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전용 도로 위로 나른한 드라이브
점심을 먹고 차를 몰았습니다. 어제 말한 것처럼 무려 한 달이나 병신꼴로 다닌 제 불쌍한 차가 드디어 입원하기로 예약된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점심을 막 먹어서 나른한데다가 처음 찾아가는 길이고, 언제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을 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여간 비몽사몽간에 운전을 하다보니 모르는 길은 곧 아는 길로 바뀌었습니다. 이 길은 제가 ‘브런치 전용 도로’ 라고 억지로 이름 붙인 길인데, 언젠가 이 길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서 토요일 오전에 브런치-제가 사는 동네에는 브런치를 먹을 식당이라고는 은퇴한 노인네들에게 할인 혜택을 베풀어 주는 아주 구린 다이너diner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좀 음식 같은 것을 먹으려면 시내로 들어가야-를 먹을거라고 생각만 하면서 다녔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길은 시내에 사는 친구들 집에 놀러갈때 타고 다니는 길인데 적당히 구불구불하고 또 속도도 60마일 가까이 낼 수 있기 때문에 은근히 운전을 즐기게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브런치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는 것인데, 사실 차를 타고 가서 먹어야 되는 브런치는 진짜 브런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말이 길어지니까…
하여간 그렇게 나른한 채로 간신히 찾아간 정비공장에서는 어이없게도 제 약속을 다음 주로 임의로 미뤄놓고는 아무런 연락도 해주지 않아서 점심 시간에 나온 수고며, 모르는 길을 찾아간 노력 등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만사가 귀찮은 인간이라 따지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오던 길을 되짚어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도로에 널린 낙엽들이 차가 지나갈때마다 하늘로 흩날렸지만 창문을 열어 놓아도 차로는 들어오지 않더군요.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Krispy Kream 도너츠 가게(이게 작년 겨울 서울에 가니까 신촌 한복판에 있던데…)가 있어서 팀원들에게 줄 생각으로 들러 한 상자-열 두개-를 사가지도 돌아왔습니다. 불이 안 켜져 있어서 그런지 새로 만드는 건 Crawler밖에 없더군요. 상자에 그림까지 곁들여서 친절하게 설명되어있는 것을 참조하자면, 전자렌지에 8초만 데우면 갓 나온 상태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윗쪽은 던킨, 아랫쪽은 크리스피 크림이라고, 한 때는 너무 좋아해서 먹고, 사고 또 모자까지 쓰고 나오곤 했는데, 하나에 250칼로리나 한다는 것을 알아버리고 난 다음에는 먹을 용기를 아직까지 내지 못했습니다(제가 미국에서 본 음식 가운데 중량 대 칼로리의 비가 가장 높은 음식, 그래서 저는 보통 ‘Calorie Bomb’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누군가는 그 갓 나온 Original Glazed Doughnut이 Zagat Rating에서 만점을 받았다고도 그러던데, 확인은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먹지 않았습니다.
저랑 통화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확인해주겠노라고 말했던 정비공장에서는 아무런 전화도 오지 않았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이 나른한 드라이브를 한 번 더 해야될 것 같습니다. 나른하거나 피곤하거나 다 상관 없는데, 가끔 이렇게 차를 몰고 나갔다가 안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걱정입니다. 월요일에 자다가 일어나기 싫어지는 것 처럼…
다음 주 월요일에는 설사 불이 켜져 있더라도 도너츠는 사지 않을 것 같습니다.
# by bluexmas | 2005/12/08 13:59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