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의 4일 연휴(4)- 닭백숙
사실은 ‘영계’백숙인데 그 영계라는 단어의 사회적 쓰임을 고려해볼때 제목에 떡허니 쓰기가 좀 그래서… 하여간 미친듯이 먹고 또 먹었지만 배터져 죽지 않고 지옥으로 무사 귀환한 덕에 올리게 되는 조촐한 기획 연재의 마지막편입니다. 어느 수퍼마켓에서는 두 마리씩 담아서 얼려서 파는데, 저는 얼린 닭은 군대에서 먹은 이후로는 다시 먹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일부러 생 닭을 한마리씩 파는 수퍼마켓까지 찾아가서 사온 영계, Cornish Hen입니다. 얼린 닭 얘기가 나와서 군대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면, 언제 얼린지 모르는 닭들이 한데 뭉쳐 25kg 상자에 얼린채로 보급이 되는데, 참 곡선의 몸매를 가진 닭들이 어찌 뭉쳐져서 직육면체가 되어 상자에 고르게 담길 수 있었던 것인지, 삼라만상의 진리를 지금보다도 더 모르던 십 여년전 군복무 시절엔 그저 그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제가 부대의 모든 식료품을 담당했던 관계로 참 골때리는 얘기들이 많지만 오늘은 여기에 집중하기로 하고…
하여간 한 마리에 3천원짜리 영계를 사서 찹쌀을 한 컵 정도 속에 채웁니다. 정 영계가 없으면 닭장 말고 들판에서 키워서 닭꼬라지에 나는 시늉도 좀 할 줄 안다는 Free Range Chicken을 살때 반으로 잘라달라고 해서 반씩 두 번에 나눠 먹으면 됩니다(이 때 등뼈에 평행하게 잘라야 되는거 아시죠? 만약 직각으로 자르면 좀…-_-;;). 최근에 서점에서 굴러다니는 건강잡지따위를 읽으니까 닭에 있는 살모넬라균-맞나?-의 교차감염방지를 위해 닭을 씻지 말고 그냥 남비에 넣어서 조리하라고 그러던데(씻으면 물이 튀면서 균을 온통 날린다…는 얘기겠죠),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닭을 씻어서 솥에 넣고 배를 쌀로 채웠습니다. 원래 인삼은 안 먹으니까 대추랑 마늘만 껍데기와 살 사이에 채워줍니다.
‘압력’ 이라는 말이 왠지 ‘폭탄’ 과 비슷한 뉘앙스를 풍겨서 사용하기 꺼려지는 압력솥이지만 이런 닭백숙이나 갈비찜 같은 음식은 압력솥만 쓸 줄 알면 1/3의 조리시간에 더 나은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저도 집에 쓰이지 않고 굴러 다니던 압력솥을 찾아서 집을 날려 먹을 각오를 하며 사용법을 독학으로 익혀 이제는 잘 써먹고 있습니다. 보통 밸브가 올라오고 넉넉잡아 45분이면 국물과 일심동체가 된 닭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진은 꼭 먹다 토한 꼬라진데 현미찹쌀을 넣어서 색이 아무래도 토끼(not rabbit!)가 돕니다. 압력솥 뚜껑을 여니까 닭이 솥 내부의 압력 때문인지 하얗게 질려 있어서 쌀을 담요삼아 덮어주고 사진촬영에 임했습니다. 인내심이 허락하면 한 시간 정도 약한 불에 솥을 올려 놓는데 그러면 껍데기 빼놓고 별로 버릴게 없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4일 동안 그 옛날 세 자리 몸무게를 자랑하던 시절처럼 폭식으로 저를 학대했는데,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입맛이 싹 가셔서 점심도 모래알 맛이더군요. 기획연재는 이것으로 끝난 듯 보이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 by bluexmas | 2007/05/31 12:59 | Tast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