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요즘
일단 바빴다. 일주일 전만해도 도와주던 프로젝트가 끝나서 현장에 나가 의자 점검하는 것말고는 할 일이 없어져서 우울했는데, 또 갑자기 일이 떨어졌다. 일단 현장에 나가는게 기본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둘 모두를 잘 관리하는게 벅찰때가 있다. 게다가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같이 일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일하는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어제는 열 한시 조금 넘어서까지 일하고 우연히 그때까지 일하던, 너구리를 닮은 친구 P와 새벽까지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늦게 들어왔고, 오늘은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을 건너뛰다시피하면서 하던 일을 일단락 짓고 현장에 나가서 천 개의 의자를 점검하고 조금 일찍 집에 들어왔다.
오늘인가 내일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지 3년째 되는 날인데, 돌아보니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누군가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어제가 처음… 아주아주 가끔 나 혼자 술을 마실때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집에서 마셨던 것 같다. 그래서 왜 내 삶에 이렇게 오랜동안 이런 부분이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어제 집에 돌아오면서 잠깐 했었다. 그냥, 사람들이랑 계속 부대끼는게 싫어서였겠지.
사실 오늘 일찍 들어온 이유는 뉴욕에 사는 대학 후배 K 때문이었다. 윗동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방학하고 일을 하기 전에 놀러 오겠다고 해서 그래도 사람사는 집처럼 만들어 놓고자 청소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메일을 확인해보니 내가 여기에 쓰기 뭐한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서울에 예정보다 앞당겨 들어가야 되어서 주말에 올 수 없다고… 사실 대청소를 하기에는 피곤하고 정신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약간 마음이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오면 야구장엘 같이 가려고 했던터라 아쉬웠다. 안 본지 3,4년은 족히 된 것 같은데… 그냥, 올해도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만날 팔자는 아닌걸까, 라는 생각이 사실은 좀 들었다.
하여간 그렇게 K가 올 수 없다고 해서 다음 주에 내가 뉴욕에 가서 머무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원래의 계획은 그가 여기 왔을때 아파트 열쇠를 줘서 내가 거기에서 머무는 것이었는데, 만날 수도 없게 된 마당에 나도 그렇게 하자고 말하기 뭐하고, 또 그도 그걸 내켜하는 것 같지 않고… 해서 비행기표를 근 두 달 전에 사 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잘 데를 찾기 않은 대가를 조금전까지 치뤄야만 했다(인터넷을 미친 듯이 뒤져서 잘 곳을 찾았다고…). 믿고 있던 언덕이 재개발로 인해 불도저로 밀려서 평지가 되었을 때의 허전함이란… 주위를 둘러봐도 비빌 데가없음을 알아차렸을때, 드는 기분은 가끔 쓸쓸하다. 언제나 그런 부분에 큰 기대를 안 하면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첩을 꺼내놓고 생각나는대로 이것저것 쓰고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다를 이번 주말엔 뭘 할까… 나름 즐겁고 또 나름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너무나 갑자기 그 모든 걸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고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써 두었던 페이지들을 찢어서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조금은 시원섭섭한 기분으로 소파에 누워 졸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는 느낌의 비가 내렸던 오늘, 공기는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 by bluexmas | 2008/05/16 15:52 | Life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