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증명
누군가는 예수님 생일이 되면 우편물을 받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고 해서, 어제 집에 오는 길에 카드를 사서 오늘 부쳤습니다. 잘 도착하는지 알고 싶어 굳이 돈을 우표 값의 열 배나 들여 배달 증명으로 카드를 보내지만, 배달 증명이라는건 단지 물리적으로 우편물이 잘 도착했나를 알려주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력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카드가 배달되는데에는 거기까지의 단계만 거치면 충분하지만, 카드를 보내는 마음이 배달되는 과정은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나 다름없습니다. 받는 사람은 때로 보내는 사람이 무엇인가 보낼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전혀 예정되지 않은 순간에 기대하지 않은 사람으로 부터 부쳐진 우편물이 우편함에서 발견되는 순간, 마음의 배달과정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받은 사람이 집으로 가지고 올라가기조차 싫어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킨다거나, 가져는 가지만 뜯어보지도 않는다거나 한다면 결국 그 배달은 실패한 셈입니다. 어찌어찌해서 읽히는 단계까지 성공했다치더라도 행간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결국 한 반 정도만 성공한 셈입니다. 그러니 이건 결코 쉬운 일이 나일지도 모릅니다.
어제 밤, 몇 자 적을 생각도 없는 카드를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과연 내가 받을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이걸 보내려 하는지, 아니면 단지 그거에 상관없이 내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그 몇 자 안되는 말들조차 제대로 써 내려가기가 버거워졌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척, 저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행간에는 침묵만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야 받는 사람도 덜 버거울지 모르니까요. 결국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나를 속여가며 임무를 완수했지만 다 쓰고 봉투까지 봉한 다음에도 이상하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어차피 저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 안, 방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졌습니다. 조금 더 어두워진 다음에 나가리라 마음 먹었지만 사실 더 어두워질 수 조차 없었던 자정 무렵, 저는 그냥 방바닥에 누운채로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젯밤, 방바닥은 노골적으로 차가웠더랬습니다. 마치 멍청한 짓을 하는 저를 징벌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 by bluexmas | 2005/12/14 13:33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