍힌 엽서, 바로 그 건물에서 산 그 엽서를 꺼내 무릎위에 올려놓고 쓴다. 오늘은 이 건물을 보러 왔… 그래서 이 건물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사서 보내고픈 마음에 지금까지 오늘의 엽서를 안 보냈… 스케치북이라도 꺼내서 받치고 쓸 것을, 쓰다 말고 버스가 오면 바로 올라타려는, 아니면 버스가 오기 전까지 다 쓰려는 마음에 급하게 썼더니 글씨가 참으로 가관이다. 이거 이 따위로 글씨 써서 보내도 되는거야? 라는 머뭇거림을 마음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즐거움 반, 고통 반으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글씨가 엉망이어도 이건 아주 오랫만에 누군가에게 주는 기억의 켜 가장 안쪽의 것이니 이런 모습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기억으로 따져볼 때 이건 현실과 바로 그 살갗을 비비고 있는 종류의 것… 누가 문지방에 발을 올려놓고 그랬다지, 스님 제가 방에 들어올까요 아니면 나갈까요? 스님은 재주도 좋으셔서 날아다니던 새를 붙잡아서는 그랬다지, 스님 제가 이 새를 죽일까요 살릴까요… 뭐가 먼저였는지, 누가 시비를 걸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렇게 보러 온, 그래서 보고 있는 건물 앞에서 엽서를 쓰고 있을때는 현실에 조금 더 가깝지만, 5분 안쪽으로 다가올 버스에 막 발을 올려 놓으면 바로 기억으로 화하기 시작하는, 이 상태에서는 기억이고 현실이고 모두 까끌까끌해서 서로 그렇게 몸을 비벼대다가 많이 아프지는 않아도 짜증나는, 자질구레한 찰과상을 서로에게 입히는 그런 상태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벌써 존재하는 기억들에 둘러싸여 원래의 그것과는 어쩌면 전혀 다른 것처럼 내 의식속에 남게 될 것이 안 봐도 뻔한, 그런, 기억의 켜 속에서 가장 안쪽에 존재하는 기억… 기억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느 누구에게도 아주 오랜시간동안 선뜻 내밀어본 적이 없는 그런 기억. 엽서니까 봉투는 붙일 수 없어도 미리 사 둔 우표를 붙이면 봉투를 봉했을 때 그러하듯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들겠지. 여왕인지 누군지 자태부터 우아해보이는 귀부인이 그려진 8.75 덴마크 크로너짜리 우표의 뒷면에 침을 발라 풀을 녹이며 이해를 구하는 마음도 함께 녹여 넣는다. 언젠가부터 이해를 바랄께요, 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되어버린 것 같은 내 개인사인데 이렇게 나답지 않은 삐뚤빼뚤한 글씨의 엽서 한 장으로 이해를 바래도 될까, 내가 가장 나 다웠을 그 순간에도, 나를 홀랑 까뒤집어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던 어슴푸레한 기억의 그때 조차도 이해를… 이라는 말은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는 부탁처럼 어려웠던 것만 같은데, 하하.
# by bluexmas | 2008/09/02 06:56 | Travel | 트랙백 | 덧글(4)
실제로 보시니 어떻던가요? 이런 신기한 건물들은 안이 어떻게 생겼나 한 번 들어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