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신이 다가올 때-Polo Match T-Shirts

퇴근하고 아주아주 오랜만에 찾아오신 지름신을 영접해볼까 하는 부푼 마음으로 시내 쇼핑몰로 향했습니다. 언제나 찾아오셨지만 항상 소액으로만 납시어 소시민 월급쟁이의 가벼운 주머니를 고려해주시는 갸륵함도 보여주셨는데, 이번에는 카드 결재일 지났다고 비교적 고액으로 찾아오셨더군요.

 

미국에 와서 오히려 거의 입지도 찾지도 않게 된 브랜드 폴로… 시들해보이던 폴로가 갑자기 말 크게 찍어서 재미를 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한 마리도 아닌 떼거리를 찍어내기 시작하더군요. 가격은 $90+세금. 뭐 우리나라에서 수입되어서 팔 때도 때때로 사서 입어줬는데 원산지에서 한 번 못 입어주리… 라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뭐 대도시에만 있다는 Black Label 매장으로 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 셔츠는 없더군요. 그래서 같은 치수의 다른 티셔츠를 몇 벌 입어봤는데 참 이게 애매하더라구요. 저는 기본적으로 미디엄인데, 재작년인가부터 나오기 시작한 Custom Fit(Abercrombie의 Muscle Fit처럼 허리가 파이고 딱 맞는 재단)은 너무 딱 맞아서 이런 말을 입에 담기 참 그렇지만 게이 분위기가 나서 좀 그렇고(게다가 전 머리가 커서 완전 가분수-_-;;), 일반 Classic Fit은 너무 헐렁해서 보기 싫고… 생각해보니 지난 몇 년간 꼭 폴로에서 티셔츠 한 벌 사야지, 라고 마음 먹다가도 가서 입어보면 양놈이 아니라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서 못 샀던 기억이 나더군요(우리나라에서도 두산에서 라이센싱하다가 완전 수입으로 바꾼 다음에 치수가 이상해졌죠). 그제서야 사는 걸 포기… 워낙 이 폴로 매장이 점원들 싸가지 없기로 미국애들 사이에서도 소문난터라, 1초도 더 머물기 싫어서 돌아서 나오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폴로는 가격에 비해 너무 원단이 후지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군요. 요 몇 년 새에 Vintage Washing이라고 멀쩡해도 후줄근한 원단의 폴로 티셔츠를 워싱을 잔뜩해서 더 후줄근하게 만들고 거기에 더 후줄근한 프린팅을 잔뜩 찍어서 내놓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Preppy와는 저부터 백 대를 물려줘도 일만 광년 떨어진 인생, 룩이나마 좋아해보자고 Preppy Look을 참 좋아해서 약간 변형된 것들도 좋아는 하는데, 솔직히 요즘 폴로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그 전에 관심 끊었지만(할인 매장 제일 많은게 폴로인 듯)…

원단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저는 가끔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서 아주 비싼 Designer Label이 말도 안되게 후줄근한 원단에 Made in China 딱지를 달고 있는 걸 보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언젠가 Mark Jacobs의 스웨터가 정말 너무너무 후줄근해보여서 대체 얼마길래 저렇게 뻔뻔스럽게 후줄근한걸까, 라고 궁금해하면서 집어들어 봤는데 가격이 무려 $350… 가격 자체가 비싸서 황당하기 보다 그 가격에 저따위 원단으로 만든게 도저히 이해해 가지 않아서 황당했던 것입니다. 저는 좋은 디자인을 받쳐주려면 당연히 좋은 원단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니, 그것보다 원단 선택도 디자인의 일부라고 말해야 맞을라나… 물론 대부분의 비싼 옷들은 안 그러겠죠. 사입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하여간 잘 맞기만 하면 인터넷으로 주문하려고 그랬는데 그것도 물건너 가서 졸지에 $100 굳은 것과 같은 플라시보 효과가 또 다른 충동구매의 욕구를 발동시켜서 뭐 맨날 거기에서 거기인 다른 매장들을 돌아다니다가 J.Crew에서 $98짜리 면바지를 $30에 샀습니다. 아저씨룩의 완성은 역시 칙칙한 색 면바지로 시작과 끝을 맺는거라서… J.Crew에서만도 여러 종류의 면바지들이 나오는데 여기의 Vintage Washing 처리를 한 Distressed Chino는 Abercrombie에서 파는 대다수의 옷들처럼 처음의 그 후줄근함이 꽤 오래 그대로 가는 편이라 괜찮습니다. 보통 $50-$60 사이라 가격도 괜찮고 허리뿐 아니라 기장별로 다른 치수가 있어서 맞는 걸 찾기도 한결 편하구요(미국에서 바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오늘 제가 산 건 약간 유치하게 찢어지고 기운 효과를 아주 보기 싫지 않을 정도까지 준 건데, 그래서 원래는 $98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 아니었을까…

