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블로거?

블로그를 처음 열 때 부터 민감한 사안, 특히 사회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모 메타 블로그 회사에서 벌어졌다는 채용 취소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니까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워낙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짧은 시간 동안에 하는 사람인지라 정말 생각의 가지가 아주 잠깐 한 없이 뻗어 나가고 있었는데(오늘도 회사에서 그리 바쁘지 않다보니…), 그 가운데 가장 큰 가지는 이젠 이 블로거라는 것에 얽혀서도 권력이 형성되고 있는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 무슨 블로그 컨퍼런스, 같은 행사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사람들이야 모이고 싶으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모이는 것이니 예전에 무슨 하이텔 번개치듯 모여서 같이 맥주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이게 그런게 아니라 어디에선가 후원하는 조직이 있고, 예산이 있어서 어떤 틀을 갖춘 행사처럼 된다는 것에는 과연 블로그라는 것의 정의, 아니,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그냥 의미를 생각해봤을 때 그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떻게든 이런 식으로 아주 느슨하게 정의된, 그리고  개개인으로 구성된 조직이 생겨나면,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가 나서서 그 조직을 정의하고, 또 사람들을 모으고… 거기까지만 해도 별로 불만은 없을텐데 그 이후엔 많은 경우, 그 조직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규칙이나 성원의 자격을 정의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조직의 이름으로 소외당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죠. 그러니까 그냥 매체가 발달하다보니 다들 어디에선가 공짜-뭐 돈을 내는 분들도 있겠지만-로 얻게 되는 인터넷 공간을 가지고 잡담도 늘어놓고, 사진도 올리는 등,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취미 아닌 취미 삼아 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선가 그런 행위를 블로그라고 정의하고, 또 그걸 하는 사람을 블로거라고 정의하고… 그럼 누군가는 ‘아니 나는 이런 짓거리를 이런 것들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해 왔는데, 지금 이게 유행이어서 블로그라는 말이 나오고, 또 그걸 하는 사람이 블로거라고 정의되면 나 역시 원하지 않아도 블로거가 되어야 하는거야?’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죠.

그러나 일단 넘어갑니다. 세상 먹고 살기 바쁜데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도 없고 또 그 시간에 뭐라도 하나 더 올리고 싶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야, 우리 다 블로건데 단합해야 되지 않겠냐? 한 번 모여보자. 돈도 끌어와서 어떻게 하면 인기 블로그 만들 수 있는지 비결도 가르쳐주고 어쩌고 저쩌고…’ 라고 나오기 시작하면 그 때 부턴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 거죠. 내가 본의 아니게 블로거로 정의되는 상황도 별로 탐탁치 않은데 어디에선가 조직이 생겨나고, 그 조직을 중심으로 ‘다수’ 임을 자칭하게 될 무리가 형성되고, 그럼 애초에 그런 무리 같은데 별로 끼고 싶은 생각조차 없는 사람은 곧 ‘소수’의 딱지를 하사받게 되죠. 이 모든 과정 100% 타의에 의해… 정의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정의해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고, 또 그 원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된 다음에도 비주류로 정의되는 것을 강요당하게 되는거죠. 남들 다 하는 인터넷의 자기 공간에 잡담을 늘어놓고 사진 올리는 대가로…

뭐, 저는 다른 사람들이 블로그를 꾸려나간다는 공통점을 끌어 안고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그러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One Night Stand를 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겠지만, 저의 이런 글이나 사진 따위를 올리는 행위, 그러니까 요즘 들어 블로그질(혹은 블로깅)으로 정의되는 이런 행위가 제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를 갖춘 조직과 권력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왜? 궁극적으로는 아무데도 속하고 싶지 않아서, 내지는 지금 육체적인 삶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속해야만 하는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인데, 결국 그런 행위가 아주 육체적인 조직을 만드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죠. 네, 뭐 의사소통이든 자기자랑이든 그게 뭐든지 간에 자기 표현의 욕구라는게 있어서 이 짓거리를 하는데 또 누군가는 거기에서 사업모델과 수익구조를 생각해내서 회사를 차리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권력을 만들어서 누구를 뽑는다 만다 난리를 쳐대고… 그런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정의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지만, 블로거 같은 건 대체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전 블로거 명단에서 빼 주세요. 만약 그런걸 벌써 만드셨다면.

 by bluexmas | 2008/03/28 13:43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starla at 2008/03/28 13:55 

저도 요새 이런 생각 많이 하는데, 엄청 공감하는 글입니다.

저도 빼주세요. 🙂

전 그냥 낙서하는 사람 하려고요.

20년 전에는 공책이나 일기장에 낙서했고, 10년 전에는 텔넷 게시판에 낙서했고, 지금은 웹에 하고 있는…

 Commented by 笑兒 at 2008/03/28 16:58 

저도 그런 생각했었어요,

블로그가 무슨 동아리나, 클럽, 카페도 아니고… 그냥 회원들끼리 알음알음 만나는 것이면 몰라도, …도대체, 사람들 모아다가 뭐할껀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대체 무슨 끈으로 블로거들을 엮을지….

저도 구석에서 칭얼거리고 투덜거리고 생글거리고, 혼자 놀이터 꾸며서 놀래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3/29 13:12 

starla님: 저도 마찬가지에요. 전 아직도 그냥 공책 같은데 끄적거리고 있거든요. 뭐 직업이 그래서 맨날 낙서나 하면서… 예전에 하이텔에도 글 꽤 썼는데 갈무리도 못하고 사라져서 좀 아쉬워요.

笑兒님: 세상엔 의외로 무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 자기를 넣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