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나온 여자 아들 이대에서 강연한 이야기
아버지가 서울대를 나왔지만 ‘서울대 나온 남자의 아들’이라는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사실 그저 아버지 아들인 것도 버겁다(물론 그가 대단한 인물이었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인성 문제다). 그런데 어머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유명한 김혜수의 대사를 차용해서 ‘나 이대 나온 여자 아들이야’라고는 말하고 싶다. 물론 엄청나게 진지한 건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는 어머니도 있지만 큰이모가 있다. 큰이모는 이태영 박사가 차린 여성법률상담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어머니는 이모의 영향을 받아 법학을 전공했고 수원에서 피아노학원을 차려 일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인가 여의도에 가서 법률 상담 자원봉사를 했다. 덕분에 ‘상담 사례집’을 통해 동성동본 금혼이랄지, 첩을 둔 남편 문제 등의 구시대적 악습에 대해 읽을 수 있었다. 이모는 호주제 폐지에도 많은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다.
하여간 이렇게 이대 나온 여자의 아들이 이대에서 강연을 했다. 불문학과의 초청을 받아 커리어 세미나의 명목으로 문학 속 음식 등 여러 주제를 이야기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옛날 일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대 뒷문 딸기골의 ‘마리’라는 한식당에서 이모와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교정을 둘러 보았던 등등의 일이다. 큰이모와 나는 매우 친했는데 마침 내가 군 복무 후 복학한 뒤 우리 학교에서 가정법 강의를 해서 종종 교수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었다.
사실 내가 대학 다닐 때에는 이대앞이 ‘핫’한 거리였다. 대학 붙고 나서 부모님에게 돈 받아서 가방과 옷을 사러간 곳도 이대앞이었고 머리도 한참 이대앞 주노헤어에서 잘랐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폐허가 돼서… 그래도 주노헤어는 그 자리에 아직 있더라.
여대에서 강연은 처음 해보았는데 수업 태도가 다들 참 좋았다. 나는 자식이 없지만 친구 자식들이 이제 다 대학생이라 여러분들이 자식뻘이니, 내가 뭐 가진 게 별로 없지만 있다면 나눠 주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솔직히 내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여성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 나빠져가는 현실이라면 여성대학은 백 년 전보다 더 귀할 수 있다.
하여간 매우 복잡미묘한 마음으로 강연을 하고 왔다. ROI가 좋은 일은 아닌데 여기에서 수업 하나만 맡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식과 식문화 관련 일반 교양 강연 같은 거 하나 하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학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나는 박사학위가 없어서 안되겠지.