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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로 쉰 살이 되었다. 자못 충격적이다. 1월이었나,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상담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쉰 살이 되셨을 때 어떠셨어요? 요약하자면 버거웠다는 답을 들었다. 그렇다, 버겁다. 여느 해와 달리 나는 2월인가부터 날짜를 세고 있었다. 오십, 오십 살이 되는 날까지 사십 오 일, 사십 사 일… 이런 적이 스무살 생일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마흔 살에 ‘나의 아버지가 마흔 살 생일을 맞았을 때를 기억한다’라고 썼다고 기억하고 있다. 쉰 살 생일을 석 달 앞두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나는 부모 없는 자식이 되었는데, 솔직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정도면 부모 없는 자식으로 살아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부모가 다 세상을 떠난 어른은 고아가 되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버지는 ‘어른은 어른이니까 고아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가끔, 아주 가끔 혜안을 보여주었던 아버지는 그보다 몇백 갑절 더 많은 업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비단 정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법의 도움을 빌어 해결을 해야 하는 업보까지 있다.

오랜만에 그냥 하루씩 사는 태도에서 벗어나 삶을 생각해본다. 오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벌어졌던 수많은 예상치 못했던 사건사고를 떠올린다. 그런 일들이 만든 나는 그러니까 스물 다섯 쯤 생각했던 나와는 전혀, 정말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삶을 살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괜찮다. 별 생각 없다가도 문득문득, 아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지? 라는 생각이 비수처럼 가슴을 훅 찌르고 들어올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예측 불가능했던 특성 탓이지 지금 이 삶이 딱히 나에게 맞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현재의 삶이 좋다. 이게 나에게 확실히 잘 맞는다. 하지만 그걸 찾기 위해 때로 너무 큰 대가들을 치른 게 아닌가 아직도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지 이런 삶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절대 아니니까. 그리고 나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지점이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앞에서 업보를 이야기했는데 그와 더불어 인과응보는 반드시 존재한다.

형이 생일 축하 메일을 보냈는데 십여 년 만이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인간이지만 적어도 아버지 밑에서 그렇게 살면서 이만큼만 미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으나 오십, 이라는 숫자 아니 세월의 무게가 짓눌러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할아버지는 일흔 아홉 , 아버지는 여든까지 살았다. 그럼 나의 생물학적 수명이 또한 대략 30년 쯤 남았노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 솔직히 그정도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보이고 바라지도 않는다. 더도덜도 말고 딱 이십 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부모, 특히 아버지가 없는 만큼 부담을 덜 느끼는 삶을 더도덜도 말고 딱 이십 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