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금요일 일곱시를 조금 넘겨 퇴근하면서, 팀장과 함께 서로 웃으면서 낙천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에 뭐 다음 주면 좀 널널해지지 않을까나~’ 널널해지긴 개뿔… 전혀 예상치 못한 월요일 야근은 정말 뒷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선사하며 저녁시간을 의식의 생지옥으로 탈바꿈시킨다. 야근을 할거라고 미리 알았다면 주말에 잔뜩 만들어 놓은 뭔가라도 좀 더 가져다가 냉장고에 채워놨을텐데, 그냥 점심만 달랑 들고 왔더니 저녁은 배달피자로 때우는 수 밖에… 같이 일하는 세 명 모두 침울한 표정으로 피자를 집어 먹는다. 팀장은 어제도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는 일의 전체적인 짜임이나 흐름을 말 안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대체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되는지, 또 그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모른다. 내가 주말에 나와 일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같은 팀이라면 다 같이 집에 가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비슷한 시간대에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늘 한다. 아홉시쯤 퇴근을 하는데 그는 한 시간 정도 더 있어야 되지 않을까, 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같이 일하면서 파악한 바로는 아마 두 시간,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는 늘 일을 시켜도 ‘이거 오늘 해 주면 정말 좋고, 아니면 뭐…’ 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일을 오늘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정말 금방 알아차렸다. 시도때도 없이 땍땍거리고 재촉하는 사람들에게보다는 이런 사람들에게 더 일을 잘 해서 줘야 된다. 나는 자발적인 인간이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만 하니까. 누가 억지로 시킨 일을 마지못해 하고 퇴근하면 집에 와도 마음이 불편하다. 게다가 난 언제나 이런 사람과 일을 할 수 있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잔소리 안 하는 사람, 안 갈구는 사람… 그러니까 더 잘 해서 줘야 된다.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해지니까.
먼젓글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지금 하는 프로젝트는 너무 어렵다. 그러다보니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될 시간에 자꾸 생각을 하게 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테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제 그리다 만 그건 대체 어떻게 그려야 될까’ 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면 나의 삶이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무슨 일벌레도 아니고, 또 누구누구들처럼 일이 취미인 사람도 아니고… 이러는게 정신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요즘은 약간 통제가 안 되고 있다. 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까.좀 더 즐거운 일,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갑자기 생각해보려니.
하여간 오늘도 늦게 나온 탓에 체육관에는 가지 못했다. 억지로 몸을 잡아 끌었다면 갔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바람이라고는 한 줄기도 없는 실내에 있다가 또 공기조화가 되는 건물에 들어가서 운동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밤 열 한시에, 남들 다 자는데 집 앞을 뛰었다. 운동을 못하면 답답하다. 누군가는 운동도 중독이 된다고 했다. 땀을 흘리면 무슨 호르몬이 나와서… 그건 잘 모르겠지만 지난주, 지지난주, 그리고 이번주까지 이렇게 제대로 된 운동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부실하게 먹고 다니는 요즘이라서 살이 찌는 것 같지는 않다. 역시 여름인 것이다, 입맛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
…내일 아침엔 지지난주에 우편으로 보낸 벌금이 왜 접수가 안 되고 있는지 알아보려 법원에 들러야 한다. 한 달 전에 난 교통사고 때문에 딱지를 떼고, 법원에 가기 싫어 수표를 보냈는데도 접수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결국 법원에 들러야 된다니 이렇게 비효율적인 상황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어떻게든 찾아가지 않으려고 오후에 전화를 걸었더니 컴퓨터가 나가서 지금은 알아봐줄 수가 없단다. 벌금도 보내고 법정에도 서라는건지 대체…
그냥 잡담이 하고 싶었다. 여행기를 마저 쓰고 싶은데 짬이 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뇌를 덮고 있었던 여행의 기억은 조금씩 말라서 부스러져 떨어진다. 그리고 그 부스러기는 곧 바람에 날려 내가 닿지 못하는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렇게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 손이 묶인채로 멍청하게 서 있는 사이로 시간은 잘도 흘러가고 그 흐르는 시간을 따라 기억의 부스러기도 흘러간다. 눈은 가리워지지 않았으므로 사라져가는 그것들을 바라는 보고 있지만, 곧 눈도 가리워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 by bluexmas | 2008/06/03 13:53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