제가 6년전에 처음 왔을때만 해도 J.Crew 남자옷들이 제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었었는데, Banana Republic처럼 여성 라인에 더 집중한다는게 사실인건지 여성복은 장신구에 구두에 갈수록 더 많은 매장 공간을 잠식해가고 있습니다. 맨날 가던 매장은 정말 예전에는 50:50의 비율이었는데 오늘 가보니 거의 65:35 수준으로 줄었더군요. 거기에 남성복은 늘 재탕입니다. 재작년에 본 옷 작년에 또 보았는데 올해도 또… 세일에 못 사도 아쉬워 할 필요가 없는거죠, 내년에 나왔다가 세일때 되면 또 떨이로 내놓을게 뻔하니까.하여간 그렇게 돌아 다녀봐도 지갑을 냉큼 열게 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대체 30대 회사원은 회사갈 때 정장 안 입으면 무엇을 입어야 할까…라는 답 안 나오는 질문을 곱씹으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자 30대쯤 되면 정말 여러모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게 됩니다.

 by bluexmas | 2007/06/01 12:39 | Tast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1 13:21 

엄훠 상큼해! 티셔츠가 아주@ㅅ@ 근데 그러고보니 왜.. 머리자른 사진 내리셨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1 13:28 

사진으로 보면 예쁜데 도저히 잘 맞을 것 같지가 않아요 않아요…아무래도 체형이 달라서 그런가봐요. 그래서 아무래도 포기할 듯(게다가 글에도 썼지만 가격이 좀…).

사진… 제가 자폭 태그를 달아놨거든요^^ 블로그는 싸이 홈피가 아니다보니 사진 올리는게 좀 어색해서(궁금하신가요? 흐흐흐)…

그러는 카렌님도 블로그에 사진 없던데요? ‘2층 직원 아닌 사람 화장실 사용 금지’ 빼놓고.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1 13:36 

넵 궁금합니다! (꼭! 가고 싶습니다! 톤으로)

아하하 2층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이 실린 그것.. 아니 뭐 궁금하신가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1 13:42 

꼭! 가고 싶습니다! 는 뭐에요? 요즘 유행하는 광고 멘트라도(전우들과 함께 저도 꼭 월남전선에 *죽으러* 가고 싶습니다! 이런?)?

궁금함이 커지면 언젠가 꿈이 이루어진다죠. 밤에 금두꺼비 세마리 꿈 꾸면 저한테 귀띔해주세요. 개구리는 안돼요. 무조건 두꺼비로.

(가끔 이런 궁금증을 아주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사람들 잘 모르는 듯 해요^^)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1 14:44 

몇 년 지난 건데 잘 아시는군요!

어떻게 아주 쉽게 해결해요 @ㅅ@? 저 방금 낮잠으로 두꺼비 세마리 꿈꿨어요 뽀뽀해주면 왕자 된다고 해서 그건 개구리라고 어디서 구라즐~ 대화를 -_- 회의를 하루에 세건 하니 대략 정신이 혼미;?

어떻게 해결해요 어떻게 @ㅅ@ (초궁금)

 Commented by basic at 2007/06/01 15:04 

빨간 티를 보면 생각나는 건 축구;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축구는 싫어요-

 Commented by xmaskid at 2007/06/01 22:46 

재작년인가 US open Tennis후원하면서 모든옷에 말을 이따시만하게 넣기 시작하더니 계속 하네요~ 미국에서는 남자가 스타일리시하게 옷입고 게이삘 안나기가 좀 어려운듯 해요.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6/02 01:11 

빨간색…예뻐요^_^

검은색 다음으로 좋아하는 색이 빨강이라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2 11:21 

카렌님: 개구리는 안된다고 그랬죠? 퀴즈니까 한 번 풀어보세요.

basic님: 저 역시 드물게 한국 사람으로서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는… 점수가 너무 안 나서 싫어요.

xmaskid님: 제 홈피에는 간만에 오시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예쁜 용 짜서 선물해주셨던 친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제 주변에도 말기 임파종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어서 좀… 그나저나 말 이따시만하게 박아 놓은게 옷 자체로는 예뻐보여도 입으면 별로더라구요. 특히 남자들은 더… 하시는 말씀에 적극 공감하는게 어쩌다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 가면 남자들끼리 손 잡고 와서 옷을 골라서 좀 뻘쭘…요즘은 뭘 입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플라멩코핑크님: 저거 한 번 입고 불 살라 보려고 했는데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불붙일 것 같아서 아무래도 포기해야 될 것 같아요-_-;;;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2 19:01 

못 풀겠어요 -_-; (머리가 엄청 나빠서..) 두꺼비 꿈꿨어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